김사인 김사인 p. 10~11 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 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붇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곁으로 나비나 별이나 별로 고을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이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