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희 2020 채만희 시집에서 추천하고 싶은 시 p. 12 바람에 관하여 바람을 쐬러 나간다고 하면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부는가 하겠지만 사실 바람은 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지 날아다니다 보면 부딪치는 일이 많지 부딪칠수록 힘은 커지지 풀잎 같은 것들은 살랑거리지만 전선 같은 것들은 윙윙거리며 큰 소리를 내지 소리는 소리끼리 부딪쳐 오해의 조각들로 쪼개지지 이름도 제 각각이어서 해풍, 육풍, 골바람, 산바람, 높새바람으로 불리지만 이름도 날아간다는 것도 진실은 아니야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바람은 부딪치며 소리를 만드니까 타자를 매개로 은밀히 술렁거리는 소문처럼 어디로 뛸지도 몰라 그러다가 바람은 허공에 뜨고 말지 각각의 이름으로 불리는 바람처럼 처음부터 나란 없었던 거지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