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2

[시] [찬란] 이병률 시집

이병률 2010 시집에서 남기고 싶은 시 p. 9~11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억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고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고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

북리뷰/문학반 2022.03.03

[책] 이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

이병률 시집 p. 12~13 나비의 겨울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을까 여러 번 기웃거렸다 누군가 다녀간 온기로 보아 어쩌면 둘이거나 셋이었을지도 모를 정겨운 흔적 역력하고 문이 그대로 잠긴 걸 보면 한번 왔다가 한번 갈 줄도 아는 이 분명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놓았다 누군가 내 집에서 불을 끄고 아닌 척 그 자리에 다시 얼음을 놓았다 누군가 빈집에서 머리를 풀어 초를 켜고 문..

북리뷰/문학반 202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