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비문학반

사이토 다카시 <곁에 두고 읽는 니체>

나에대한열정 2020. 11. 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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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에게 '사이토 다카시'라는 이름은 한때 좋아했던 일본인 야구선수이름이 먼저다. 90년대와 2000년대 일본과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지금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투수코치로 있는.


그래서 이 책을 쓴 저자의 이름을 볼 때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 투수를 떠올린다. 국내에 워낙 번역되어 있는 저자의 책이 많아서, 나와 같은 사람은 그닥, 아니 전혀 없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다시 읽을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 시간에 니체의 책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100% 그렇다"이다. 이유는 니체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책이기 떄문에.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책의 끝 부분에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니체의 말>이라는 부록이 있다. 본문에서 인용된 글귀들이 실려있는데, 그것만 여러 번 읽는 것도 참 좋다.

 



프롤로그

p. 16~17

니체는 사람들이 상식이나 관습을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무조건 당연하다고 여기며 생각을 멈춰버리는 태도에 항상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궁리하며 계속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답을 찾았는데, 이런 그는 '반역의 사고를 하는 제안자'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은 타오르는 불꽃'이라고 말했던 니체의 힘찬 메시지를 느껴준다면 더없이 고맙겠다.




p. 20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에 이어질지 모를 장벽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21

나는 독자들로부터 책에 사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먼저 내 이름을 쓰고 그 옆에 '동경하는 것을 향한 화살이 되어라!라는 문장을 덧붙이곤 한다. 이것은 니체의 '초인을 향해 날아가는 한 발의 화살'이라는 표현을 변용한 것이다. 따라서 '동경하는 것을 향한 화살이 되어라'라는 말의 뜻을 달리 표현하자면 '자신이 동경하는 것을 향해 끝없이 화살을 쏘아대는 전사가 되어라'일 것이다.



p. 23

확고한 비전을 세워야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의욕을 일깨울 수 있다. 흐리멍덩한 비전으로는 타인을 감동시키기는커녕 자기 자신조차 움직일 수 없다. 목표한 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집요하고 뜨거운 열정이 뒤따라야 하고, 이를 지탱하는 치열함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p. 25

니체는 흐지부지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제일 싫어했다. '자기 인생에 온 힘을 쏟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말했다. 한 발의 화살이라도 진심전력 최선을 다해서 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p. 27

니체는 동경하는 것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끊임없이 또 다른 동경을 끌어당긴다고 말했는데. 동경은 자기 자신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니체는 저서 <반시대적 고찰>에서 '얼마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이 경의를 표하는 대상을 자신 앞에 열거해보라고 했다. 이 목록은 본래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른바 '동경의 화살'은 이미 자신의 본질이기도 한 것이다.




p. 28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항상 존귀한 인간으로 대하라.

<이 사람을 보라>




p. 35

니체는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세상의 난관을 돌파하는 힘이 나온다고 말했다. 자신을 왜곡해서 보지 않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봤을 때 단순히 '자랑'이 아닌 자기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다.



p. 41~43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 속에 없는 것들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니체가 자신의 숱한 저서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책이라고 말하는 <즐거운 학문>에 이런 말이 있다.


"똑같은 것을 대해도 어떤 사람은 거기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한두 가지밖에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를 능력 차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풍요롭게 해줄 대상을 차지 말고, 나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능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자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p. 47~48

니체는 575개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는 책 <아침놀>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면 자기 자신까지 기쁨이 넘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양손에, 그리고 가슴에 기쁨이 가득할 것이다."


오늘부터 가족이나 동료에게 내가 먼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한다면, 니체의 말처럼 당신의 양손에, 그리고 가슴에 기쁨이 가득해질 것이다.




p. 50

니체는 <아침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고 항상 성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습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p. 53~54

니체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인간관계에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었다. 친구란 서로 믿는 두 사람이 초인을 목표로 하는 한 발의 화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관계라는 게 니체의 생각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향상심을 높여주지 못하는 인간과는 사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스리랑카 출신의 승려 월폴라 라훌라의 책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가 감명 깊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다.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우수한, 혹은 동등한 친구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붓다도 이런 말에 동의했지만, 만약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라고 말헀다."




p. 58~59

니체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마음을 열거나 동정을 나누기보다는 때에 따라서는 친구를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엄격하게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니체는 좋은 적으로 관계를 이어갈 때 우정이 더 깊어진다고도 했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에서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감동하며, 울고 웃으면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당신은 함께 침묵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아갈 수 있겠는가? 니체가 원하듯이, 당신이 먼저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그의 삶을 함께 밝히는 동반자로 걸어갈 수 있겠는가? 니체의 충고를 읽으며 진정한 친구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보기 바란다.





p. 64~65

"우리가 지금보다 더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알게 된다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기뻐하는 기분 따위는 자기 자신 안에서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타인에게 고통이 되는 것을 생각해내는 일도 아예 사라질 것이다."


"작은 일에도 최대한 기뻐하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덩달아 기뻐할 정도로 즐겁게 살아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잡념을 잊을 수 있고, 타인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심도 옅어진다. 부끄러워하거나 참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싱글벙글 웃어라."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썼다.




p. 70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에서 우수한 사람을 아래로 끌어내리거나 해서 무리하게 평등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인간을 진보하게 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평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욕망을 갖고 있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을 갖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따라서 누군가 평등을 부르짖을 때는 그가 말하는 게 어느 쪽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p. 77

니체는 <아침놀>에서 고독이 가치를 설명하며 이렇게 썼다.

