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에세이]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브 엔슬러/푸른숲출판사)

나에대한열정 2024. 5. 20. 20:53
반응형


📚 이브 엔슬러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 책은 소수의 사람들을 보호하자고 하는 것도, 대변하고자 하는 것도,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인권에 관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원제는 "Reckoning"이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심판'일수도 '사유'일수도 있다.
이브 앤슬러는 사유의 부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고,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관심과 사랑이 그리고 거기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이브 앤슬러가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을 왜 강조했는지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제일 당황스러웠던 점들은 이게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팬데믹의 단어가 보이고,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여건이 여성들에게 쏟아놓는 것들은 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마음이 아프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고 침묵하고 방관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하다. 글을 보고 있는 동안에도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암담하다. 당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마음 한켠을 끌어안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 책장넘기는 시간이 오래걸린 책이다. 최근에 읽었던 타라나 버크의 《해방》과는 또 다른 느낌.



📒 p. 13
이 책은 속도를 줄이는 것과 되돌아보고, 보고, 진정으로 다시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책임과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순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히도 외로운 우리가 갈구하는 손길,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을 세운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자문하는 이야기다. 에이즈의 시대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페미사이드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슬픔, 트라우마, 지곧한 바이러스,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유에 관한 이야기다.

📒 p. 14
나는 단 한 번도 개인을 정치에서 제대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위대한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했다. "감정이 육체로 들어오는 순간/그것은 정치적인 일이다. 이 접촉은 정치적이다." 나 또한 이를 믿는다.


📒 p. 20
사유는 대체 무엇이며 지금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할까? 사유의 과정은 기억하기, 인식하기, 책임지기의 행위를 수반한다. 눈앞에 있으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수치심을 기꺼이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사유는 개인과 집단의 책임과 그 둘이 언제, 어떻게 교차하는 지를 결정한다. 진정한 사유에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뒤따른다.

📒 p. 21~22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은 어떤 슬픔의 형상이다. 집합적이고 파편적이며 너무 늦어버린 슬픔. 그런 것들이 흘러 모였다. 그것들은 머리보다는 마음을 따른다. 그것들만의 궤적을 갖는다.
그리하여 이것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p. 22
나의 글쓰기는 증인이었다. 고발이며 고백, 발굴, 구원이었다. 단어를 나열하는 일은 일종의 벽돌쌓기였다. 그마저도 아주 잠시만 지탱되는. 그렇게 나는 혼돈과 폭력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렸다. 글 속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족을 찾을 수도 있었다. 우리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 p. 23
나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려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쓴 시구 한 절, 에세이 한 편, 연극 한 편, 기사 한 줄, 책 한 권은 전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내 존재가 증발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벽이었다. 당신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음절과 명사, 동사로 쌓아 올린 존재는 대단히 위태로운 명제와 같다. 읽는 이가 글쓴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치를 모르거나 존중하지 않아, 글쓴이를 거절과 외로움이라는 남루하고 불타는 구덩이로 던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 25
글쓰기는 하나의 생존 방식일 수도 있다. 혼란을 염려하는 방식, 타인의 횡포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방식,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는 방식.

✏️ 이 부분을 읽는데, 정희진《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의 일부분이 생각났다.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언어는 그들의/우리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자원. 불행인건지 그래도 숨통이 있어서 다행인건지. 이겨내고 살아낸 자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 28
나는 폭력이라는 실체가 처음으로 내 몸에 깊이 각인된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ㅇㄹ 향한 내 신뢰가 처음으로 흠들리기 시작한 순간, 두려움의 본질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야 챘던 순간이었다. 내가 나의 ㅈ거이 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집에서 나는 죄수처럼 살았다. 집, 하면 떠오느는 신뢰, 안전, 평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피난민처럼 살았다.


📒 p. 176~177
일찍이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자본주의가 더 큰 이윤을 위해 재난을 빌미로 삼아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조치들을 시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재난 가부장제는 이와 아주 유사하고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남자들은 위기를 이용해 통제권과 우위를 재천명하고 여성들이 힘들게 얻어낸 권리를 빠르게 삭제한다. 전 세계에서 가부장제는 바이러스 확산을 최대한 활용해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여성을 향한 폭력과 위협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남자들은 통제자이자 보호자를 자처하며 이에 개입한다.


📒 p. 178~179
이 파괴적 감염병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광경을 보고 있다.

감금, 경제적 불안, 질병의 공포, 알코올 남용이라는 록다운의 조건은 학대가 발생하기에 완벽했다. 2021년에 자신의 부인, 여자친구, 아이들을 통제하고 괴롭히고 때리는 일에 열성이며 그럴 권리를 가졌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과 그 어떤 정부도 록다운을 계획하며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신경을 거스르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 코로나 시대와 연관되어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문제만 신경썼지, 세상의 어느 부분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이게 지금 이 시대의 일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고 나는 눈과 귀를 막고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팬데믹 이후에 상상할수도 없는 숫자의 여성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은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 p. 227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유명 액션 댄서인 엘리자베스 스트랩은 말한다. "추락?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없다. 다른 어떤 점보다 추락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완전히. 추락은 당신이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다. 미래는 마침내 '지금'이 순간이 된다. 추락할 때 할 수 있는 것은 추락뿐. 계회그 아이디어, 숙련된 기술 따위는 아무 소용없다. 아무것도."




반응형
B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