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비톨트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

나에대한열정 2020. 11. 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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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톨트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



낯선 작품에, 조금은 낯익은 작가이름을 보는 순간. 곰브로비치? 곰브리치와 혼동되어, 미술사에서 소설까지 썼나 했다. 그러나 <서양미술사>의 곰브리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라는. 이런 기회에 이름도 좀 정확히 인식해두고.


책표지 뒤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위대한 작가, 곰브로비치" -밀란 쿤데라, 라고 씌여 있는 게  보였다.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레이먼드 카버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대성당> 단편집 한 권 보고 이렇게 표현해서 좀 그렇지만...). 


밀란 쿤데라가 좋아하는 이 사람은?

결론은? 몇페이지 넘어가기도 전에 찜콩작가로 등극.



비톨트 곰브로비치(1904~1969)는 폴란드 태생의 작가이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후 나치치하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고, 공산정권에서는 탄압을 받았던 책이지만, 1950년대에 프랑스에 소개되면서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 지금은 폴란드 고등학교에서 반드시 배우는 필수 작품이다.


요아이 코발스키라는 30대 남자가 10대 소년,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는 눈에는 10대 소년의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어린시절로 납치가 되었다고 설정된다. 그리고 10대 소년들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의 기억이나 사고는 30대까지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그 덕분에 어른들과는 마찰이 생기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알 수 없는 인물이 된다. 그 속에서 느끼는 성숙과 미성숙 사이의 혼란, 욕망의 좌절, 뻔히 보이는 어른들의 선심을 통한 기만과 폭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멋지다.



p. 8

하찮음에 대한, 그리고 수치스러운 천박함에 대한 두려움, 녹아 없어지고 산산조각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또 두려움은 외부에서 나를 위협했다. 가장 심각했던 건 말하자면 내 온몸의 입자들에 연결된 조롱과 야유의 느낌이, 그러니까 내 육체와 정신의 모든 조각들이 나를 은밀하게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는 거다.



p. 19

그렇다. 정신의 세계에는 분명 항구적인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저 타인에 대한 함수일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는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p. 56

과거의 문제는 잘난 노파들한테 줘버리고 오직 오늘의 문제속에서만 사는 사람들, 정상적인 사람들, 어른들은 행복하다. 정말 세 배나 행복하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민족에게 있어서나 이 선택은 결정적이다. 하지만 때로 합리적인 성인이 눈깜빡할 사이에 성숙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시대의 정신과 역사의 리듬에 반대되는 너무 젊거나 오래된 주제에 맞닥뜨렸을 때가 그렇다. 사실 세상을 순진하고 어린애처럼 만들기 위해 위해서는 그런 문제들을 주입하는 게 가장 좋은 길이다. 



p. 110

필리도르 이야기는 구조적 요소며 전환점이고 특별한 통로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피날레고 바이브레이션이며 깊게 파인 주름이고 가늘고 긴 관이다. 



p. 118

따라서 당신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그 태도는 당신의 씁쓸한 열등감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 모습은 마치 억지로 기념물의 받침대 위에 올라서려는 것과 같다. 당신 몸의 가장 소중하고 섬세한 부분들을 망칠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p. 120

명예를 게걸스레 탐하며 대낮에 활보하는 무능이 건강할 수 있는가. 그 모습을 보며 자연은 딸꾹질이 나지 않겠는가. 



p. 122

누구나 조금씩은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인류는 종이나 화폭 위에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의 순간마다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가. 



p. 125

전설을 먹고 사느니 차라리 사실들로부터 교훈을 끌어내기를 바란다. 그래야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럼으로써 믿을만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느라 정신이 빈약해지고 왜소해지지나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순진한 환상, 기만적 허구보다는 언제나 현실이 더 풍요롭다.



p. 126~127

현실속에서는 인간은 자기 천성에 맞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한정된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형식, 스타일, 존재 양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부가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개인이 어떤 때는 지혜롭게, 또 어떤 때는 멍청하게, 어떤 때는 피를 즐기는 야수처럼, 어떤 때는 천사처럼, 어떤 때는 성숙하게, 어떤 때는 미성숙하게, 매번 주어진 스타일에 따라 또 타인에 대한 얼마나 의존적인지에 따라 각기 다르게 외면화되는 것이다. 


