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그럴 때가 있었다

나에대한열정 2020. 10. 1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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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정도 전이었나. 남자 1호의 일 때문에 잠시 어느 지방에 머물렀는데, 그때 처음으로 5일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런 5일장을 말이다.


막 봄이 다가서는 계절이라, 널린 게 봄나물이고, 꽃이었다. 시끌벅적한 트로트하며, 할머니들의 연이은 나물들하며...와~~~ 이런 걸 직접 보는구나 내가...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시장 초입에 들어서는데...


정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쑥, 냉이, 달래 뭐 그런 것들을 바구니마다 담아 놓고 팔고 계셨다. 옆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물들을 꺼내신 건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들이 보였고...

'내가 저거 모두 사면, 할머니 들어가실 수 있나?'

어차피 먹을 건데...이때밖에 봄나물 향이 나지 않는데...냉동 시킬까. 

뭐 이런 생각으로 할머니께 다가갔다.


"할머니, 이거 얼마씩 해요? 여기 비닐 안에 있는 거 전부 하면요?"

할머니가 말씀한 액수는 십 만원이 조금 넘었고, 나는 모두 달라고 했다. 그렇게 세 명의 할머니꺼를 모두 샀다고 생각하고...가는 길에도 보이는 대로 좀 사고.

나름의 시장 투어를 하고, 되돌아 나오는데...아놔......


그 할머니들은 조금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아까 내가 산 것보다 더 많은 나물들을 내놓으시고 팔고 계시는거다. 순간...이게 뭐지......


그렇게 집까지 힘들게 들고 간 검은 봉지들의 나물들은 대략 15만원 어치가 넘었고 -.- 식탁 위도 모자라 거실 바닥까지 점령하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자 1호가 도대체 이게 뭘 산거냐며...

시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했더니...나이가 몇이냐고...

물론 그 나물들은 1년 내낸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지만...참으로 배신감 느껴지는.


그 뒤로는 시장의 할머니들을 봐도 그때처럼 "다 주세요~"는 하지 않게 됐다. 

현실에 눈을 떴다고나 할까.


오늘, 봄에 사다가 삶아서 넣어 놓은 쑥으로 쑥인절미를 만들어왔는데...

떡 보니...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럴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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