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소설] 너의 얼굴 (이충걸/은행나무 출판사)

나에대한열정 2024. 5. 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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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걸《너의 얼굴》



소설이니까 스포는 접자. 아니, 때로는 줄거리가 전부인 소설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읽어야 맛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줄거리 몇 줄로 축약해서 전달하기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저릿저릿한 문장들이 너무나 많다.

작가의 말에서 두 번 읽은 부분이 있었다. "나는 궁금했습니다. 문학적 전쟁터에서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랜 소설의 명예로운 문법과 얼마나 닮았을까? 드라마를 무리하게 배치한 건 아닐까? 그 사람의 감정은 현실적일까, 획득된 것일까? 그것이 세계의 새로움과 무슨 상관일까? 나는 내키지 않는 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재창작된 자아의 감정을 느끼고 부풀릴 수 있을까?"

작가들은 다들 비슷한 고뇌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언 고닉은 독자를 자신의 시선에 붙여놓고, 자신이 겪은대로 (독자가) 경험하고, 자신이 느낀 것을 (독자가) 체감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입장에서 최고의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이충걸 작가님에게 그 모든 궁금증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온통 책 속의 "나"였으니까. 화자가 내또래여서, 같은 나이의 딸아이가 있어서, 물론 그런 요소들이 더 감정을 옭아맨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아니다.

상황속에서 드러나는 묘사와 감정선들이 얼마나 가슴을 꿀렁거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사랑을 타인의 본질과 자신의 본질이 통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그렇게 보이는 사랑이 딸의 남자친구이면, 그래서 심판을 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서 느껴지는 질투와 좌절감은 무슨 표현이 가능할 것인가. 뭉게져버린 나의 얼굴 대신에 죽은 딸의 얼굴이 얹혀진다면, 딸에 대한 그리움과 나에 대한 정체성과 딸의 남자친구에게 비쳐질 나의 모습에 대한 괴리와 모든 것이 섞여버릴 현실 속에서 온전한 나를 지킬 수는 있을 것인가.

때로는 선택지가 없는 선택에 의해서도 삶은 계속된다.




p. 14
통증은 뭔가 잘못되었을 때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버려진 감정이었다. 작은 보트에 타고 있다가 항로를 잃은 느낌. 두 개의 인격 중 하나가 다른 하나는 먹어치운 느낌. 약간 혼란스러웠다.


p.19
사람들은 말했다. 죽는다는 건 한 번에 끝나는 일이라고 내 생각에 죽음은 저녁이 밤으로 넘어가는 순간, 진통제로 위장하는 호기심이었다. 아픔은 모든 주제를 타고 넘었다. 진통제 두배 용량을 갈망하는 세 번째 물결을 삼키고 나면 완전히 비참해졌다.


p. 44
그날의 일과 어두운 계단에서 벌어지는 성폭행의 차이는 그의 얼굴을 학교에 갈 때마다 봐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리로 나가 말할 수 있었다. 신고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누가 나를 믿어줄까?

나는 차라리 유괴당한 죄수 같았다. 무엇이었을까? 다음날 절대로 전화하지 않을 남자와 술 취한 성교를 한 뒤, 싸구려 귀걸이를 사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과 얼마나 다른 것이었을까?


p.  63
나는 화장실 문을 노크했다. 삶의 결함은 저 화장실 안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결함은 삶 자체고, 인생은 지루한 오해니까.


p. 75
많은 날은 하나의 날로 축소되었다. 나는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는 낙오자, 신경 회로의 저항자, 평생 주거지를 찾는 노숙자가 되었다. 돌아눕지 않는 한 벽 말고 볼 게 없었다. 대신 소리를 들었다. 주사액이 출렁거리는 소리, 마른 솜을 만지는 소리, 티슈를 대는 소리, 건조하나 섬유질이 많은 소리, 나의 담즙에서 나는 소리, 사도 바울이 자기 고통을 설명할 때 속삭이는 소리.


p. 148
나는 공포의 궤도를 따라 거울을 보았다. 순간적인 무너짐. 찰라의 메마름. 얼굴 거죽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관객 앞에 방치된 여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완전히 상처 입은 소녀. 아무것도 없었다. 논리도 감각도 신체의 마지막 권위도 없었다. 환영도 없었다. 나와 거울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자아의 비극적 손실이란 말로는 부족했다.


p. 151~152
하나의 삶이 일기의 페이지안에서 납작해지듯 최후가 결정된 인생은 그런 식으로 압축되겠지. 나는 그저 하나의 인생, 수백만 인생 중 하나였다. 다른 이의 것만큼 제멋대로이고, 곧 이름 없는 것이 될 이름 있는 임차권. 나는 신이 내린 어둠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이집트인이 되어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나는 무엇이 될까? 누가 될까? 다시 생각했다. 나는 누구였나? 그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어떤 존재도 될 수 없다는 걸.


p. 213
질투를 떨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문득 내 남은 삶이 절망적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처로운 탈출구는 공포보다 더할 것이다. 무슨 이런 인생이 다 있나? 가능성은 모두 다른 데로 떠나버린 모래투성이 세상. 걱정 많은 괴물이 되어 평생 돌 밑에서 웅크린 시간.


p. 220
나에게 사랑이란 숭고한 행동이 아니라 타인의 본질과 나의 본질이 통하는 일. 심판 당하는 사람은 욕망을 발견할 것이다.


p. 247
나는 우리의 애호 목록이 서로의 체크리스트를 따라간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치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p. 264
늙은 여자가 미성년 남자 아이에게 반하는 건 세상이 얼마나 외로운 곳인지 말해주는 은유일 것이다.


p. 340
절망의 깊이는 얕아졌지만 예전 삶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어느 시점부터 나에게 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무엇을 기대하며 세월을 흘려보낼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어떤 때는 하겠다고 선택한 것뿐 아니라 하지 않겠다고 정한 것들도 나를 충족시켰다. 이대로 낫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핑계로 퍼질러 앉아 손톱에 비취색 매니큐어나 칠하고 싶었다. 이제부터 내가 괜찮아졌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오히려 본격적으로 소수자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p. 349
기억이란 엉덩이에서 튀어나와 덩굴식물처럼 등을 타고 올라간 꼬리뼈. 온갖 것을 끌어모아 강아지와 차 바퀴와 민들레로 고정시킨 꼬챙이. 모든 것이 시간의 뒤로 넘어가 구글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무엇이 되었다.


p. 386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을 기억과 망각으로 재조립한다. 그리고 삶의 단계마다 이야기들을 다듬어간다. 그러나 파라의 기억은 시작점부터 종말까지 파장을 그리며 상호작용 없이 떠다니다 서로 닿지 않는 것들을 들추었다. 앞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파라를 떠올려도 영향받지 않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p. 391
한때 세계는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쇼핑몰이고, 워크맨으로 노래를 들으며 어슬렁거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p. 401
문을 연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비유인 줄 알았는데 그날 작업실에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없었다. 동굴 속은 시간을 벗어난 장소, 햇빛을 등지는 순간, 시간은 잊힌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동굴 속의 시간 감각은 기준을 상실하고 갑자기 영원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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