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해 2020 유랑: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p. 17~18 나의 거룩 이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 대며 자는 어린 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 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