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으로 자란 나와 내 동생.
중학교 이후로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을 멘 채로, 자기 방이 아니라 내방을 먼저 들어와서 그날 있었던 얘기를 모두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그래서였는지, 동생이 군대를 간 이후로 집이 절간 같았다.
1. 논산훈련소에 있을 때, 마침 동생 생일이.
라면박스를 하나 준비하고, 그 안에 동생이 좋아하던 과자 종류와 초콜릿 그리고 간단한 연고와 밴드 종류를 넣었다. 군대 다녀온 선배들이 훈련소로 보내면 안 받아준다고, 받아도 본인한테 전달이 제대로 안된다고... 그래서 박스 겉에 주소보다 더 크게 썼다.
<오늘은 제 동생 생일입니다. 이 안에 있는 몇 개만이라도 꼭!!! 전해주세요!!!>
나중에 동생한테 얘기를 들으니, 원래는 안되는데, 그 박스를 다 부어서 나눠주고, 동생에게는 특별히 두 주먹 가득 갖게 해 주었다고. 그래서 화장실 가서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결심했던 거 같다. 아들 낳으면 군대는 절대 안 보낸다. 음... 근데 내 아들 어떻게 안 보낼까...ㅎㅎㅎ
2. 동생이 특별 휴가를 나왔다. 이유는? 속해 있던 연대에서 그 달에 편지를 제일 많이 받아서 얻게 된 휴가라고.
그런 걸로도 휴가를 보내주나? 뭐 말하나 마나 그 공로는 모두 나의 것이다.
학교 공강 시간에도 쓰고, 지루한 수업시간에도 쓰고,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할 말이 많았었나 싶지만 하루에 몇 통씩, 보통우편과 빠른우편으로 나눠서 보냈다. 주말 말고는 매일 받을 수 있게. 이등병이니 그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이등병 때는 고참들 앞에서 책을 볼 수도 없으니, 책을 복사해서 몇 장씩 편지마다 끼워 보냈다. 마치 책을 연재하듯이.
그런데 이 녀석 귀엽게도, 나한테 답장할 때 수신자가...
"희에게"ㅋㅋㅋ (누나다 이눔아~~~)
그래서 나도 그다음부터는 보내는 사람을 바꿨다..."희가"ㅋㅋㅋ
그런 동생이 벌써... 어구... 같이 늙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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