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리뷰

(영화) 삶에 지칠 때, 뭐든 놔버리고 싶을 때...보자 이 영화! <체리 향기>

나에대한열정 2021. 7. 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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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향기 (1997)

드라마, 실험 / 이란 / 99분
개봉: 1998. 01. 01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주연: 호마윤 엘샤드(바디 역), 아브돌라만 바그헤리(바게리 노인 역)

 

이 영화는 1997년 칸 영화제에서 이란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로 출품 못하다가, 폐막 3일 전에 상영 공고가 붙었다. 영화제 공식 책자에도 실리지도 않고, 공식 경쟁작의 명단에도 없던 이 작품은 당시 쟁쟁했던 작품들을 뒤로하고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와 공동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으면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체리 향기>라는 제목은 11세기 이란의 시인이었던 오마르 하이얌의 시구절인 "인간이여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라.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에서 착안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감독은 "체리는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운 과일 중 하나이고, 체리의 향기는 삶의 환희를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비전문 배우를 섭외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바디 역의 호마윤 엘샤드도 횡단보도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인 역을 맡았던 배우는 이름이 압둘라흐만 바스헤리라고 써있는데 그건 배우의 실제이름이 아니라 시나리오상의 배역 이름이라고 한다. 노인역을 했던 사람이 촬영이 끝나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채 사라졌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고.

 

영화로 들어가보자.

 

바디라는 남자가, 차를 몰고 인력시장에 가서 사람들을 훑어보며 간다. 바디가 찾는 사람은 자신이 수면제를 먹고 구덩이에 들어가서 잠들면 다음날 자신의 몸위에 흙을 뿌려줄 사람이다. 공중전화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면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욕만 먹고 돌아서게 된다. 

처음으로 차에 태운 사람은 부대로 돌이가고 있는 군인이다. 아직 복귀시간이 남아있는 그에게 데려다 주겠다면서 드라이브를 하자고 말하고, 구덩이가 있는 곳을 보여준다. 내일 아침에 와서 자기이름을 두번 부르라고. 대답하면 깨워주고, 대답이 없으면 흙으로 덮어달라고. 그리고 차에 있는 돈을 가져가라고 한다. 그러나 군인은 거부하고 달려가버린다. 

 

다음 차에 태운 사람은 신학교 학생이다. 자살은 죄라면서 뭐라고 하는 학생에게 바디는 말한다. 

 

"하지만 더 살아갈 수 없는 때도 있는거야. 너무 지쳐서 신의 결정을 기다릴 수가 없는거지. 그래서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거야. 물론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중에 하나겠지. 하지만 불행하게 사는 것도 큰 죄라네. 사람이 불행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야. 그것은 죄 아니겠나?"

 

결국, 신학교 학생도 바디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리고 차에 탄 사람은 자연사 박물관에서 박제사로 일한다는 바게리 노인. 그는 이 사막에서 35년을 살았다고 말하며, 바디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박물관에 데려다주는 길을, 좀 돌아가는 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이라면서 그쪽으로 안내를 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아침,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차에 밧줄을 실었어요. 난 자살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죠. 난 미아네를 향해 출발했어요. 그때가 1960년이었죠. 난 체리나무 농장에 도착했어요. 그곳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해가 뜨지 않았죠. 난 나무에 밧줄을 던졌지만 걸리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던졌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난 나무 위로 올라가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어요. 그때 내 손에 부드러운 게 만져졌어요. 체리였죠. 탐스럽게 잘 익은 체리였어요. 전 그걸 하나 먹었죠. 과즙이 가득했어요. 그리고 두 개, 새게를 먹었어요. 그때 산등성이에 태양이 떠올랐어요. 정말 장엄한 광경이었죠. 그리곤 갑자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 애들은 가다 말고 서서 날 쳐다보더니 나무를 흔들어 달라고 했어요. 체리가 떨어지자 애들이 주워 먹었죠. 전 행복감을 느꼈어요. 그리곤 체리를 주워 집으로 향했어요. 아내는 그때까지도 자고 있더군요. 잠에서 깨어나 아내도 체리를 먹었어요. 아주 맛있게 먹더군요. 난 자살하러 떠났지만 체리를 갖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체리 덕분에 생명을 구한 거죠...

내가 변한 거죠. 나중엔 나아졌지만 실은 내 마음이 변한거예요. 기분이 좋아진거죠. 세상 사람 누구나 고민은 있어요 세상이 그런거에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문제가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어요. 당신의 고민이 뭔지 모르지만, 안다면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에요. 의사를 찾아갈 때도 증상을 설명하는 법이잖소."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죠.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터키 사람 하나가 의사를 만나러 가서 말하길 '손가락으로 내 몸을 만지면 몹시 아파요. 머리를 만져도 아프고 다리를 만져도 아프고 배를 만져도 손을 만져도 아파요.' 의사는 자세히 진찰한 후 이렇게 말했어요. '몸은 괜찮은데 손가락이 부러졌군요.' 
자넨 마음이 병들었소. 다른데 문제가 없어요. 생각을 바꿔봐요.

모든 희망을 잃었나요?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지 않나요?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나요? 석양에 붉게 노을 지는 하늘, 그런 것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가요? 보름달이 뜨는 달밤, 그걸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눈을 감고 싶은가요? 제발 생각을 바꿔요.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자살하려고 나왔지만 체리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체리 한 개. 세상은 생각하고 아주 다르죠,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답니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요.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봐요. 당신은 지금 한창때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자살하려는 거예요. 단 하나의 문제 때문에."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고 알았는데 틀렸을 수가 있죠. 중요한 건 열심히 생각하는 거요. 지금은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수가 있죠."

 

바디는 아무 말도 없이 바게리의 이야기만 듣는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약속을 다짐받는다. 한참을 가다가, 바디는 바게리가 있는 박물관으로 차를 돌려서 그에게 간다. 그리고 그를 불러내서 이런 말을 한다.

그 전에는 이름을 두 번 부르고 반응 없으면 흙을 뿌리라던 그가, 돌멩이를 두 개 던지라고 한다.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어깨도 흔들어보라고 한다.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헤어져서 저녁노을이 지는 곳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구덩이에 누워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 위에는 보름달이 있고, 구름들이 흘러간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온다. 그리고 그의 눈이 보이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돌멩이를 두 개 던지라던 그가,

어깨도 흔들어보라고 말하던 그가,

내리기 시작한 비가,

무언가 희망적인 건 나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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