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정도 전이었나. 남자 1호의 일 때문에 잠시 어느 지방에 머물렀는데, 그때 처음으로 5일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런 5일장을 말이다.
막 봄이 다가서는 계절이라, 널린 게 봄나물이고, 꽃이었다. 시끌벅적한 트로트하며, 할머니들의 연이은 나물들하며...와~~~ 이런 걸 직접 보는구나 내가...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시장 초입에 들어서는데...
정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쑥, 냉이, 달래 뭐 그런 것들을 바구니마다 담아 놓고 팔고 계셨다. 옆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물들을 꺼내신 건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들이 보였고...
'내가 저거 모두 사면, 할머니 들어가실 수 있나?'
어차피 먹을 건데...이때밖에 봄나물 향이 나지 않는데...냉동 시킬까.
뭐 이런 생각으로 할머니께 다가갔다.
"할머니, 이거 얼마씩 해요? 여기 비닐 안에 있는 거 전부 하면요?"
할머니가 말씀한 액수는 십 만원이 조금 넘었고, 나는 모두 달라고 했다. 그렇게 세 명의 할머니꺼를 모두 샀다고 생각하고...가는 길에도 보이는 대로 좀 사고.
나름의 시장 투어를 하고, 되돌아 나오는데...아놔......
그 할머니들은 조금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아까 내가 산 것보다 더 많은 나물들을 내놓으시고 팔고 계시는거다. 순간...이게 뭐지......
그렇게 집까지 힘들게 들고 간 검은 봉지들의 나물들은 대략 15만원 어치가 넘었고 -.- 식탁 위도 모자라 거실 바닥까지 점령하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자 1호가 도대체 이게 뭘 산거냐며...
시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했더니...나이가 몇이냐고...
물론 그 나물들은 1년 내낸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지만...참으로 배신감 느껴지는.
그 뒤로는 시장의 할머니들을 봐도 그때처럼 "다 주세요~"는 하지 않게 됐다.
현실에 눈을 떴다고나 할까.
오늘, 봄에 사다가 삶아서 넣어 놓은 쑥으로 쑥인절미를 만들어왔는데...
떡 보니...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럴 때가 있었다.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려 (20) | 2020.10.16 |
---|---|
가을에는 (10) | 2020.10.15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18) | 2020.10.09 |
고마워. 단역으로 와줘서. (23) | 2020.10.07 |
인생의 모든 순간은 첫경험이다 (24) | 2020.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