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나에대한열정 2020. 10. 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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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의 실험공동주택.

전세난과 저출산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소규모 전원주택.

입주 조건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42세 이하의 부부로, 맞벌이는 안되며, 아이를 세 명 낳는 것이 입주 유지 조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입주하여, 모인 네 가족의 이야기. 


외떨어진 곳에 아직은 입주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의 관여와 잡음이 시작될지.

내 의지와 생활과는 무관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무리 생활.

결과의 반전 같은 것은 기대되지도,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냥 술술 읽히는, 그러면서 건조하고 답답한.


어줍잖은 정책으로는 희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는 것이다.

출산을 전제로 한 삶의 구속. 의도치 않은 육아의 독박. 닫힌 공간에서의 필요 없는 인내.



p. 14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결국은 묻는 사람의 심리란 대체 뭔지를 궁금해 할 틈도 없이.



p. 17~18

어딘들 사람이 둘 이상 사는 곳이라면 참견의 깊이와 농도 정도만 차이 날 뿐 마찬가지일 터였다.



p. 28~29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관절과 같은 것이라 활액이 없이는 삐걱거리며, 그에 따른 통증과 불편을 실제로 느끼고 감당하는 쪽이 으레 따로 있다는 게 단희의 주된 불만이었다.


세상 어느 살갗에 앉은 티눈도 어떤 버려진 선반에 쌓인 먼지도, 그것이 모이고 쌓였을 때 고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p. 67

핵심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서 체세포의 수를 확실히 불리는 거야말로 어린이의 일이었다. 그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일은, 주로 시간을 견디는데 있었다. 시간을 견디어서 흘려보내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 그곳에 펼쳐진 백면에 어린이가 또다시 새로운 형태 모를 선을 긋고 예기치 못한 색을 칠하도록 독려하기. 그러는 동안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



p. 83

그러나 요진은 고의든 실수든 자신의 얼굴에 닿았음이 분명한 신재강의 손가락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터였다. 

세상 모든 남자의 손가락은 그것이 어디에 닿았든 간에 잠시 앉아 앞발을 비볐다가 떠난 파리에 불과하며, 파리채를 제때 휘두르지 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애써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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