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김려령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나에대한열정 2020. 11. 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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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작가의 말 중에서. (p. 150)


많은 어린이가 학업과 폭력과 가난과 질병 등 여러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저 먼 미래로 가기도 전에 현재가 너무 아픕니다. 어른들이 주변을 좀 더 살피고 마음을 더 썼으면 어땠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세상의 모든 어른이 함께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이 동화는 아픈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고마워서 쓴 글입니다. 여러분이 덜 힘들도록 어떻게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나라의 기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사랑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잠시만 살거라면서 오게 된 철거 직전의 화원, 비닐하우스 집.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은 삼촌의 거짓말로 인하여 어디로도 갈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싸우고, 아빠가 집을 나가고...(물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간다)


4학년 겨울방학에 전학을 했던 상황이라, 새로운 학교에서는 아직 친한 친구가 없는 상태에서 '장우'와 가까워진다. 장우는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아빠와 살면서 새엄마가 생긴 즈음이었고.


두 아이는 비어있는 화원 중에 한 곳에 그들만의 아지트를 마련한다. 그리고 거기서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라는 동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린다. 말 그대로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영상이 조회수 천을 넘긴다.


"이 녀석들이 콘텐츠를 날로 먹네."

"제목과 일치해서 반박할 수가 없다"

"2탄은 언제 올라오나요?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라 안 올릴 듯"

"배경이 무슨 창고 같은데 납치? 맞으면 맨 화면이라도 올려서 형한테 신호 줘라"

"납치 아님. 1:00:21 앞으로 나오면서 살짝 웃음, 32:01 오른쪽 애 입숙 씰룩 웃음 참고 있음.


이런 댓글이 달리고.


그 동영상을 본 장우의 형(이혼한 엄마와 살고 있다)이 집을 가출하고, 그 장소를 알려 달라면서 장우를 폭행하게 되는데...



두 아이는 갑자기 변화한 환경으로부터 비뚤어지지 않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잘 버텨 나간다. 잘 지낸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잘 지내려고 한다. 분명 힘들고 아픈데...뭔가 따듯했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의 이전 작품들처럼, 역시나 좋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각자의 집부터라도, 그들 속에 있는 아이들부터라도 행복하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넓은 시선으로 남의 아이들에게도 그 행복을 더불어줬으면...



p. 24~25

"야, 조장우."

"어? 나현성, 너 웬일이냐?"

"밀가루 사러. 너는?"

"나도 밀가루 사러."

"근데 왜 그렇게 앉아 있어?"

"강력분은 뭐고 박력분은 뭐냐? 중력분도 있다......"

나는 장우 옆에 앉아 밀가루들을 보았다. 다 들어는 봤는데.

"글쎄......얘는 강력한 애고, 얘는 박력 있는 앤가?"

"수제비는 강력하게 해야 하나, 박력 있게 해야 하나?"

"잘 모르겠네. 너네 엄마도 수제비 한대?"

"아빠가. 아빠가 요리할 때 박력이 넘치기는 하는데. 다 때려 넣어."


딸아이랑 같이 읽다가 이 부분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보겠다고. 그런데 시시하게(?) 또는 대단하게(?) 남편은 알고 있었다. 수제비에는 중력분이라는 걸...ㅎ



p. 64

싫다고 하면 괜히 고집 부리는 것 같고, 좋다고 하면 왠지 무성의한 것 같다고, 한번은 그런 것이 조금 불편해서 친구네 간다며 집을 나와 버렸다.



p. 77

속상한 거라도 힘든 거라면 힘든 게 맞다. 내 방도 없고, 씻는 것도 불편하고, 화장실도 불편하다. 이 집은 불편한 것 투성이다. 그렇다고 이 집에서 사는 것이 되게 힘들지도 않다. 나한테 이 집은 힘들다기보다는 속상한 집이다. 엄마 아빠가 싸운 것도 속상하고, 아빠가 나간 것도 속상하고, 엄마가 애써 밝은 척 하는 것도 속상하다. 집을 마구 두드리는 빗소리가 속상하고, 흙무덤에 자란 풀들이 죽어 버려서 속상하다. 이제는 아빠한테 집으로 오라고 하지 못해서 또 속상하다. 이 집은 정말 가만히 있어도 속상한 집이다.


진짜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떤 말로 표현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아이의 감정. 대놓고 표현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덜 힘들텐데, 드러낼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p. 92

내 옷장과 침대는 새로 사 준다고 해서 버렸고, 책상은 놓을 데가 없어서 버렸다. 또 뭘 버렸나. 내 방이 없어지면서 나 빼고 다 버린 것 같다. 잘 버린 것도 있다. 너무 너무 읽기 싫었던 책들도 다 버렸다. 한 권도 읽기 싫은데 엄마 아빠가 홈쇼핑에서 왕창 샀다. 그 책들은 아파트에서 포장한 박스째로 화원에 잘 뒀었는데 이번에 다 버렸다. 엄마 아빠는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찜질방 주인을 안 보는 것만큼 속이 시원했다.(수도와 전기가 끊기면서 2주일동안 찜질방에서 지냈다)



p. 113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엄마랑 아빠랑 싸우는데, 좀 그래.

형 때문에 엄마가 힘든가 봐. 데려가라 안 된다. 그러고 막 싸운다. 형을 버리든지 말들지 알아서 하라고 막......심한 거 아니냐?"

"심했내."

"옛날에는 나 가지고 싸웠어. 내가 어려서 서로 못 맡는다고 했던 것 같아. 자세히는 기억 안 나는데, 그러다가 형은 엄마랑 나는 아빠랑 살았어. 이제는 형 때문에 싸운다. 우리는 부모님이랑 살면서도 버려진 것 같아."


다른 이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앞에서는 말을 가려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의 구업, 입으로 짓는 업보는 믿는다. 이미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누구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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