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오래된 단상 - 걸스카우트 2

나에대한열정 2021. 1. 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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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단상 - 걸스카우트 2


우선은 다음 학년 아이들을 뽑을 때 대대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바로 성적표 지참. 

난리가 난리가 아니었다. 걸스카우트가 공부하는 동아리도 아니고 애들을 왜 성적으로 뽑냐고.


그러나 난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선생님의 편애는 어마무시했다. 아마 학력고사 세대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것이다.

내가 캡틴인 이상 잘나가야 된다는 것. 그래야 학교 축제를 장악할 수 있다!!

당시 이런 비슷한 동아리로는 한별단과 RCY가 있었는데, 학주가 인정하는 집단이 학교 축제때 교문에서 학교 안내를 맡을 수 있었는데, 난 꼭 그게 해보고 싶었다. 학교의 얼굴.


역시나 성적표의 효과는 좋았다. 공부도 잘하면서 에쁜애들이 꽤나 모였고, 학주의 눈에는 이런 집단이 안이뻐 보일 수 없었다는 것. 그 해 우리는 학교 축제때 교문담당이 되었다.


드디어 축제가 시작되고,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학교를 찾는 이들의 안내자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큰 남자아이 한 명이 앞에서 계속 왔다갔다..."학교 소개 시켜 줄까요?" 그 애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내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는 처음 꺼낸 말이, "나, 그쪽 봤어요."

"어디서요?" 그리고는 그 남자애를 다시 쳐다 보았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아이인데...저 키로는 한번 봐도 기억할텐데. 그 애의 키는 185가 훨씬 넘어보였다. 내 키가 그 애 어깨근처정도 였으니까.


"우리 학교 사진부 전시회 준비하는 곳에서요. 아마 다음 주 우리 학교 축제에 오면 볼 수 있을 거에요."

도대체 뭐라는 거지.내가 왜 거기에 있어...


학교 축제는 3일간 계속되었는데, 그 남자애는 다음날 또 찾아왔다. "어제 못 본 곳이 있어서..." 그리고는 다시 나랑 학교 한바퀴를 돌고, 돌아가려는 길에 주머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주었다. 순간, '뭐지 이 사과는'...


당시, 축제에 오던 남자아이들은 대부분이, 장미꽃같은 그 또래 여자 애들이 좋아하던 꽃을 들고 오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 뜬금없는 사과에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그 아이가 교문 밖을 나가고, 나는 그제서야 쥐고 있던 사과를 쳐다 보았다. 그런데 뭐라 할까. 정말 오랫동안 이 사과를 공들여 닦은 느낌? 그렇게 반짝반짝 이쁜 홍옥은 처음 본 듯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다음날도 와서 사과 하나를 주고 갔다.


쪽지와 함께,

"전 **고등학교 2학년 ***라고 합니다. 우리학교 축제는 다음주 목요일부터 시작하구요. 저는 문예부 시화전쪽에 있어요. 그때 오면 사진전 같이 보러가요. 기다릴게요."



※ 오래 전...이쁜 추억을 준 그 남자아이에게...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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