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2017 시집에서 남기고 싶은 시 p. 13 신기루 어떤 풍경은 제 몸피를 기억하지 못한다 검은 눈동자만을 향해 조각조각 자르는 배경으로 만나는 옆과 옆 검은 곳에서 한 생명이 흘러내린다 염분으로 절여져 얌전한 숨결 뒤척이는 두 겹에 맺히는 함께하자는 말 눈은 불현듯 비어 가고 물음표를 던진다 p. 30~31 한계령풀 한해살이 여러해살이 풀을 가르는 말은 계절이 아닌데 간절함 속에서 풀이 흔들리며 피면 어느새 산에서는 한 계절이 조립된다 뒤울림에 따라 꽃이 되고 풀이 되는 이름 숲이 되지 못하는 기록되지 않은 물의 시간은 계약직이다 출근했던 공장의 소리가 들리는 산 푸른 교대를 마친 침엽수들이 깊숙한 곳으로 물러앉을 시간이다 흔들림으로 모든 꽃과 열매는 만근에 다다른다는데 근근이 버티고 있는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