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2022 시집에서 남기고 싶은 시 p. 16~17 안개 숲 숲은 깊었다 나만 알던, 가끔 누워 있기도 하였던 묘지 주변으로 빗방울이 내리면 나무들이 웅크려 비를 막아주는 것만 같았다 잠든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누구라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은 길을 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올리던 오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사람, 봉지 약을 들고 찾아간 날, 약을 건네주고 오는 길은 낮은 기침 소리가 따라오는 게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덧없는 꿈이었다 학교 앞 저수지로 걸어 들어간 사람의 물빛을 떠올릴 때면 흘린 듯 그림자가 내게고 옮겨 오곤 했다 텅 빈 운동장에서 누군가 빈 병에 소리를 내고 있구나 그때마다 잘린 여름풀의 향이 퍼져 나가다가 흐린 방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