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리뷰

누구도 무엇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 케빈에 대하여(2012)

나에대한열정 2021. 3. 2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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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2)

 

드라마, 스릴서, 서스펜스 / 미국, 영국 / 112분
개봉: 2012. 07.26
감독: 린 램지
주연: 틸다 스윈튼(에바 역), 에즈라 밀러(케빈 역), 존 C 라일리(프랭클린 역)

 

무엇으로 말을 시작해야 할까.

에바는 꿈에서는 토마토축제인 듯 보이나, 사실은 그 속에서 죽어라~라고 소리를 듣는 자신을 보게 되고, 현실에서는 집의 외벽과 차의 유리에 빨간 페인트 같은 것이 칠해져 있는 상황이다. 다수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차갑고 냉정한 시선, 또는 그것을 넘어선 폭력을 당하지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하지 않는다.

 

현실과 과거의 기억들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영화. 때로는 같은 과거의 장면으로 두세번 돌아가기도 한다. 

 

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에바는 준비도 되지 않고, 원하지도 않았던 때에 임신을 하게 된다. 임신하고 있는 동안에도 즐거운 모습은 아니고, 아이를 낳는 장면에서도 일반적인 출산의 모습이 아니라 영상을 상당히 일그러져 있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의 모습도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아이의 이름은 케빈. 엄마와 둘이 있을 때는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유모차를 밀고 가다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크자 공사하는 곳 옆에서 한참을 서 있는다. 잠시라도 더 시끄러운 소리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말을 해야 할 나이에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을 때에도 '엄마'라고 해보라 하면 싫다고 표현한다. 공 굴리기를 할 때에도 반응하지 않다가, 한번 굴려보고, 그 행동에 엄마가 좋아하면 다시 굴리지 않는다. 기저귀를 할 나이가 아닌데도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가리지 않자, 기저귀를 하고 있는데, 일부러 엄마를 보라는 듯이 대변을 본다. 그리고 기저귀를 갈아주니 다시 한번 힘을 주고.

화가 난 에바는 케빈을 기저귀가는 곳으로 던졌는데? 그만 아이가 밑으로 떨어져 팔이 골절된다. 그렇게 깁스를 하고 온 케빈은 아빠가 왜 이렇게 됐냐는 질문에, 엄마가 물티슈 가지러 간 사이에 자기가 떨어져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고, 엄마의 사과에는 반응도 없다. 그리고 그날부터 케빈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죄책감이라는 것을 안겨줬으니 내가 한발 물러난다는 듯이.

 

케빈은 아빠 프랭클린과의 관계에서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에게 보라는 듯이 아빠에게는 더 다정하게 행동한다. 그러니 에바가 케빈에 대해서 하는 소리가 남편에게는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케빈의 여동생이 태어나는데, 이름은 실리아. 처음 본 아기에게 손으로 물을 튕기다가 엄마에게 한소리 듣고 물러난다. 실리아가 자라면서, 어느 날 실리아의 애완동물이 사라지고, 심지어 하수구를 뚫는 액체로 인해 실리아는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물론 두 상황은 케빈이 했을 거라고 엄마의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이런 추측들로 에바와 프랭클린은 싸우게 되고, 이혼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프랭클린이 케빈을 맡고, 에바가 실리아를 맡는 걸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소리를 케빈이 듣게 된다.

 

그리고 며칠 뒤, 케빈의 16번째 생일이 되던 때, 상상도 못할 일이 발생한다. 캐빈이 어렸을 때, 에바가 <로빈훗>을 읽어주던 걸 좋아했던 시간이 있었다. 화살에 관심 있어하던 아들에게 아빠 프랭클린은 활과 화살을 아이가 큼에 따라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선물을 해줬다. 그리고 마당에 과녁을 설치해놓고 케빈은 자주 연습을 했고. 

 

케빈이 다니던 학교에 사고가 났다고 연락을 받은 에바는 케빈을 찾으러 학교로 간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아우성에 정신이 없던 에바는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걸린 기구를 보고, 사건의 범인이 케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을 열지 못하게 막아놓은 그 기구는 얼마 전 케빈이 친구들에게 팔 거라며 여러 개를 택배로 주문했던 물건이었다. 구조대가 그 기구를 잘라서 문을 열자 케빈이 나왔고, 그 뒤로는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학생들이 들것에 한 명씩 실려 나온다. 케빈이 경찰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계속 연락을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고, 집으로 왔지만 남편과 실리아는 보이지 않는다. 창가에 커튼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가보니, 정원 한가운데 남편과 실리아 역시 화살을 맞고 죽어 있었다.

