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나에대한열정 2020. 11. 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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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게 된 이유 자체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장기를 주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라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부품과 같은 존재로서의 인간.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의 제한된 삶, 알고 나서 느끼게 될 두려움. 그래도 '하나의 생명으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인데...


생명의 우열에 대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 것 인지에 대하여,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기적 발현들에 대하여, 혹시나 이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하여...너무 많은 것을 품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p. 30~31

상대가 자기가 만든 물건들, 그리고 자기가 상대가 만든 물건을 사적인 보물로 삼는 일이 어떻게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시 헤일셤에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 얼마나 사랑과 존중을 받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물건을 '창조'하느냐에 좌우되었다. 



p. 48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가 나눈 대화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선생님을 바라보는 내 눈길에 때때로 고개를 끄덕여 주시곤 했어. 그거면 충분했어.


그럴 때가 있더라. 누군가의 끄덕임 하나만으로 충분할 때. 다른 건 개의치 않게 될 때.




p. 58~59

어쨌든 그런 가르침 중 일부는 우리의 내면 어디엔가 침투한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런 경험에 직면했을 즈음 우리의 일부는 어느 정도 그런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어떤 목소리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거야.' 하고 속삭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저 바깥 세상에는 마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려 하지도 않지만 우리 같은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자신을 그런 일들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등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 지나가며 비쳐 보던 거울에 갑자기 뭔가 다른 것, 혼돈스럽고 기괴한 뭔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p. 65

아주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 흐른 후 루시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 뿐이다.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지. 하지만 지금 그걸 설명한다 해도 너희가 이해할 것 같지가 않구나. 언젠가는 너희가 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p. 105

주디 브릿지워터의 앨범 <송스 애프터 다크>의 세번째 트랙인 <Never let me go>를 특별하게 여겼던 이유.


그 노래의 어떤 점이 왜 그렇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걸일까? 가사의 의미를 새기는 대신 나는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고..."라는 후렴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에 걸쳐 간절하게 아기를 바랐으나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여자는 아기를 낳았다. 그 이기를 품에 안고 어르면서 "베이비, 네버 렛 미 고..."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편으로 몹시 행복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아기가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 아기를 빼앗아 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있다. 당시에 나는 그 노래의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런 해석은 그 노래의 나머지 부분과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게 있어서 그 노래는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그 노래를 거듭해서 듣곤 했다.






p. 109~110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테이프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그 일에 내가 얼마나 상심하고 있는가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비밀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헤일셤의 우리 모두가 그런 자그마한 비밀들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의 두려움과 소망을 품고 혼자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은밀한 피난처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우리에게는 잘못인 양 여겨졌다. 마치 그런 행동이 친구들에 대한 배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p. 118~119

"다른 누군가가 너희한테 얘기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해 주마.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p. 127

이야기가 조금 본론에서 벗어난 것 같다. 내가 이 모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토미의 팔꿈치에서 비롯된 '살이 벌어진다.'라는 생각이 우리 사이에서 흔히 등장하던 기증에 관한 농담이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스스로 살을 조금 벌릴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신장 같은 것을 슬쩍 빠져나오게 해서 넘겨준다는 식이었다.



p. 196~197

그 다음, 어째서 우리가 자신의 근원자를 찾아내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자신의 근원지를 찾아내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실제로 그 사람을 찾아내면 그를 통해 앞으로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근원자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 학생들도 있었다. 우리의 근원자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을 뿐,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p. 357

"우리가 너희 작품을 걷어 온 건 거기에 너희의 영혼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좀 더 세련되게 말하자면 그걸로 너희한테도 영혼이라는 게 있음이 증명되기 때문이란 말이다."


"어째서 그런 걸 증명하셔야 했던 거죠. 에밀리 선생님?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구나. 얘야. 오래전 우리가 헤일셤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게 대부분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다고 말이다.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그런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단다. "



이 소설이 영화화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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