여러분한테 형식이란 살아있고 인간적인 것, 실용적인 것, 그러니까 말하자면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호사스러운 표장같은 것이다. 그대들은 종이위에 몸을 숙이고서 바로 자기자신을 잊는다. 그러곤 개인적이고 생생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허하게 추상적인 스타일에 매달린다. 에술을 사용하기 보다는 예술을 섬기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순한 양처럼 스스로의 변화에 족쇄를 채우고 무기력한 지옥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p. 132~133

우리 인간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영원한 미성숙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우리 먼 후손에게는 말도 안되게 어리석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 속에 들어있는 어리석음. 미래가 되면 드러나게 될 그 어리석음의 몫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너무 일찍 스스로를 단정짓게 만드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절대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머지 않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건 이념과 스타일, 논제, 슬로건, 신앙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안에 갇혀서 외부로부터 고립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조금 뒤로 물러서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거리를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 165

한 가지가 사라지고 다른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래서 머리가 텅 빈 그런 괴로운 순간을 보낸 적이 있는가?



p. 174

모든 것은 최초의 일치에 달려 있다. 우리가 바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p. 178

새로운 세대의 스포티한 무지와 이 시대다운 놀라움이 담긴 어투. 그러니까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고 별다른 호기심을 드러내지도 않는 어투였다.



p. 194

하지만 물러서기에는 너무 늦었다. 세상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물러서기에는 언제나 너무 늦었기 때문일 것이다.



p. 209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을 조롱하는 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결국 경의를 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p. 211

자기 것이라곤 모두 다른 한 사람 속에 들어있고, 그 사람말고는 기댈 곳도 접촉할 곳도 없을 때, 송두리째 그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이런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그 사람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제 3가 나서서 최소한 손가락이라도 내 쪽으로 뻗으면서 도와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p. 225~226

멋지게 운이 들어맞는 당신의 고통을 나에게 얘기하지 마시라. 우리가 마치 굴을 입에 넣고 삼키듯이 넙죽 목으로 넘기는 고통이라면. 사탕처럼 달콤한 당신의 수치심, 캐러멜 크림 같은 공포, 케이크 같은 비참함, 사탕과자 같은 고통, 그리고 막대사탕 같은 절망을 나에게 떠벌리지 마시라. 가장 힘겨운 이 사회의 상처, 예를 들어 아이넷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자 가족의 굶주림을 대담한 손가락으로 긁어내는 숙녀는 어째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귀를 후비는 일에는 그 손가락을 쓰지는 않는가. 그게 바로 훨씬 더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전쟁 동안 죽어간 수 백 만명의 사람들, 이런 것은 삼킬 수 있다. 심지어 아주 맛있게 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먹을 수 없는 맛없는 화합물들도 있다. 잡다하고 혐오스러운. 그렇다. 토할 것 같은. 악마적인 그 화합물들을 인체는 삼킬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바로 취향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렇게 맞추어야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죽더라도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더라도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이 고상하게, 지극히 고상하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p. 274

다행히도 현대적 젊은이들의 관습은 말을 많이 하거나 상대에 대해서 놀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모든 일이 저절로 알아서 진행된다는 듯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근심 걱정이 없고 거칠고 간결하고 가벼워야 한다. 현대적 젊은이들은 바로 이런 것으로부터 시를 끌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전통적 연인들이 한숨과 호소 그리고 만돌린의 힘으로 끌어내던 시를 말이다.



p. 299

하지만 기본이 되는 본질적인 고통은 어떠면 바로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한계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상상력은 우리를 한정된 공간 안에 쑤셔 박아버리고,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 않은가.



p. 401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비정상적이로 음침한 길로 빠져드는 것일까? 정상이란 비정상의 심연위에 늘어뜨려진 곡예사의 줄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질서속에서도 언제나 광기가 섞여 있는 것이다.



p. 438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와 나 사이에 다른 인간을 두는 것이니까. 하지만 궁뎅이를 피할 안식처는 없다. 


이제 끝이다. 트랄랄라.

이 책을 읽을 사람한테 한마디 하자.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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