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의무론>
가끔 너무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남겨야 내 느낌을 간직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이 책도 그 중에 하나다. 모든 의견이 나와 같지 않더라도, 시대에 조금 맞지 않더라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건, 그것 자체로도 충분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 이상이지만.
키케로는 기원전 106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도 아니고, 무려 기원전에.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 산문가, 연설가 그리고 공화정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가였다. 고전철학과 역사 및 정치학에 정통했던 그는 법정에서의 웅변으로 정계에 이름을 날렸다.
마리우스로 시작해서 카이사르로 끝나는 40년의 세월 동안 키케로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포룸(로마의 카피톨리움 언덕과 팔라티움 언덕 사이에 있는 광장으로 시장 또는 정치 집회 장소나 법정으로 이용된 곳)에서 소송을 벌이고, 전장에서 군단을 지휘하고, 집정관이 되어 공화국을 다스리고 총독이 되어 속주를 다스렸다.
그런 그가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에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의 삼두정치가 시작되면서 희생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의 성정에 대하여 포룸에서 비판의 연설들을 하게 되는데, 이런 그를 안토니우스 입장에서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키케로를 죽이게 되고, 그의 머리와 두 손은 포룸에 걸리게 된다. 충분히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그는 굳이 피하지 않고 그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있던 그는, 아들에게 쓰는 편지들의 내용으로 <의무론>이라는 글을 유서처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처음 읽을 때는 정치인들한테 한 권씩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받는다고 해서 읽기는 할 것인가. 고맙게도 읽는다 한들 한 줄이라도 실천해 줄 것인가. 행한다 한들 제대로 해줄 것인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도 이상하게 인용되던데...
그냥 "나"라도, 한 줄이라도 실천하며 살아보자.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는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욕심내본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의 키케로 흉상
제1권 도덕적 선에 대하여
p. 27
도덕적으로 선하고 명예로운 것 전부는 다음 제 개의 부분 중 하나에서 나온다. 그것은 첫째 진리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서 생각되거나, 둘째 인간 사회를 유지하며,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 나누어 주며, 계약된 것에 대한 신의에서 생각되거나, 셋째 고귀하며 굽히지 않는 정신의 위대함과 강직함에서 생각되거나, 마지막 네번째로 행해지고 말해진 모든 것에 절도와 인내가 내재해 있는 질서와 온전함 속에서 생각되는 것이다.
p. 28~29
우리 모두는 인식과 학문의 욕구에로 유도되어 빠져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는 뛰어난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반면, 빗나가거나 잘못하는 것, 알지 못하거나 속임을 당하는 것을 약하고 추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의 본성과 도덕적으로 선한 것에 있어서는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한다. 하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아는 체하여 맹목적인 동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니 이러한 오류를 회피하고자 하는 자는 사물을 숙고하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오류는 애매모호하고 어려우며, 필요치 않은 것들에 너무 많은 정력과 노력을 쏟는다는 것이다.
p. 30~31
정의의 제일차 기능은 정의롭지 못한 것에 의해 해를 입지 않는 한 남을 해치지 않으며, 공공물은 공공을 위해 사용하고, 개인의 사용물은 그 개인 자신을 위해 사용케 하는 데 있다.
정의의 기초는 신의이다. 이는 말한 것과 계약한 것의 변치 않음과 진실됨을 뜻한다.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말해진 것은 잘 이루어졌다는 데서 신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믿기로 하자.
그러나 불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불의를 자행하는 자들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에 의해 불의가 자행되어 자신에게 해가 돌아왔을 때 물리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치지 못하는 자들의 것이다.
