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집 p. 12~13 나비의 겨울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을까 여러 번 기웃거렸다 누군가 다녀간 온기로 보아 어쩌면 둘이거나 셋이었을지도 모를 정겨운 흔적 역력하고 문이 그대로 잠긴 걸 보면 한번 왔다가 한번 갈 줄도 아는 이 분명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놓았다 누군가 내 집에서 불을 끄고 아닌 척 그 자리에 다시 얼음을 놓았다 누군가 빈집에서 머리를 풀어 초를 켜고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