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끄적임) 네 이름이 모과니?

나에대한열정 2021. 10. 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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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과를 예약했다가 배송을 받았는데, 상자를 열어보고 순간 이게 뭐지 싶었다. 내가 알던 모과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조금은 타원형에, 약간은 노란빛이 돌고, 약간은 미끈거릴듯한 느낌의 그런 모과가 아닌 것이다. 이건 마치 특대 메리골드보다 크면서, 흡사 나주배를 연상시키는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이 모습에 모과 예약한 곳에 문자를 넣었다. "이게 모과가 맞나요??? 제가 아는 모과랑 다르게 생겨서요..." 답문 대신 바로 전화가 왔다. 모과 맞으며(웃으시면서), 처음에 수확한 특대 크기의 것들이고, 보통 마트나 시장에서 보는 모과는 시일이 좀 경과해서 따는 거라고. 일단 술이나 청을 만들어 보면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아주 확신에 찬 음성이었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잘 세척을 한 이후에 손질을 하려고 칼을 대었는데...이런, 칼이 살짝 들어간 상태로 더 들어가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다. 이 많은 걸, 도대체 어떻게 썰어야 할까. 한번 도마 위로 내리쳤는데, 뭐하냐? 하는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머리는 쓰라고 있는거지? 사람은 도구를 쓰는 동물이지? 음...

칼이 꽂힌 상태로, 다른 쓰지 않는 칼의 칼등으로 살살 내리쳤더니 생각보다 쉽게 박혀있는 칼이 들어갔다. 그리고 반으로 갈라졌다. 반으로 갈라진 것을 다시 자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처음 동그란 상태에서만 정으로 내려치듯이 잘라내면 나머지는 의외로 쉽게 잘라지는 것이다. 겉모습은 좀 낯설었지만, 속살의 색이 어찌나 이쁘던지. 살짝 덜 익은 멜론을 썰어놓은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하나 집어 먹었다. -.- 이건 아니다. 너무 떫다... 하지만 향은 너무 좋았다.

손가락 사이가 빨갛게 되도록 칼질을 하고 나서야, 절반은 청으로, 그리고 절반은 술로, 그렇게 자리를 찾아간다. 옆지기는 도대체 그 술은 누가 마시는 거냐며, 내가 마실거라고 하자 웃고 넘어간다. 아직 알코올 향이 진동하고, 익지도 않았는데,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베란다 한쪽에는 스무개 남짓한 항아리들이 있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아파트 베란다에 이렇게 있는 것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한다. 정기 소독하시는 분들 중에 가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계신데, 너무 좋다며 이런 것들은 어디서 사 오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한때는 나이가 지긋이 들면 전원주택에 항아리 300개를 놓을 수 있는 마당을 갖고 즐기며(?) 사는 게 버킷리스트에 있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은 접었다. 항아리 300개를 닦아주는 건 생각보다 너무 심한 노동이다. 그냥 아파트에서 30개 정도만 유지하는 걸로...^^; 

 

항아리의 절반에는 매실청이 담겨져 있다. 매실청은 3년 이상이 되어야 감칠맛이 더해져 맛이 더 좋아진다. 일반 반찬 할 때도 쓰지만, 김장할 때 그 역할이 가장 크다. 네 식구 살면서 김장을 70포기씩 하는 집이다 보니, 매실청은 해마다 담가 둬야 숙성된 맛을 이어갈 수 있다. 아이들이 잔병 없이 지내는 것도 김치의 역할이 크다고 믿는다. 발효식품 어쩌고를 뒤로 하더라도,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은 맞는 거 같다.

항아리 애기하다가 모과에서 김치로 이야기가 흘렀다. 모과에 고춧가루는 어울리지 않는데...

 

하여간, 모과주와 모과청이 맛있게 익어가기를... 작년에 담은 것은 이제 좀 맛이 들었을까? 조만간 비 오는 날, 날을 잡아야겠다. 내게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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