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뭐든지 목적에 맞는 자리가 있는 법이다.

나에대한열정 2021. 3.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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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선릉역과 진선여고 사이에 유명한 학원이 한 곳 있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학원이었는데도, "간판이 없는 곳"이라서 소문에 소문을 통해 아이들이 들어갔던 곳. 그 학원은 당시 학력고사의 암기과목을 중점으로 한 곳으로, 사회 선택과목과 과학 선택과목만 있던 학원이었는데, 다니는 기간은 2주, 그리고 수업료가 과목당 70만원이었다. 80년대 후반의 가격이다. 단 2주를 다니고, A4 스무 장이나 됐을까. 그것만 외우면 끝이다. 덕분에 난 그곳에서 배운 두 과목을 모두 만점을 받았고. 돈에 감사해야 할지, 시대에 감사해야 할지, 그 선생님들께 감사해야 할지... 타이밍에 감사해야 할지... 아님 모두 일지...

 

내가 그 학원을 나오고 두어 달 지났을까. 뉴스에 간판 없는 그 학원이 등장했다. 그리고 탈세 기타 여러 명목으로 그 학원은 문을 닫았다. 그 선생님들 중 내가 기억하는 두 분이 EBS에 스카웃이 되었는데, 선생님들의 지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스카웃이었다. 그 중 내가 너무 좋아했던 한 선생님의 과목을 EBS로 들어봤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 선생님의 강의가 절대로 아니었다. 빡센 2주를 달리면서도 재미있던 선생님이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게 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EBS에서의 그 선생님은 진지해서 웃겼다. 그 족집게 선생님의 강의에 포인트가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그 선생님은 EBS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선생님이 강의를 왜 저렇게 하지? 의문만 남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뭐든 그 목적에 맞는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필요한 것들만 찍어서 알려주는 것과 하나하나 나열해서 설명해 주는 것과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표현도 달라야 한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니, 그 적용도 달라야 한다. 자리가 바뀌니 바보가 된다. 

 

경향이 너무 다른 내 주니어들을 보면서,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 선생님이 생각났다.

어디에 놓냐에 따라 장군이 될 수도, 멍군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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