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2003 황동규 2003 p. 13 어떤 나무 다시는 세상에 출몰하지 않으려고 배에 돌을 달고 물 속에 뛰어든 사람 그 중엔 밧줄 풀어져 막 풀어진 눈으로 세상 구경 다시 한 사람도 있다. 안부 궁금하다. 한 오백 년 살며 몇 차례 큰 수술하고 사람 머리보다 더 큰 돌덩이 여럿 배에 넣고 넉넉하게 서 있던 나무 제주 애월에선가 만난 팽나무. 그 몸으로 어디 뛰어들어도 되떠올라 어리둥절할 일 없으리. 어느 날 돌덩이들만 땅에 내려 어리둥절하리. p. 14 쨍한 사랑노래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