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네"라는 시각으로 보면 삶은 쉽게 초라해지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그래서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만 해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낫기를, 또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죠.
최태성 <역사의 쓸모>중에서
고등학교 때 이런 역사 선생님을 만났다면, 난 분명히 사학과를 부전공으로 정외과를 갔을 듯하다.
우리 때는 학력고사 국사25점만 맞으면, 그게 전부인.
암기 과목의 대표 주자가 국사였는데, 그래서 국사 25점 맞으면 역사를 다 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듯하다.
부끄러뭄을 부끄러운지 모르고 자란 세대.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집의 거실과 부엌 사이에 보드판이 세 개 있다. 일정이 써있기도 하고, 필요한 준비물이 써있기도 하고, 식구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써놓기도 하고.
경술국치일(1910년 8월 29일)을 써 놓은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이제서야 딸아이가 묻는다.
딸: 저건 뭐야? 경술국치일? 왜 써있지?
나: 빨리도 묻는다. 너네 잊지 말라고 써놓은거지. 일본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린 날.
옆에 있던 여덟 살 아들이 말한다.
"이순신이 이겼는데?????"
아~ 그건 그때가 아니고~~~미주알고주알~~~~~
나: 올해를 경자년이라고 하는 거 들어봤어?
딸: 응 들어본 거 같아.
나: 십'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십이"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띠 얘기할 때 나오지?
이것들을 하나씩 연결하면 60가지가 만들어져. 이걸 60갑자라고 하고, 왜 만 60에 환갑이라고 하잖아? 자기가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1910년의 해가 경술년이었고, 경술국치...경술년에 나라에 치욕이 있었다고. 국권을 상실한 날 이라는 거지.
딸: 찾았잖아? 그럼 광복절만 알면 되는 거 아니야?
나: 되찾았다는 거 자체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의미 있는 거 아니야? 역사를 왜 배우는데? 멋진 유물보려고?
딸: 글쎄...그냥 과거의 모습을 돌아다 보는 거 아니야?
나: 왜 돌아보겠어? 물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업적이나 자취도 중요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역사를 배우는 거야. 그건 민족도 마찬가지. 개인도 마찬가지.
저 날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물리적으로 침략한다고 해서 꼭 침략이 아니야.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공격의 방법도 바뀌지 않겠어? 생각 좀 해볼까? 왜 잊어버리면 안되는 날인지?
딸: 알았어. 생각해 볼게.
고맙다. 생각해 본다고 말해줘서. 어디 한술에 배부르랴.
끝이 없는 대화로...사고의 확장으로...자신만의 개념 정립으로...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잘 커줘라...
그래서 오늘도 엄마는 필요한 주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