더욱이 불의에 대해 방어하거나 저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부모, 친구 또는 조국을 저버리는 것처럼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p. 33
스스로가 제1인자라고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바로 그러한 생각 때문에 모든 신들의 법과 인간의 법을 유린했는데, 그의 무모함이 이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유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 즉 시민 통치, 군대 명령, 권력, 관직 보유로 인한 명예에 대한 욕망이 대개는 가장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가장 훌륭한 재능이 있는 자들 가운데서 솟구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더욱더 주의해야 한다.
p. 34~35
하여튼 플라톤은 철학자들은 강요당하지 않는 한 공직에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고 분명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공직을 맡는다면 더 공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직을 맡는다는 것 자체도 정의로운 것인데. 그것이 자발적이라면 더욱더 정직하게 수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산 증식 같은 가정사를 돌보는 데 열중하거나 특정인들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남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을 애서 보이면서 자기 일만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한편의 불의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또 다른 불의에 빠져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아무런 열의도 보여 주지 않고, 수고도 전혀 하지 않으며, 동전 한 푼도 내놓지를 않아 인간 사회를 유기 또는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p. 37~38
또한 불의는 흔히 법의 자의적 해석, 즉 교활한, 더욱이 악랄한 법의 해석에 의해서도 발생하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적과 30일 간의 휴전을 성립 시킨 후 야밤에 적국의 들판을 기습했는데, 그 이유는 30일 간의 휴전은 주간에만 해당하는 것이지 야간의 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 왕이 아르고스를 공격했을 때 내건 구실이었다.)
그러나 네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불의의 손해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런 자들에 대해서 까지도 지켜서 해야 할 의무들이 있다. 그 까닭은 복수하는 것과 처벌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한계가 그어져 있기 때문이고, 게다가 내 생각으로는 불의를 범한 자가 자기 죄를 뉘우쳐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고,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불의를 행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협상을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전쟁은 불의가 행해짐이 없이 평화 속에서 살기 위해 수행되어야 하지만, 일단 승리를 거둔 후에는 잔인무도했던 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보호해주어야 한다.
p. 44~47
우리는 심지어 가장 미천한 자들에 대해서조차도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장 천한 상태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노예들인데 여기서 우리가 얻게 되는 훌륭한 교훈은 그들을 고용 노동자처럼 다루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심하게 일을 시키기는 하되, 의식주와 같은 근본 문제는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행을 행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 인간 본성에 더 적합한 것은 없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많이 있다. 첫째, 베풂으로써 친절하다고 여겨지게 하려는 베풂의 대상자들 자신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 자체가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둘째, 친절이 베푸는 자의 재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되며, 셋째, 친절이 각자 받을 만한 가치에 따라 베풀어지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의의 기초로서 이것에 근거하여 모든 친절이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① 즉, 사람들이 분명히 순수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남을 돕는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풀었지만 오히려 그 자에게는 손해를 입혔다고 할 때, 은혜를 베푼 자들은 친절하거나 관대한 자가 아니라 위험한 아첨꾼들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은 마치 남의 재산을 가로채 자기 재산으로 만드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불의인 것이다.
② 또 재산 능력보다 더 크게 친절을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정이 허락하는 이상으로 관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우선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관대함 속에는 나누어주기 위한 충분한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불의를 통해 더 큰 것을 강탈하고 탈취하려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본심이 착해서 관대함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명예욕에 이끌려 순전히 과시하기 위해 친절을 베풀고 선심을 쓰는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이러한 가식은 관대함이나 도덕적으로 선하고 명예로운 것보다는, 위선과 허세에 더 밀접하다.
③ 세 번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친절을 베풂에 있어서 그 대상의 가치에 대한 선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 49~50
엔니우스
길 잃고 방황하는 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리켜주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등불로 다른 사람의 등에
불을 붙여 주는 것과 같도다.
그런데 남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이 아니니라.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손해가 없다면 낯선 사람일지라도 무엇이든 주라고 하는 것이다.
p. 52
만약 의무의 대부분이 무엇에 주어져야 하는가를 비교 대조해 보아야 한다면 최우선은 국가와 부모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최대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p. 55~58
스토아학파는 용기를 형평을 위해 투쟁하는 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플라톤의 저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매우 훌륭하다. 그는 "정의와 동떨어져 있는 지식은 지혜라기보다는 오히려 간교함이라 불리워야 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 대비하는 정신 자세도 공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욕에서 취해 진 것이라면, 용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뻔뻔스러움이란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감하고 고매하며 동시에 선하며 정직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지, 추호도 남을 기만하는 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성이야말로 정의의 핵심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증스런 것은 이러한 정신의 고양과 위대함을 추구하다 보면, 너무 쉽게 제1인자가 되려는 집념과 과도한 욕심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용감하고 위대한 정신을 추구함에 있어 각자 자신이 특출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만인 중 제 1인자 아닌 그보다는 유일한 지배자가 되려는 야심이 커지게 된다.
