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리뷰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

나에대한열정 2021. 6. 2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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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

드라마 / 미국 / 108분
개봉: 2021. 04. 15
감독: 클로이 자오
주연: 프란시스 맥도맨드(펀 역), 데이비드 스트라탄(데이브 역)
베네치아 영화제 홤금사자상 수상
제93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프란시스 맥도맨드) 수상

 
'nomad, 노매드'는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2017년,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브루더가 쓴 논픽션 <노매드랜드: 21세기에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제시카 부르더는 사탕무 수확, 아마존 창고의 피크 시즌(9~12월), 국립공원 캠핑장 관리자 등 일자리를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3년간 취재하면서 이 글을 썼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프란시스 맥도맨드나 데이비드 스트라탄 등 일부 배우들을 제외하고, 조연들을 실제 노매드들을 캐스팅해서 로드무비의 장르로 연출한 점도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이다.
 
책에서 인터뷰이 중 한 명이 '두려움과 즐거움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CF에서나 나올듯한 자연의 아름다운 속에서의 여유로운 모습과 단기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습의 교차를 통해 이런 느낌을 충분히 전해준다.
 
영화로 들어가보자.
 
" 2011. 1. 31 석고보드 수요의 감소로 US석고는 네바다 엠파이어 공장을 88년 만에 폐쇄했고, 7월엔 엠파이어 지역 우편번호 89405가 폐지됐다."라는 글귀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여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실제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펀'이란 이름은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만 65세가 되면 배우 생활을 그만하고 '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에서 차용된 이름인데, fern의 뜻은 씨앗이 아닌 포자를 뿌려 번식하는 양치식물을 의미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는 이름이라고도 해석된다.)
 
엠파이어 공장 인사과에서 일하던 펀은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밴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물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물건들을 창고에 맡기고 길을 떠난다. 노매드의 생활로 접어든 것이다. 그녀가 처음 일하게 된 곳은 피크 시즌을 맞은 아마존 물류창고였다. 아마존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데저트 로즈 캠핑장에서 무료로(아마존에서 대금을 지불해 줌) 밴을 주차하여 살 수 있다. 일하게 된 첫날, 사람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노래 가사를 빌린,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집은 허상인가 아니면 마음의 안식처인가

일을 마치고 마트에서 볼일을 보던 중,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집이 없냐는 질문을 하는데, 펀은 이렇게 대답한다.
 

집이 없는 건 아니야. 거주할 곳이 없는 것과 집이 없는 건 달라

 
 
(원작에서 노매드들은 스스로를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라고 한다.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그건 문제가 아니다. 노매드라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홈리스'는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이라는 사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홈리스는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들의 생활 자체가 홈리스와의 모호한 경계 때문에, 스스로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아마존에서 알게 된 노매드인 린다 메이는, 펀에게 밥 웰스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캠핑카 인생에 대한 걸 올려놓은 사람인데, 현재는 애리조나에 있는 국토 관리국 소유 사막에서 초보 유랑자들을 위한 훈련소인 RTR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좋으니까 한번 가보라고. 그 말을 들을 때는 펀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아마존의 피크 시즌이 끝나서 그곳에서 일이 없어진 펀은, 그동안 아마존에서 돈을 내줬던 캠핑장이 월 375달러를 내야 이용할 수 있다는 관리인의 말에 그곳을 떠나 RTR로 간다. 그곳에 가니, 노매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여있다. 물론 계속 이곳에 모여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교환하고, 나눠주기도 하고,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나간다.
 
펀은 배드랜즈에서 캠프지기로 또 다른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RTR에서 만났던 데이브와 다시 만나게 되고, 데이브가 아플 때 간호해주면서 조금은 친숙한 사이가 된다. 캠프지기 일이 끝나고 데이브가 말해준 <월 드러그>라는 곳에서 주방 청소와 음식 보조로 함께 일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펀의 밴이 고장이 나게 되는데, 차를 수리하는 곳에서는 수리비가 많이 나오니 차라리 그 돈을 보태서 새로 사라고 말을 하지만, 펀은 이 밴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썼다며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현금이 넉넉하지 않았던 펀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송금을 해달라고 하지만, 언니는 직접 얼굴 보러 오라고 한다. 언니는 펀에게 돈을 주면서, 같이 살자고 한다. 그러나 펀은 이러니까 오지 못하는 거라면서 완곡히 거절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니의 주변을 이루고 있는 환경은, 2008년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부동산을 사들여 자신들의 자리를 구축했던 사람들이다. 
 
펀은 데이브가 가족들과 지내는 곳에 잠시 들렸다가 다시 아마존으로 일을 하러 간다.
잠시 RTR에 들린 펀은 밥 웰스에게 언니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는다. 
고아였던 남편,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자신이 그곳(엠파이어 공장이 있던)을 떠나면,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이 모두 없어질 거 같아서, 그 마을도, 그 집도 떠날 수 없었다고 얘기한다. 
 

우리 아버지는 그러셨죠. 기억되는 건 살아있는 거다라고. 난 기억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낸 거 같아요.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내뱉고 나서야, 펀은 원래 살던 곳에 가서 맡겨 놓았던 짐들을 정리한다.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그리고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선다.
 
 

감독: 클로이 자오,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후반부에 펀이 숲길을 걷다가 아주 거대한 나무를 만지고 카메라의 시선이 위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위에는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의 모습이 보인다. 크라운 샤이니스는 옆의 다른 나무가 아래까지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서로 윗부분이 닿지 않게 공간을 남기면서 자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나무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적절한 거리를 지켜주고, 상대에 대한 존중을 해주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삶이 어떻든 말이다.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다. 그냥 하늘을 보여준 것 일수도 있다. 내 느낌이 그랬다.
 

펀이 캠핑장을 걸을 때 흐르는 음악.
Ludovico Einaudi "Golden Butterflise"(Day1)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나오는 노래. 기타 소리가 너무 좋은.
Cat Clifford "Drifting away I go"

이 영화를 이틀에 걸쳐 세 번 봤다. 아마 내 영화 인생에서 같은 영화를 이렇게 단기간에 다시 보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 상영 중이라고 해서 직접 가서 보고 싶은 마음에 주위의 극장을 검색했지만, 아쉽게도 상영하는 곳이 없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영화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봐야 하는 영화이다. 정말로 느껴야 하는 영화이다. 혹여나 한번 보고 나서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면, 꼭 한 번만 다시 보기를. 그래도 지루하다면... 인생을 좀 더 살고!!! 살다가 꼭 다시 한번 보기를...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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