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2013 황동규 2013 p. 9 이별 없는 시대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잔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보다 서로의 추억이 반짝일 때 헤어지는 맛도 있겠다 잘 가거라. 박테리아들도 둘로 갈라질 때 쾌락이 없다면 왜 힘들어 갈라지겠는가? 허허. p. 30~33 영원은 어디? 때아닌 추위 강습. 오리털 점퍼 끄집어내 덧입고 나선 산책길 길섶 누른 풀은 눈 맞고 얼어 풀떡 범벅되었고 아직 땅에 내려오지 못한 졸참나무 잎새들이 머리 위에서 쓰렁쓰렁 귀 시린 발성을 한다. 너는 지금 네 추위 속을 걷고 있어. 언덕을 넘자 서리 허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