더욱이 사람은 각기 자신의 야심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명예욕 때문에 쉽게 불의를 저지르도록 충동을 받는다. 확실히 우리는 지금 토의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고생을 무릅쓰고 위험한 곳에 나아가면서도, 자기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명성을 원치 않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포에 떨지 않는 자가 탐욕에 눈이 어두우며,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자가 쾌락에 탐닉하는 것은 일관된 마음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유념해야 하며 특히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재산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혐오스럽고 사소한 것은 없으며, 돈이 있다면 자선과 관용을 베푸는 것보다 더 명예롭고 고상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 61
공무에 입문할 사람으로 하여금 저 일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선하고 명예로운가를 고려해 보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공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그로 하여금 소심한 성격 때문에 너무 쉽게 의기 소침해서도 안 되며, 야심 때문에 너무 자신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게 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세심한 준비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p. 65~67
대체로 고매하고 꿋꿋한 불굴의 정신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저 도덕적 선은 육체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력으로 형성된다. 그렇지만 육체는 단련되어 계획과 이성에 복종하여 일을 추진하고 힘든 일은 참아 나갈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탐구하는 저 도덕적 선은 그 전부가 정신의 배려와 인식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확실히 전쟁터에서의 용기보다는 우정어린 대화를 통한 이성적인 분쟁 해결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전쟁을 피하기 위해 국가의 이익마저 저버리는 일은 없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만 전쟁을 수행할 때도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즉, 전쟁은 평화를 추구한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강한 불굴의 정신이란 역경에 처했을 때에 당황하거나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잃어 주위 사람에게서 내침을 받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듯 침착하게 자기 중심을 잡고, 계획과 이성에서 이탈하지 않는 데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도시를 파괴하고 약탈할 때에는 무모하고 잔인하게 하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 특히 소요와 혼란 속에서 죄인을 벌하고 다수를 보호하며, 모든 재산을 정직하고 명예롭게 유지하게 하는 것은 위대한 인물의 의무인 것이다.
물론 위험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용기가 없고 겁이 많아 마치 위험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들 자신을 위험 속에 노출시키는 것도 좋지 않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에 직면헤서는 의사들이 하는 일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가볍게 앓는 환자에게는 가벼운 처방을 내리지만, 중환자인 경우에는 심지어 절망적이지만 위험 부담이 있는 치유책을 써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친 사람이나 고요한 바다에서 폭풍이 일기를 원하는 것이지, 현명한 사람이라면 폭풍이 불어 닥쳤을 때에도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해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다. 이는 폭풍의 피해를 가급적 줄이는 데 성공하는 경우 기대되는 이익이 폭풍으로 인한 혼란을 초래하는 손해보다 크면 클수록 더욱더 그렇다.
p. 69
국가이익보다도 개인의 명성을 중히 여기는 우를 범하는 일은 또한 시민사, 즉 정치에서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최상의 것이라고 느끼고 있지만, 혹시 비난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감히 발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아 장차 공화국의 정무를 맡아보려고 하는 자들을 필히 플라톤의 두 가지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항상 시민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사리사욕을 떠나 시민의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화국 전 시민단을 일일이 보살펴야 하는 것인데, 이때 어느 일부 계층의 사람들만을 돌보다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 경영은 후견인의 일과 같아서 그것을 위탁한 사람들, 말하자면 전체 시민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 70~71
대체로 최대의 불상사는 야망을 달성하고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싸우는 정쟁(政爭)인데, 이에 대해서는 플라톤의 저서 가운데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누가 더 공화국을 잘 통치 할 수 있을까 하고 상호 경쟁하는 자들은 마치 선원들이 우리들 가운데에서 누가 배를 가장 잘 조종할 수 있는가 논쟁을 벌이는 것과 같다."