"살면서 때로는 멀리 보는 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친한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생각하면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그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처럼 어떤 대상과 얼마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 79~80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고독에 대해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 자기를 상대해 줄 친구를 찾고, 막연한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할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기쁨을 나누는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고독으로 인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인가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으면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영국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앤서니 스토박사는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가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게 아닐까?"



p. 84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한 법이지만, 무슨 일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p. 85~87

니체에게 현재라는 시간은 '문'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문의 안과 밖은 과거와 미래의 길로 연결된다. 문의 안쪽은 현재지만, 그것을 열고 나가는 순간 안쪽은 과거가 되고 이제부터 미래가 시작된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순간이야말로 모든 과거와 미래가 만들어지는 필연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간단히 말해서 삶은 모든 게 필연이라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을 필연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모든 운연의 퇴적이야말로 필연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된다. 니체는 바로 여기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걸 쉽게 바꿔 말하면 이렇다.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라!"

삶을 부정하면, 달리 말해서 자신을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열심히 살기는커녕 어떻게든 현재의 삶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결과가 어떨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침놀>에서, 니체는 지금 그대로의 몸으로 자기 삶의 꿈을 실현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다. 그대는 그 꿈을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허약한가? 용기가 부족한가? 그대의 꿈 이상으로 그대 자신인 것도 없다. 그 꿈을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그대가 온 힘을 다해 이뤄내야 할 평생의 숙제다." 



p. 98

용기는 죽음을 죽인다 그때 용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101~102

현재라는 시간을 살면서 과거 어느 시점에 아무리 가정법을 대입한다해도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니체는 얼토당토않게 되지도 않을 일에 집착해서 책임을 회피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라고 말한다. 현재를 나의 신념과 이상으로 꽉 채우고 살아가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니체의 말에서 산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굴려 올리는 행위를 무한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땀 냄새가 난다.



p. 106

나 자신에게 던지는 "왜?"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아주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금세 알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을 흉내 내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나의 길이 명료하게 보이기에 이제 남은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우상의 황혼>




p. 124

그대의 사상과 감수성 뒤에는 강력한 지배자가 있다. 그대가 모르는 그 현자의 이름은 "본래의 나"다. 그대의 육체 안에 그가 살고 있다. 그대의 육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162

사람은 항상 껍질을 벗고 새로워져야 하고,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층 새로운 자기를 만들기 위한 탈바꿈을 평생 동안 멈추지 마라.

<즐거운 학문>



p. 165

니체는 1880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배움을 통한 발견과 탐색의 기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배우고, 지식을 쌓고, 그것을 교양이나 지혜로 확장해나가는 사람은 삶이 지겨울 겨를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전보다 한층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사소한 데서 교훈을 찾아내고, 사고의 빈자리를 채울 정보를 얻어낸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삶은 더 많은 지식과 의미 있는 충만함으로 가득해진다."



p. 171~172

산다는 것 자체를 하나의 축제로 여기면, 우리의 삶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해진다.


현재가 지겨운 사람에게 원하는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로 그것이 니체가 현재를 사랑하라고 말한 이유다. 니체는 <방랑자와 그 그림자>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너무 소홀히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고, 정욕 때문에 아이를 낳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들은 현재보다 더 나은 멋진 삶은 여기가 아닌 어느 먼 세상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이제 현재의 삶을 확고히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흔들림 없는 믿음의 시선을 보내야 한다. 이런 태도만이 우리를 제대로 살게 만들기 때문이다."



p. 176

창조적인 일을 하든 평범한 일을 하든, 항상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임해야 순조롭게 잘 풀린다. 그래야 사소한 제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평생 이런 마음을 지켜나가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p. 194~195

니체는 단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며, 생활에서 책을 통한 지식을 직접 체험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방랑자와 그 그림자>에서 강조했다.


"다방면에서 다양한 체험이 사람을 한층 현명하게 만든다. 따라서 살면서 체험하는 모든 일들이 유익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무엇인가 체험하고 있을 때는 완전히 몰두해야 한다. 중도에 체험하는 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러면 전체를 마음껏 차분하게 집중할 수 없다. 반성이나 관찰은 그 뒤에 오는 것으로, 이때 비로소 새로운 지혜가 생산되는 것이다."



p. 198

자기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영웅을 외면하지 마라. 더 높은 곳을 향한 꿈과 이상을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이 말하지 마라. 살면서 어느 사이에 꿈과 이상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비웃게 되고, 시샘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러면 발전하겠다는 의지나 자기 자신을 극복하겠다는 강고한 마음 또한 버려지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206

우리 몸의 감각이나 관능을 저질스럽거나 부도덕한 것, 또는 우리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 단순한 뇌의 화학적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멀리하지 마라. 자기의 감각을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 인간은 신체의 감각과 관능을 예술로 승화시켜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왔다.

<권력에의 의지>



p. 216

니체는 어려서부터 항상 '왜?'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찾기 위한 그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사망하기 2년 전에 펴낸 그의 저서 <우상의 황혼>에 죽을 때까지 '왜?'라는 물음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로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의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 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p. 224

천부적인 능력이 없다고 비관하지 마라. 재능이 없다면 그걸 습득하면 된다.

<아침놀>




2020/10/28 - [북리뷰/문학반]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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