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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나에대한열정 2020. 11. 1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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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솔제니친은 1945년 반소행위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여기서 반소행위로 치부된 것은 솔제니친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콧수염남자'라고 빗댄 것이 탄로난 것이다. 단어하나 때문에 8년의 수용소라니. 그러나 이렇게 어이없게 수용소로 간 사람은 너무도 많았다.


1970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나, 소련 정부의 방해로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소련에서 추방 당하게 된다. 그는 심지가 곧은 건지 현실적이지 못한 건지, 구소련 체제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여 어느 진영에서도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 된다는 것.


이 작품은 어떤 특별한 정치행위나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아주 평범한 일반 사람에게조차도, 당시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얼마나의 모순으로, 폭압으로 적용되고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하루 일과를 세세하지만, 너무나 담담한 어조로 써나가고 있어서 그 속에서 보여주는 비참함이나 비인간적인 얘기들은 오히려 무디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 현실을 더 잘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보는 동안, 이데올로기나 스탈린 시대의 지배 체제를 떠나, 인간이 절망적인 순간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 그런 환경 속에서도 계급을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본성?)이 더 다가오기도 했다. 



p. 8

이 봐, 이곳에는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림의 법칙이라는 거야.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 수용소 안에서 죽어가는 놈이 있다면, 그 놈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이고,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그리고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이야."



p. 10

몸을 녹일 유일한 방법은 죽어라고 곡괭이질을 하는 수밖에 없는 곳이다.



p. 13

노동영창은 영창이라고 해봐야 식은 죽 먹기다. 더운 음식을 주는 데다,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어 좋다.



p. 19~20

슈호프는 몇 개나 빠진 이를 쓱 드러내 보이며 천친난만하게 웃는다. 그는 사십 삼년, 우스치-이지마 수용소에 있을 때, 영양 실조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는 동안, 이를  몇 개 잃었다. 그 전에는 이질을 앓아 위장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 때,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지금은 말을 할 때 이 사이로 바람이 샌다는 것이 좀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별 이상 없이 살고 있다.


일이란 것은 마치 막대기와 같아서 양 끝에 있는 법이다. 영리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신경을 써서 일을 잘해야 하지만, 멍청이를 위해서 일을 할때는 그냥 하는 척만 하면 되는 것이다. 



P. 23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10분, 점심과 저녁시간 5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이다. 


수용소에서 가장 배부른 달은 6월이다. 모든 야채가 동이 나고 빻은 곡류로 수프를 끓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굶주리는 달은 7월로서 그때는 야채 대신 쐐기풀을 끓여주기 때문이다.



P. 24

죽이든 죽이 아니든 죽이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P. 30

말이 너무 많이 일을 해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진리라고 하더라도 알아먹어야 진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몸소 벽돌 쌓는 일이라도 한번 해보면 좀 더 기가 죽을지도 모를 텐데.



P. 37

돼지 비계는 반장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생산계획부에 갖다바치기도 해야 하지만, 제 뱃속에도 집어넣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기야, 반장쯤 되면 자기 앞으로 오는 소포를 못 받는다고 해도, 돼지 비계쯤이야 떨어질 날이 없다. 반원들 중 형기는 어른들하고 누구라도 소포를 받으면 반장에게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사히 넘어가지 않는다.



P. 49

죄수들은 생각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언제나 제자리에서 뱅뱅 돌게 마련이다.



P. 53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P. 75

고프치크는 숲에 은거중이던 벤테르파(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집단으로 제2차 세계대전때 소련과 독일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에게 우유를 날라다줬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오게 되었다. 아주 어린애들이라고 해도 형기는 똑같다.



P. 81~82

한때는 아주 좋은 때도 있어서, 무조건 신 년이 언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십구년 이후부터는 시대가 바뀌어, 일단 걸려들기만 하면 모두 이십오 년이었다. 십 년이라면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나갈 수도 있겠지만, 수용소에서 이십오 년을 견뎌보라구?!



P. 151

이젠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걸어간다. 중대원들은 모두 의기양야하다. 토끼들의 즐거움이다. 그래, 우리를 보고 놀라는 개구리들도 있다고 좋아하는 그런 즐거움 말이다.


죄수에게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옆의 죄수다. 만일 모든 죄수들이 서로 시기하지 않고 단결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에이!...



P. 152

이제 집으로 들어갈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모두들 <집으로 간다>라고 말하다. 이 집 외에 <다른 집>에 대해선 하루 종일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다.



P. 175~176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


인간의 배라는 것이 배은망덕한 것이라서, 이전에 배불렀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내일이면 또 시끄럽게 조를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P. 192

열흘! 이곳 중영창에서 열흘을 살고 나면, 이미 그의 건강은 평생을 두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십중팔구는 결핵에 걸려 다시는 병원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중영창을 심오일 살게 되면, 이미 그 기한이 끝나기도 전에 축축한 땅에 묻히고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막사안에서라도 지낼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영창 신세를 지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P. 208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아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답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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