진실로 정적들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나타내야 된다고 믿고, 또 그래야만 위대하고 용감한 사람의 정신 자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위대하고 뛰어난 사람에게는 정중함과 관용을 베푸는 것보다 더 찬양할 만하고 가치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온화함과 관대함이 선한 것으로 입증된다 하더라도, 공화국을 위해서는 엄격함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처벌과 징계에는 분노가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누군가에게 벌을 가하거나 말로서 질책하는 자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말하자면 공화국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가해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내리는 벌이 지은 죄보다 더 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죄의 이유는 같은데 어떤 자는 처벌 받고, 어떤 자는 소환조차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최대의 금기 사항은 처벌을 할 때 화내는 일이다. 왜냐하면 벌을 주려고 하는 자가 분노하게 되면 결코 과대와 과소의 중간에 있는 저 중용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p. 73
심지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조차도 친구의 의견을 최대로 존중해야 하며, 친구들에게는 전보다 더 많은 우정의 표시를 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아첨꾼들의 말을 듣지 말고, 우리 자신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그런 와중에서는 자칫 기만당하기 쉽다. 왜냐하면 우리가 칭찬받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p. 78~79
사실 정신력과 정신의 본질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그리스어로 호르메라고 하는 것으로 욕망에 놓여져 있는데, 욕망은 사람을 충동시켜 이리 저리로 잡아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며 피해야 하는 가를 가르치고 설명하는 이성에 놓여져 있다. 그 결과 이성이 주도하고, 욕망이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모하거나 부주의한 행동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하며, 참으로 입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은 그 어떤 행동이라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야말로 사실 의무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다.
또한 유념해야 할 점은 욕망을 이성에 복종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욕망이 이성을 앞지르거나, 나태함이나 게으름 때문에 이성을 거들떠보지 않도록 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마음이 평온해야 하며, 그렇기에 모든 정신의 혼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p. 87~88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재능과 특성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자신의 장점과 결점들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적합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여기에 가능한 한 온갖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든지 만의 하나라도 그야말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맞지 않은 일을 떠맡게 되었을 때에는 맡은 일이나 역할이 데코룸하지 않다 하더라도, 가급적 최소한의, 데코룸하지 않은 것으로 서행할 수 있도록 전심전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부여되지 않은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p. 74 각주
decorum: 사물의 적합함의 올바른 인식, 내면적 감정이나 외면적 표상, 언어, 행동, 의상 등에 있어서의 적합함을 의미. 영어 표기로 proper, propriety)
p. 89~90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어떤 인물, 어떤 유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또 어떤 종류의 삶을 영위하며 어떤 직업을 택하고자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생의 진로로 삼고, 대게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는데, 바로 그 때가 사고력이 가장 약한 청년기의 초입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자신의 적성에 가장 알맞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떤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인생의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2천년전에도 생각되어진 것을 난 반평생을 살고나서야 되짚어보다니.
요즘 가장 생각이 많았던 부분이었다. 대부분 자신의 현실적인 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인식하기도 전에, 대학에 무슨 과를 갈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직업이 자신의 꿈이 되어버린다. 아이들의 생기부 작성을 하면서,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잘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기부에 적어 넣을 문장들을 만들어 버린다. 100세 시대라 하면서, 그 삶을 영위해야 하는 기본이 되는 시작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에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떤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정작 지나온 내 시간보다 더 어렵다. 무언가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드는 걸까.
p. 91~92
인생의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서 가장 강한 힘을 발하는 것은 적성이고, 그 다음에 작용하는 것은 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결정할 때에는 필히 적성과 운, 두 가지를 다 고려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둘 중에서도 적성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적성에 맞춰 자기 인생의 전 계획을 수립한 자는 생의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잘못된 게 없다는 생각을 하는 한, 그것이 진실로 적성이니까 시종일관 변함없이 그대로 실행해 가도록 하라. 그러나 잘못되는 경우도 많은데, 만약 잘못되었다면 인생의 진로와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적당한 시기라면 변경은 보다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으면, 진로 변경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행해야 한다.
p. 93~94
정신적 긴장을 풀고 쾌락을 추구하려고 할 때에도 무절제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언제나 수치심을 갖도록 명심해야 한다.
