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비문학반

배철현 <승화>

나에대한열정 2020. 11. 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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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몇 권의 책이 언급되어 읽었다는 흔적만 남긴다. 고전문헌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던데...내가 아는 그 범주는 아닌듯하다. 한 권의 책으로 평가한다는 게 뭐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게 보여질 때도 있는 법이니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인생의 구원은 개별 사물의 전체적인 실체와 그 소재와 그 원인을 꿰뚫어 본 뒤, 온 마음을 바쳐 옳은 것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 달려 있다. 선행에 선행을 이어, 그 사이에 조그만 틈도 주지 않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다 -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 24



p. 44

로마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네로 황제로 부터 자살을 명령받은 65년에 <섭리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행운이라는 것은 대중에게도, 비열한 사람에게도, 훌륭한 사람에게도 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들만의 특권은 따로 있습니다. 인생의 역경과 공포를 고삐로 채우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항상 행복하고 번창한 가운데 인생을 보내는 것은, 인생에 담긴 다른 반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 운명이 당신에게 당신의 덕, 당신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가 당신이 위대한지 알겠습니까?



저는 어느 누구도 그의 더러운 발로 제 마음을 밟도록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 마하트마 간디



p. 53

20세기 러시아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이렇게 말한다. 

"용감한 개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거짓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p. 57

자신만의 양심에 복종하는 행위가 자유이며, 다른 사람의 양심을 경청하는 행위가 배려이자 친절이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 본 적이 없어 양심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무식이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언행이 수치다. 나는 이 양심의 소리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떠드는 허망한 소문에 순응할 것인가?



아픔과 고통은 드넓은 지성과 심오한 마음을 위해 꼭 필요하다. - 도스토예프스키



p. 68~69

행복이란 자신에게 허락된 이 무의미한 시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놀이다. 행복이라는 영어 단어 'happiness'는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 동사 'happen'에서 유래했다. 행복한 사람은 이 우연한 순간을 운명으로 여기고 최선을 경주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치부하며 그럭저럭 산다.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두려움은 아픔과 고통을 배가시킨다. 우리는 실제보다 그것에 대한 상상으로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심지어 공포 상태로 진입시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생각이다. 해를 당할 거라고 상상하는 순간, 그 폐해는 우리를 엄습해 이내 우리를 질식시킨다.




p. 88

삶의 의미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때 건져 올릴 수 있는 바닷속 깊은 곳에 숨겨진 진주다. 내 마음의 등불로 빛을 비춰야 할 어둠, 그것이 바로 삶의 의미 아니겠는가!




과거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한 자리에서 같은 상황을 봐도, 그것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억되는 사실들은 다르게 남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인식되는대로, 편한대로. 그렇게 과거는 그들만의 영역으로 자유롭게 각인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추억을 회상하면 우리가 같은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닌것을, 아마 우리들 누구나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p. 119

인간은 생각의 가감 없는 거울이다. 솔로몬은 <잠언>23장 7절에서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다"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듯하다. 가끔은 내면에 속해 있는 것들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겉으로 드러나면서 다듬어지는 모습 말고, 아무 거리낌없이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들.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들. 튀어나올까 두려운 것들. 어쩌면 다행이다. 사람됨이 다 보이지 않아서. 




본다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의 이름을 잊는 것이다. - 폴 발레리



 p.143

누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내가 자주 하는 그것, 취미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강요도, 방해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선택할 그 일이 나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취미 생활로 당신 삶의 정체성과 철학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의 글처럼 취미를 생각해보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그런데 그걸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정말 아주 극심한 일부분일 뿐. 오히려 내 취미들을 나열하니 내가 포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인간의 상상과 실현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건널 수 있는 건 간절한 마음이다. - 칼릴 지브란




p. 170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을 응시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가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간절이란 자신의 심장을 칼로

베어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고도 긴박한 마음이다. 


살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못할 때, 그건 간절함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 간절함이 절실하지 않아서 안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아무리 간절하고 절실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 내 힘으로는 죽어도 안되는 것들이 있더라.  그래서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간절함이 부족해서 안되었다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나의 자만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산 정상에 오른 사람은 그 동안 일어난 모든 비극에 웃을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숭고함이란 당신의 이전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p. 280~281

만일 내가 스스로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방치하거나 내가 아닌 타인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불행이 발생한다.그런 방치가 부패다. 


또는 자신이 스스로 변화를 연마하지 않고 주변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산을 떤다면, 그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다. 인간은 자발적 수고 없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나는 타인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런 유도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임무가 있다. 나 스스로의 변화다. 나의 변화를 보고 상대방도 그 기운으로 서서히 변화한다. 


자기 변화는 주변에서 일어날 변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변화는 엉켜있는 실타래를 나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위로 하나씩 풀어내는 행위다. 변화는 누구에게 요구하는 폭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탁하는 정중한 초대이며, 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의도하는 섬세한 연습이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신을 변화의 대상으로 삼아 변화하고 있는 중인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 둘 사이에 인식의 문이 존재한다. -올더스 헉슬리




p. 289

니체는 인간이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숭고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이유는, 그 목소리가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성공, 확신 그리고 용기를 열망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든 과정인 자기변모와 자기진화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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