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단상 - 20대 언제인가, 정동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친한 친구 넷이서 정동진을 갔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 덕분에 마을 하나가 관광지가 되어버린...텔레비젼을 잘 안봐서 그런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던 곳.
내가 그곳에 처음 갔을 때는 모래시계라는 이름을 가진 통나무 민박집하고 어느 정도의 민박집이 막 생겨나고 있었던 때. 그러니까 아직 정동진이 완전히 상업화되기 전이었다. 그냥 아직은 순수한 어촌...바닷가 느낌 정도.
우리가 머물렀던 민박은 각 방문앞에 개별 파라솔이 있고, 그 근처에서 취사도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 옆방에는 중학생 꼬마 4명이서 자기네들끼리 놀러를 왔다. 그 나이때는 그렇게 친구들과 어디를 가본다는 걸 생각도 못했던지라 그 아이들이 신기하기도하고, 부럽기도 하고...
잠이 많지도 않지만, 서른살 정도까지는 밖에 나가면 아예 잠을 자지를 못했다. 정동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고, 친구들은 들어가서 자고...난 혼자 밖에 앉아 있었는데, 옆방 아이 하나가 묻는다. "누나, 라면 있어요?"
"응, 끓여줄까?" 그게 그 아이와 나의 첫대화였던듯 싶다.
그렇게 라면을 먹이고, 커피나 한잔 할까하고 물을 끓이는데, 그 아이가 "누나, 라면도 얻어먹었는데, 멋있는 거 보여줄게요. 같이 가요~" 하는 것이다.
" 이 어두운데???"
아직 개발이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그 주위는 정말 암흑천지인...설마 이 꼬마가 이상한 행동을 하겠어?
그 아이가 가자고 한 곳은 바다였고, 바다도 모래사장도 어둠뿐인 시간이었다. "여기에 뭐가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봐요~"
정말 5분이나 지났을까. 수평선이 끝나는 듯한 곳. 일제히 곳곳에서 불이 켜졌다. "와우~~저게 뭐야???"
그 아이는 오징어배라고 했다. 암흑속에서 보이던 그 불빛들은 얼마나 화려했는지 모른다. 그저 넋을 잃고 보게 되는......
아직도 정동진을 떠올리면 소나무가 있던 기차역보다, 바다에 떠있던 해파리들보다...그 아이 덕분에 볼 수 있었던 오징어배들이 생각난다.
그 아이 잘 컸겠지. 지금은 아저씨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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