노인들이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무기력해지고 나태함에 빠지는 것이다. 또 사치는 정말 노소를 막론하고 추한 것인데, 특히 노인의 사치란 가장 추악하다. 더구나 노인의 사치 생활에 일시적 충동에 의한 무절제가 가세한다면, 이야말로 꼴불견의 그 추악함이란 이중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그 이유는 늙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데다가, 청소년들의 무절제를 한층 더 후안무치한 것으로 조장하기 때문이다.
p. 97~101
우리가 각별히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적인 것이 있다. 첫째는 여자처럼 부드럽고 연약하게 보여서는 안되고, 둘째는 너무 거칠거나 천박하게 굴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로마관습에도 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목욕을 같이 하지 않으며, 사회와 장인은 함께 때를 밀지 않는다. 그러므로 특히 자연 자체가 우리의 스승이요 안내자인 한, 이런 종류의 수치심을 지니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랑스런 매력이요, 다른 하나는 강건함인데, 사랑스런 매력은 여성의 미요, 강건함은 남성적인 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성은 강건함에 어울리지 않는 장신구는 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제스츄어와 행동에서도 이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성의 강건함은 외모로 나타나므로, 외모는 신체운동에 의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 밖에도 너무 혐오스럽거나 지나치게 깔끔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촌스럽지도 않고 비인간적인 무지란 나타나지 않는 고매함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옷차림에서도 나타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물에서처럼 중용을 지키는 것이 최상이다.
우리는 또한 너무 해이해져서, 개선 행렬의 수레가 굴러가듯 지체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너무 서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은 정신 활동이 자연법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기의 목적은, 우리가 마음이 동요되지 않거나 의기소침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정신을 바짝 자려 예의범절을 잘 지키기만 하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신 활동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사유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이다. 사유는 주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욕망은 행동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급적이면 최고 최상의 테마들에 대해 사유하도록 하고, 욕망은 이성에 복종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음성에서 두 가지를 추구해야 한다. 그 하나는 분명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학파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대화는 부드럽고 딱딱하지 않다는 데에 매력이 있다.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문제는 자기만이 다 아는 양 혼자 떠벌려 다른 사람들의 입을 꽉 다물게 해서는 안 되며,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단 대화를 나눌 때에는 각기 자기 차례가 오면 대화를 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한다.
특히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성격상의 결점이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 대화 장소에 없는 사람들의 명예를 깎아내리기 위해 악의에 찬 농담이나 악담, 비방과 중상모략을 할 때 흔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화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알고, 시작도 좋게 해야겠지만 끝 마무리를 하는 데 있어서도 절도가 있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대화할 때에는 분노나 어떤 탐욕이 표출되지 않도록 하고 무례나 나태한 태도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또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대화할 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아끼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때로는 책망할 필요도 생기는데, 책망할 때에는 목소리를 높여 더 따끔한 말을 해야 하며, 평상시보다 더 화난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그러나 뜸뜨거나 절단 수술과 같은 이런 유의 책망은 가끔 그리고 마지 못해 해야 하는 것이며, 다른 치유책이 발견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책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격분하는 것은 삼가도록 하자. 그 이유는 분을 못이기게 되면 어떤 것도 올바르고 신중하게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망은 대체로 진지하고 엄격하게 하되 애정 어린 책망을 해야지,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p. 102
진실로 사람의 위엄은 그가 살고 있는 집에 의해 갖춰지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집의 덕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집 주인 때문에 집이 명예롭게 되어야지, 집 때문에 주인이 명성을 얻어서는 안 될 것이다.
p. 103~104
모든 행동을 할 때에는 세 가지 유의 사항을 지켜야 한다. 첫째, 욕망을 이성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지를 정확히 살펴 필요 이상도 아니고, 필요 이하도 아닌 그야말로 그것에 알맞은 배려와 노력을 해야 한다. 셋째, 자유인다운 외관과 위엄은 중용을 지켜 갖추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 세가지 원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을 이성에 복종케 하는 것이다.
p. 106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이 실상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런 사소한 잘못들에서 벗어나도록 더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정도에서 벗어나는 사소한 잘못은 어떤 경우에는 사실과 다르게, 아니 어떤 때는 침소봉대된 채로 눈에 띄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에서 사소한 잘못이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더욱 더 힘써야 할 것이다.
