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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보편의 단어(이기주/말글터)

나에대한열정 2024. 4. 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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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주 산문집 《보편의 단어》

이 책을 소개하는 문장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읽고 쓰고 말하고 떠올리는 보편의 단어야말로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지 모른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 좀 부정적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쓰는 언어가 늘 나의 한계일수밖에 없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공감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단어들이 늘 내 생각을 다 나타낼 수 없다는 것에만 마음을 쓴 것이다.

그런데 버팀목이라는 것을 보면서 그럴수도 있구나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보편의 단어'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책 속의 단어들은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지만, 가끔은 어~나는 다른데. 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것은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함과 복잡성 그리고 한개인에게만 느껴질수도 있는 유일성, 그 모든 것을 인정해보자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런 교감을 통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품어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사회가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한 단어가 가지는 다양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사유하고 느낄 수 있는 세계가 그만큼 더 풍요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다른 게 아니고, 다양할 뿐이라는 것.


p. 11~12
난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워지면 그가 남긴 말과 글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 사람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음성과 손가락 끝에서 솟아나는 글자마다 그의 생각과 감정은 풀론이고 삶의 숨결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과 그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는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 사유체제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무의미한 단어는 없다. 우리가 자주 읽고 쓰고 떠올리는 모든 단어에 각자의 삶이 투영돼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과 친숙한 것 모두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일상을 떠받치는 건 후자가 아닌가 싶다. 낯선 것은 우릴 설레게 만들기는 하지만, 눈에 익거나 친숙하지 않은 탓에 마음을 편안히 기댈 수 없다.
삶의 무게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날, 마음을 지탱해 주는 건 우리 곁에 있는 익숙한 것들이다.


p. 17
일상: 불행의 반대
사람은 마음을 잃어버리면 자칫 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홀로 불행 속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잡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일수록, 남들처럼 행복해지려 애쓰기보다 마음의 균열을 메우고 일상을 정돈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p. 28
원망은 다른 감정을 밟고 위로 올라선다.
원망은 여간해선 마음의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p. 71
살아가는 일은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일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기 위해선 그 사람과 내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경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타인과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p. 138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엔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젓한 카페에서 빗소 리와 함께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저 비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무언 가를 좋아하는 일이 이처럼 정교함을 요 할 진대,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은 오죽 할까 싶다. 우린 사랑에 빠지거나 심지어 벗어날 때도 상대를 향해 감정의 촉수를 세워 사랑의 생성과 종말을 감지한다. 섬세하고도 정교하게.


p.156~157
질투는 다스리기 어려운 감정이다. 질투는 입구를 찾기는 쉽지만 출구가 헷갈리는 건물과 비슷하다.
제아무리 타고난 기질과 성정이 온화한 사람일지라도 질투에 휩싸이게 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평정심을 잃고 만다. 그렇다면 언제 질투의 감정이 마음 밖으로 빠져나오는가? 대부분 사람은 자기보다 터무니없니 큰 의자에 앉은 타인보다, 엇비슷하지만 약간 큰 의자를 차지한 타인을 향해 질투의 감정을 품기 마련이다. 또한, 질투의 화살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한때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을 겨냥해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상대와 알고 지낸 세월이 길수록 화살촉은 날카로워진다. 질투의 속성이 그렇다.


p. 159
개인의 정체성과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 사유 체계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론 평범한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보편적인 단어 하나가 마음의 상태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론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떠올린 낯선 낱말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의미한 단어는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읽고 쓰고 발음하고 연상하는 모든 단어엔 각자의 삶이 투영돼 있기 마련이다.


p. 169
종이책을 들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때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책을 뒤적이고 있으면 묘한 동료의식을 느낄 정도다. 마치《화씨451》에 등장하는 저항 세력이라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와우...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다니!!!!! 내가 가졌던 느낌, 생각......)


p. 183
난 허세 섞인 말로 거드럭거리는 사람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이룬 성과와 성취를 필요 이상으로 과시하는 이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들이 허풍쟁이라서가 아니다. 지나친 자랑의 밑바닥에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이중성이 깔린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잘나갈 때는 쓸개라도 떼어줄 것처럼 알랑방귀를 뀌며 접근하지만, 이용 가치가 사라지면 사람을 투명 인간 취급하면서 안면박대하기 바쁘다.


p. 202
분노는 마음이라는 집에 불쑥 찾아오는 방문객과 같아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일단 다가오면 등을 떠밀어 내쫓을 수도 없다.
우린 그저 그 객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적당히 열어놓고 사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뜨거운 감정에 휩싸이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결국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감정이 마음을 점령하는 순간 그 감정이 시키는대로 행동한다. 감정의 노예가 되고 만다.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의 칼에는 손잡이가 없는 탓에 막무가내로 휘두르면 '나'부터 상처를 입게 된다는 서늘한 이치를 망각한 채 말이다.

(황소북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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