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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에대한열정 2020. 11. 1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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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p. 46~47


"나의 생각은, 발설한 순간"


나의 생각은, 발설한 순간, 더 이상

나의 생각이 아니다

죽은 꽃, 내 꿈에 떠다닌다.

바람에 실려 갈 때까지.


흐름을 벗어날 때까지, 외부에서 오는 행운으로.

내가 말을 하면 느껴진다.

내가 단어들도 내 죽음을 조각하고 있음이,

영혼을 다해 거짓말 하는 것이.


그렇게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나 자신을 속이고,

나는 더 새로운 허구의

존재를 만든다, 내 존재인

것처럼 꾸미는.


아, 이미 생각하면서 들린다.

내면의 끝에 자리하는 목소리.

내 내면의 대화 자체가,

나와 내 존재를 가른다.


하지만 내가 사색하는 것에

공간의 목소리와 형태를 부여하는 바로 그 때가 

어떤 끈이 끊기며, 내가 나와 나 사이의

무한한 심연을 여는 순간.


아, 나와 나 사이가

완벽히 조화롭다면,

나와 내가 말하는 것 사이

거리가 없는 내면의 침묵!



p. 78~79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가진 건 영혼 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느끼는 자는 그 자신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나의 꿈 또는 욕망 각각은,

태어나는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어가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p. 86


"나도 안타깝다 대답없이"


나도 안타깝다 대답없이

하지만 결국 내 잘못은 아니지

네가 사랑한 내 안의 딴사람에게

내가 부응하지 못하는 게


우리 각자는 모두 여러 사람이지.

내게 난 내가 생각하는 나.

남들에게는 - 각자 느끼는 대로

판단하겠지. 그리고 그건 엄청난 착오지.


아, 다들 날 좀 조용히 내버려둬.

날 꿈꾸지도, 딴사람으로 만들지도 말아.

나도 나를 찾고 싶지 않다는데,

남들이 나를 찾길 원하겠어?



p. 94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른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른다.

동시에, 안다는 건 돌아다니지 않는 것.

느낀다는 건 언제나 내게

생각을 하는 한 가지 방법.


그래서 지금 이 짧은 노래.

날 상기시키고, 슬프게 하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난 모르겠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나라서인지.


이따금 한 장소에서 선회하는

메마른 잎사귀들이 있지.

나는 나로서 지속하진 못해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지.



p. 96~97


"나는 탈주자"


나는 탈주라.

태어나자마자

그들은 날 내 안에다 가뒀지.

아, 그러나 난 도망쳤어.


사람들이 만약

같은 장소를 지겨워한다면,

같은 존재는 어째

지겨워하지 않는가?


내 영혼은 나를 찾아다니지만,

나는 숨어서 피해 다닌다.

바라건대 그것이 절대

날 차지 못하기를


하나로 존재한다는 건 사슬,

나로 존재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나는 도망치며 살겠지만,

제대로 산다.



p. 108~109


"나는 느낌이 너무도 많기에"


나는 느낌이 너무도 많기에

나를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납득시키는 건 뻔한 일이지만,

잘 따져보면,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생각이었을 뿐,

결국 느낀 건 없었음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갖고 있다.

살아온 삶 하나 그리고

생각해온 삶 하나를.

우리가 가진 유일한 삶은

참된 것과 틀린 것으로

갈리는 바로 그 삶


하지만 어느 것이 참되고

어느 것이 틀린지, 우리 중에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주어진 방식대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은 생각해야만 하는 삶.



p. 125


"너에게 모든 걸 말한 사람에겐"


너에게 모든 걸 말한 사람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마

모두, 이 모두란 걸 절대 말하지 않는 법이니...

벨벳으로 만들어진 이 말들이란

아무도 그 색조를 알지 못하지.


너에게 영혼을 준 사람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마...

영혼은 주는 게 아니니까, 고백이란 건

단지 우리가 말하는 걸 듣다가

평온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


모든 건 부질없고 게다가 거짓말이지.

그건 어린애가 길가에 놓아본 팽이지

그저 보려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건 돌겠지, 아무 말도 하지 마.



p. 128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것"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것.

섹스는 그저 우연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지능을 갖춘 살덩이,

가끔 병들긴 하지만.



p. 150


"병보다 지독한 병이 있다"


병보다 지독한 병이 있다.

아프지 않은 아픔도 있지, 영혼조차 안 아파.

그런데 다른 아픔들보다 더 심하게 아픈,

꿈꾸긴 했지만 현실인 삶이 가져오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고통이 있지, 그리고 그런 감각도 있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것들

우리 삶보다도 더 우리 것인 것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느지막이 존재한다.

그리고 느지막이 우리의 것이다, 바로 우리이다.

넓은 강 흐릿한 신록 위로

갈매기들의 하얀 굴곡

영혼 위로 부질없는 날갯짓

과거에도 나이었고 앞으로도 될 수 없는, 그리고 그게 전부.


포도주나 한잔 더 주게,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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