남의 도덕적인 과오들을 예리하고 철저하게 파헤쳐 볼 생각이 있다면, 중요한 결론은 종종 사소한 것들에서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의 눈빛, 이마의 찌푸림이나 폄, 슬픈 표정, 환희, 폭소, 떠듬, 침묵, 목소리의 높고 낮음, 그 밖의 것들에서 우리가 취한 행동이 적합했는지, 혹시 의무와 예의범절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남의 행동을 살펴보고 그것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과 태도를 진단하여, 부적합한 것이 있으면 회피하는 것이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흔히 있는 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과오를 발견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의 실수에서 과오를 발견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p. 108
도덕적인 수치심이 없다면 올바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도덕적인 선, 명예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제2권 유익함에 대하여
p. 117
이제부터는 생활의 안락함, 사람들이 향유 할 사물을 획득하는 수단, 권세와 부에 관계되는 그러한 유의 의무들을 취급하고자 한다.
첫째 유익한 것은 무엇이며, 유익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유익한 것 중에서 더 유익한 것은 무엇이며, 가장 유익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p. 126~127
인간이 인간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원천이기도 하고, 또 최대의 손해를 끼치는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은 여기서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누구나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붙잡아 두는 것이 바로 덕의 속성이라고 규정한다.
참으로 모든 덕은 대개 세 가지고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째는 〔지혜〕로서, 어떤 주어진 사물에서 진실되고 순수한 것이 무엇이고 공감이 가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는 무엇이며, 각 사물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즉 인과 관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인내〕로서 그리스인들이 파토스라고 부르고 있는 혼란된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고, 호르마이라고 부르는 본능적인 욕구를 이성에 복종시키는 능력이다. 그리고 셋째는 〔정의〕로서, 우리와 함께 공생 공존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본래 우리에게 부족하여 필요한 것들을 그들의 도움을 받아 풍족하게 소유하고, 만약 그들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없애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고 기도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응징하여 형평의 원칙과 인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p. 130~131
안전뿐만 아니라 권력과 권한을 가장 강하게 지지해 주는 모든 시민의 마음에 호소하고, 공포를 추방하고 어진 사랑을 유지하는 정책을 채택해서 가장 널리 유지하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는 공적 사적 생활에서 원하는 바를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남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공포로 몰아 넣은 자들을 두려워하여 벌벌 떨게 될 것이다.
p. 136
최고의 그리고 완벽한 영예는 다음의 이 세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첫째 만약 대중이 그를 경애한다면, 둘째 만약 대중이 그를 신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셋째 만약 대중이 그를 어떤 찬사와 함께 관직에 따른 영예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는 바로 그 세 가지 조건이다.
p. 142~143
공정치 못한 권리는 권리가 아니었다. 공정한 권리가 정의롭고 선한 사람에 의해 확보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의 확보되지 못했을 때 법이 제정되었고,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그리고 똑같은 목소리로 전달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매우 분명하게 말하기를 영예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 말하자면 지름길이란 자기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에게서 알아내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모든 허위는 마치 작은 꽃과 같이 곧바로 땅에 떨어지고 만다. 실로 어떠한 허위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p. 149~151
봉사, 즉 능력과 근면으로 호의와 관대함을 베푸는 사람들은, 첫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줄수록 친절한 행동을 하는 데 많은 조력자를 갖게 될 것이고, 둘째 호의는 습관에 의해 더 잘 베풀게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게 여겨지도록 훈련이 될 것이다.
아들 알렉산더에게 보낸 서한에서 필립푸스는 분명히 아들이 베풂, 즉 돈을 뿌림으로써 마케도니아인들의 호의를 얻으려 한 데 대해 책망하였다. "잘못이다. 네가 돈으로 타락시키려는 자들이 네게 신의를 지키고 충성을 다 하리라고 하는 헛된 희망에 빠져들게 한 생각은 무엇이냐? 즉, 어떤 생각이 너를 마케도니아인들의 왕이 아니라, 그들의 시종과 돈 대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했느냐?"
