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진 2019 시집에서 남기고 싶은 시 p. 13~15 雨연히 다시 만날 수 없는 너의 일기장에 흘겨 쓴다 우리는 한때 구름이었다 질량은 유한하지만 경계는 없고 하지만 충분히 넓고 가벼운 우주, 하나의 홀씨 지상에 떨어지기 전 우리는 아주 가까워지거나 몹시 멀어져 왔다 손을 빠져나가기 전만큼만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어릴 적 아파트 뒷편 공터는 아지트였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도 각자 들고 온 우산을 펴 놓고 들어앉아 허락 없인 못 들어와 으스대곤 했었다 그러다 비가 오면 저마다의 손님을 받아 내느라 한바탕 소통이 일었지 우산을 들고 이곳저곳 달아나기도 했지 우산 없는 아이들보다 우산 있는 친구들의 고함 소리가 더 빨리 잦아들곤 했었다 젖지 않으려면 우산 하나에 모두 숨거나 하나씩 덧댈 수밖에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