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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시집] 김박은경 《의심하세요》

나에대한열정 2026. 5. 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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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은경의 《의심하세요》시집은 전반적으로 체념, 아픔, 외로움, 그리움, 상실, 덧없음, 공허함의 감정선이 처음을 채운다. 하지만 그 마음들조차 후회나 원망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불행조차, 아픔조차 긍정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식었던 마음이 다시 데워지는 듯한 시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의심하세요>, <목숨같은 거>, <안부> 세 시가 유독 와닿았다. 사실 이 시집은 펼칠 때마다 한편씩 담아두게 되는 시집이다. 이것도 괜찮다 싶은.
아마 책상에 계속 둔다면 시집 한 권을 몽땅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의심과 믿음이 같은 종족이라는 표현은 보는 순간 꽂혔던 표현이다. 확실한 것을 원하는데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그래서 의심하고 믿고를 반복하는. 어쩌면 믿고 싶어서, 믿기 때문에,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그 한켠에 의심이라는 기미줄을 쳐두는지도 모르겠다.

<안부>에서는 오래전 첫사랑이 생각났다. 이미 곁에 없고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때의 상실감이 그대로 살아나는 느낌. 누군가를 잃어버린 뒤의 감정이 거리가 공동묘지인거 같다고 표현되는 데서는 무언가를 들킨 기분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p. 74~76
<의심하세요>

그거 아니면 죽을 것 같았지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믿었지

확신하고 싶어 제발

손을 뻗으면
그것과 겹쳐지는데
정확히 느껴지는데
아무것도 없어

맹렬히 날아오르다가
차갑게 굴러떨어지다니

어차피 날개도 없었다고
절정은 각자의 몫이라고
개별적인 오해였다고

날갯죽지에
이상한 상처들

믿지, 묻는다면
믿는다고 정말이라고
고개를 끄덜이면서도
의심이 거미줄 친다

의심하는 거니,
더욱더 묻는다면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의심이 거미줄 친다

치밀해졌어
견고해졌어

의심과 믿음은
어쩌면 같은 종족

의심없이 믿는다면
믿겠다고 선택한다면

빛으로 지어진
누각 한 채

투명하게 아름답지만
찬탄하고 경외하며
사랑할 수 있지만

발을 딛는 순간
추락할 거야

빈 벽에
빛이 춤춘다



p. 82~83
<목숨 같은 거>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다른가

한 발은 집어넣고 한 발은 내놓은 사람처럼
끝이라면서 몇 번이고 비틀대는 인간처럼
엉킨 혀는 같은 자리를 헤매고 있어

당신도 다르지 않다니
다르지 않다는 말은
같다는 말이니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뭐라고 다짐해야 할지
뭐라고 고백해야 할지
뭐라고 사과해야 할지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입속에서 굴리던 말을
드높이 던져본다

박살나서 튀어나가는 조각조각
꿈틀거리는 무진장의 음소들이

달라붙는다 파고든다
뿌리를 내린다 증식한다
그것이 되게 한다

게임이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목숨 같은 거 걸지 마
알잖아



p. 131~132
<안부>

함께 살 수 없게 된
사람없이 살 수 있을까

몹시 사랑하여 불행해졌지
그 점은 마음에 들어

거리는 공동의 묘지 같아
이정표들은 묘석처럼 빛나고

자동차는 급발진하고
토사는 쏟아져내리고
경솔한 과도는 날아오고
골목 겹겹이 쓰러지는 사람들

나는 자꾸 눈이 감기네

죽은 쥐들이 뒹구는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같은 곳에 이르게 된다면

끝없이 되풀이할 수 있지만
끝없는 절망일 뿐이라면

플롯에 대해서는 모르고 싶어
시제는 지워버리고 싶어

몇 번이고 연락이 되지 않는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내일 처음 만날 수 있다면

에테르로 가득한 대기 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한을 완성할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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