그는 아들이 '시종과 돈 대주는 사람'이라고 잘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왕의 수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잘 말한 것은 돈의 베풂을 '타락'이라고 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은 더 나빠지며, 더욱이 그것을 항상 기대하도록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고 근심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남에게 베풀기 위해 강탈이 뒤따르게 된다. 왜냐하면 남에게 줌으로써 궁핍하게 될 때 사람들은 남의 재산에 손을 대게 되기 때문이다. 호의를 얻기 위해서 그처럼 베푸는 자가 되면, 베풂을 받은 자들의 호의를 사는 것이 재산을 빼앗긴 자들의 증오를 받는 것만 못하다.
'베풂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베풀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받기를 원할 때, 어떤 한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p. 156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의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선심을 더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거나 더 잘 되기 위해 도움을 청해오는 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결코 인색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도와줄 적합한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는 정확한 판단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엔니우스는
선행도 잘못 행해지면,
악행이라 생각된다.
고 분명히 말하였던 것이다.
p.159~160
네가 어떤 집단의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원할 때에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흔히 저질러지는 실수이긴 하지만, 해치는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그런 사람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게 되는데,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라. 우연히 그런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부주의의 소치이고, 고의로 한다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 만일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해쳤다면, 왜 그런 짓을 했으며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달리 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서 변명해야 하며, 잘못해서 손상을 끼친 것은 다른 봉사와 의무로서 충분히 보상해주어야 한다.
p. 162
네가 호의와 봉사를 제공함에 있어 최대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추구하지 말 것이며 불의를 피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찬사와 명성의 기반은 정의이고, 정의 없이는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p. 164
모든 행정 업무와 공공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리 추구의 탐욕이 있다는 혐의를 눈곱 만큼이라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 166~167
특히 제 1인자들과 공화국을 통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탐욕보다 더 추잡한 도덕적 결함은 없다. 왜냐하면 공화국을 사리를 취하는데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악하며 불경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렇게 공화국을 파멸로 몰아 넣으면서도, 확실히 그들은 원래 기대했던 인기조차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재산을 뺏긴 자는 적이 되며, 재산을 얻게 된 자는 심지어 전에 재산을 받고자 원했었다는 사실까지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채무관계에 있어서는 말소되기 이전에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기쁨을 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로 재산을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은 자기의 고통을 자꾸 되씹으면서 드러낸다. 그리고 비록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재산을 얻게 된 사람들이 부당하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많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 때문에 더 강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가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영향력이 센가로 판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년간 또는 수 세대에 걸쳐 소유했던 농지를 재산이라고는 전혀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 가지게 하고, 반면에 가졌던 사람이 재산을 잃게 하는 것이 어떻게 형평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제3권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상충
p. 179~180
너는 아테네와 크라팁푸스 스승 때문에 더욱 분발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너는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문화의 진열장에 상품을 구입할 간 것이므로, 만약 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네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아테네시의 명성과 네 스승의 권위에 커다란 불명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라. 그리고 학습이 쾌락이가리보다는 수고라면, 최대한으로 수고하라.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 너에게 모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네가 너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하라.
파나이티우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리적 문제들을 세 개의 일반적으로 제목으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도덕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며, 셋째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유익한 것이 상충될 때,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p. 188~189
만약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자연에 반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다면, 이처럼 인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비정한 인간과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또 사람은 누구이든 간에 그가 인간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서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자연이 규정한다면, 전체에게 공통적인 이익이 되는 것은 반드시 자연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 모두가 하나의 동일한 자연법에 구속되어 있는 셈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자연법은 타인을 해치는 것을 금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p. 193~195
사람들이란 유익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에 접하게 될 때, 일단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그러나 만약 네가 좀 더 정신을 가다듬어 유익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악한 것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보게 되면, 그 때에는 유익함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악한 것이 있는 곳에 유익함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도덕적으로 추악하게 타락하는 것보다 더 그처럼 자연 상태인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왜냐하면 인간 본성은 정직과 조화와 일관됨을 요구하며 그 반대의 것들은 거부하기 때문인데), 그리고 유익함보다 더 그토록 인간 본성에 합치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때에는 확실히 같은 사물 속에 유익함과 도덕적으로 악한 것이 공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만약 우리가 원래 도덕적으로 선하게 태어났고, 도덕적으로 선이라는 것이 제논(스토아학파의 창설자)이 이해하듯 추구 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고, 분명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듯 나머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무게가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옳다면,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다. 즉 도덕적으로 선한 것, 그것은 유일한 선, 아니면 최고의 선이다. 그런데 선한 것은 확실히 유익하다. 고로 도덕적으로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유익하다.
