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아니 결혼과는 별개로 난 내 주니어들을 어떻게 키울지를 생각해왔던 거 같다. 심지어 독신을 외치던 시절에도 말이다. 그중에 가장 큰 두 줄기는, 내가 자란 것처럼 키우자와 사교육은 시키지 않는다였다.
1. 내가 자란 것처럼 키우자.
처음에는 나처럼만 크면 되지 않겠어?라는 오만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그게 오만이라는 것을 안 것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어느 때인가부터,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보다였는데, 그 상태가 주기적으로 보이는 듯했고, 그래서 달력에 체크를 하고, 아이의 시간표를 보다 보니 그날마다 수학이 보였다. 혹시? 설마. 그래도 아이한테 수학이 어렵냐고 물었다. 아이는 주저 없이 그렇다는 대답을 했고, 그래서 머리 아픈 거냐고 했더니, 맞다는 답이 돌아왔다. 1학년 수학이 어디에 무엇이 어려운 거지? 그때 난 잠시 당황했던 거 같다. 아니 멘붕이었다. 그래도 문제는 해결해야 되니, 교과서를 한 권 더 사서, 수업 전에 미리 예습을 해서 보냈다. 그리고 아이의 두통은 없어졌다. 그리고 그 두통은 내게로 왔다. 왜 수학이 어려울까라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나와 아이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생각한 게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자란 것처럼 키우자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울타리는 되어주되,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 그릇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습을 위한 그릇을 만드는 시기라 생각한다. 많은 것을 보고 읽어야 하는 시기 말이다.
정말 공부가 필요한 시기에 그것을 들이부었을 때, 그걸 받아들이고 흡수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만드는 시기. 내 그릇이 종지밖에 안되는데, 거기다가 들이부은들 다 넘치기만 할 것을. 그래서 난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학원 안 보내는 나를, 그들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2. 사교육은 시키지 않는다.
이 부분은 내가 자라온 부분과 좀 다르다. 국민학교 시절, 난 학원을 다섯 군데는 기본으로 다녔다. 물론 모두 내가 간다고 먼저 엄마에게 통보하고 다닌 곳들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이후에는 강남 8 학군에서, 일명 돼지엄마라 불리는 친구의 엄마 덕분에 참으로 다양한 사교육을 받았다. 중학교 때 절친인 친구가 고등학교가 다른 곳에 배정되어, 그 친구를 만나려면 같이 과외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물론 아주 가끔은 도움이 되는 수업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나를 어느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들은 나만의 시간들이었다. 혼자 몇 시간이고 고민하면서 풀어내던 문제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어쩌면 정말 그 세계를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 있게 사교육을 반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조금의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나보다 뛰어난 아이들을 보면서, 내 생각 때문에 아이들을 우물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도, 그래도 학원이나 과외는 아니다.
그래도, 그래도 가끔 물음표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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