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손원평 <프리즘>

나에대한열정 2020. 11. 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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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있다. 예진, 도원, 호계, 재인.

드라마처럼 현실에서 우연(?)으로 엮이어 있는 관계.

그렇지만 하나하나의 상황들이 흔하지 않더라도 분명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래서 잘읽히지만,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고 아쉬운.



p. 48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거다. 대개의 경우, 시작은 다르지만 과정은 비슷하고 결과는 언제나 똑같은 법이니까.



p. 118

심심함과 외로움의 차이는 뭘까.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인가.짧고 긺의 차이인가. 깊고 얕음의 차이인가. 그렇다면 역시 나는 깊이가 없는 사람인걸까. 아니면 쉽게 마음을 작동시켜버리는 가벼운 사람인가. 그러나 결코 심심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분명히, 정말로, 확실히 그렇다. 예진은 다짐하듯 생각해보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전혀 개운치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쓴 문장인가 싶어 당혹스러웠다. 요즘 내 머릿속에 왔다갔다 하는 문장들이었다. 날씨가 스산해지면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듯이, 무언가가 계속 마음속을 헤집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 심심한가. 외로운가. 그런데 결론도 없이 웅얼거림만 남았다. 그녀가 느끼듯이, 개운하지 않게.



p. 157

갑자기 태어난 자식에 대한 원망을 대놓고 표현하기에 그들은 스스로가 너무 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대 대신 세련된 방임을 선택했다.


p. 182

"변명이라는 거 알아. 근데 나로선 당신을 사랑하는 게 힘이 들었어. 분명 사랑했고 계속 사랑하고 싶었는데도. 힘겨웠다는 게 아니라 '힘'이 들었어. 때가 되면 손으로 태엽을 감아야 하는 시계처럼 말 그대로 인위적인 노력이, 힘이 들어갔지. 그 버거움을 한 번 놓았을 때, 실수했고 결국 이 꼴이 돼버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않다고 느끼는데), 인간관계 특히 남녀관계에서 노력이라는 걸 해야한다면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느낌 자체가 이미 그 상태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지 않은가. 정말 이 사람이 없으면 못살거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행하고 있는 무엇이든 행복 그 자체일테니까. 



p. 185~186

"나한테 먼저 확인해 보고 싶지는 않았어?"


"좀 더 어렸다면 그랬을 거야. 그런데 이제는…… 뭔가를 물어서 확인해야 되는 거라면 준비가 안된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


더 어렸다면 확인했을 거라는 남자의 대사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했다. 사실, 어렸다면 확인하고 싶지만 말을 못했을거구...나이가 들어서는 확인하는 거 자체가 싫어졌으니까. 무언가 그 과정이 구차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p. 198

그가 소리치는 이유는 자신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 분노는 사랑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기만에서 오는 것일까.



p. 200

나는 누구와 연결돼 있을까.


전에는 연애나 사랑이 의미없이 흔해 빠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이제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라는 건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단 하나,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게, 너무나 와 닿았다. 이런 걸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아픔이나 상처가 덜 생겼을까. 



p. 261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짝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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