도덕적 선으로 보이는 것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나쁜 줄 알면서도 물질적 이익에 눈이 어두어 죄에 손을 댈 것인가 고민하면서 망설이는 자들, 즉 우유부단한 이런 유의 사람들은 만인의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 까닭은 비록 그들이 자기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그 생각 자체에 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생각 자체가 도덕적으로 악한 것일 경우에는 추호라도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생각을 말아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이 비밀 속에 은폐되었으면 하는 헛된 희망과 막연한 기대감을 우리의 모든 사고 방식에서 추방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모든 신과 인간의 눈을 피해 자신을 숨길 수 있다 할지라도, 탐욕과 부정, 일시적인 충동과 무절제한 사고와 행동으로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p. 199
의무감에서 가장 큰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우정의 경우이다. 우정의 경우, 친구를 위해 옳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친구의 도리가 아니며, 그렇다고 옳지 않은 일을 친구 사이의 정에 이끌려 하는 것도 친구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다.
p. 204
도덕적으로 추하고 옳지 않은 것, 그것은 결코 유익하지가 않으며, 심지어 네가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을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수단을 통해 얻을 때조차도, 그것은 유익하지가 않다는 사실이 남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을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이것 자체가 참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p. 208~209
참으로 네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든 다 네가 숨기는 것은 아니나,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경우, 그들에게 이득이 됨에도 불구하고 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않을 때, 그것은 네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숨기는 행위이며, 이런 행위를 한 자는 침묵한 것이 아니라 숨겼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아채지 못하겠는가? 확실히 이런 행위를 한 자는 결코 정직하지도, 순박하지도, 명예롭지도, 정의롭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람이며, 오히려 교활하고 속이 컴컴하며, 간교하고 남을 잘 속이며, 사악하고 난폭하며, 사기와 음흉의 세계에서 자란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 모든, 그리고 다른 많은 나쁜 비난의 수식어가 붙은 명칭을 듣는 행위를 하는 것이 과연 유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실제로 거짓말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p. 255~256
우리가 가장 너그럽게 쾌락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쾌락은 아마 인생에 양념 같은 맛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쾌락은 실제로 유익함이란 하나도 없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내 아들 키케로야, 이제 너는 아버지인 나에게서 큰 선물, 즉 나의 위대한 사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 선물은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신 상태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만큼 너는 이 세 권의 책을 크라팁푸스 선생의 강의록 속에 끼워 넣고 다니면서, 너의 동료 친구인 것처럼 잘 간수하면서 항상 기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조국이 분명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들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의도했던 대로 지금은 아테네에 갔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너는 내게서 또한 무언가 듣게 되었을텐데, 그 대신 이 책들을 통해서 내 목소리가 네게 전달되었으니, 너는 네가 시간을 낼 수 있는 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니, 실제로 정성을 들여 많이 읽도록 하여라. 거듭 말하거니와, 그 책들 속에는 도처에서 내 음성이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이러한 부류의 지식을 학습하는 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을 내가 알게 되면, 그 때 나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직접 네 얼굴을 보면서 더 많은 철학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네가 해외에 있는 한, 나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운데 서신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잘 있거라, 나의 사랑하는 키케로야. 내게는 네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지만, 이러한 나의 충고와 훈계를 깊이 새겨듣고 이를 실천한다면, 네가 더 많은 사랑을 나에게서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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