 

이렇게 무자비한 행동을 한 케빈대신 그의 엄마 에바가 사람들의 욕설과 비난속에 있게 된다. 소년원에 있다가 이제는 18세가 되어 성인 교도소로 이감되기 전.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도대체 그런 행동을 한 진짜 이유가 뭐냐고.

케빈의 대답은...그때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는 것이다. 에바는 케빈을 한번 안아주고 그곳에서 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분명 끝이 났는데...내마음이 갈피를 잃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뭐가 문제였지.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바에 대하여>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거 같았다. 케빈에 대해서도 말해봐야 하고, 에바에 대해서도 말해봐야 한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그때서야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에바앞에서는 끊임없이 우는 아이, 하지만 에바는 아이를 팔을 펴서 들어 올리고 있을 뿐, 안아주지 않는다. 보통의 엄마라면 품에 안아서 달랬을 아이를, 에바는 안지 않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공사현장 옆에 서있는 장면에서, 보통의 엄마라면 역시 그러지 않는다. 공사 소리에 아이가 놀라지는 않을까를 먼저 걱정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했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끌어안거나 격하게 칭찬해주는 게 아니라, 박수를 쳐주고 웃어주는 게 전부이다. 이렇게 쓰기 시작하니 모든 게 에바의 잘못인듯한데... 그건 아니다. 조금 애정표현이 부족한 부모 밑이라고 해서 모두 케빈처럼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지 않는가. 

다시 봐야 되나...마음이 너무나 어지럽다.

 

 

색채 미장센을 보여주는 영화. 에바는 빨간색, 케빈은 파란색 그렇게 대조적인 색으로 그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미장센은 연극과 영화속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본래 연극무대에서 쓰이던 프랑스어(mise en scene)로 '연출'을 의미한다.)

에바가 케빈에 대한 마음을 열면서 집안을 파랗게 색칠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케빈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작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처음으로 에바가 케빈을 그나마 제대로 안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는 장면마다 나오는 노래가 케빈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화면에는 분명 에바가 보이고 있지만, 음악으로 나오고, 자막으로 보이는 가사들은 에바가 아닌 케빈의 상태였다. 

 

 

시작 부분에 여행사에 취직하러 나갈 때 나오던 노래.

Lonnie Donegan & his shiffle group "Mule Skinner Blues"

 

일찍 퇴근하고 케빈에게 면회 가면서, 회상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

Lonnie Donegan "Ham 'N' Eggs"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나오던 노래.

Buddy Holly "Everyday"

 

이 노래는 에바가 케빈에게 <로빈훗> 책을 읽어준 뒤, 관계가 좀 좋아지는 듯 보이는 장면과 마지막에 케빈을 안아보고 나오는 장면에서 나온다. 마지막 장면과 함께 할 때는 가사의 일부가 자막으로 보인다.

Washington Phillips "Mother's last word to her son"

 

(자막으로 보이는 가사) 이제와 엄마를 생각해보면, 참 무던히도 날 응원해주셨지. 내 알 수 없는 마음이 빗나갔을 때 내게 말씀하셨지. 아들아, 받아들이렴.

 

케빈의 방을 둘러볼 때 나오는 노래.

The Beach Boys "In my room"

 

사건에 대한 진실이 나오고 나서, 에바가 방정리할 때 나오는 노래.

Lonnie Donegan "Nobody's Child"

 

(자막으로 나오는 노래 가사) 어느 날 고아원 앞을 천천히 지나다, 잠시 멈춰 서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봤어. 홀로 서 있는 소년에게 왜 혼자 있냐고 물었지. 그러자 몸을 돌려 먼 눈으로 날 보더니 울기 시작했어. 전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은 아이예요. 야생에 핀 꽃 같은 신세죠. 엄마의 입맞춤도 아빠의 미소도 없었어요. 날 원하는 이 아무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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