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고도 했을
마음이 오늘 것이다 _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섬>에 실려있는 '방문객'이라는 시를 처음 봤을 때, 어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기 시작할 때, 적어도 이런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더 잔잔한 만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쉽게 판단하지 않지 않을까. 아쉬운 시간들이 슬쩍 뇌리 속을 스쳐갔다.
그 여파였는지, <비스듬히>라는 시선집이 나왔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이번에는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할까.
여전히 시인의 시집에는 자필 흔적과 사진들이 뿌려져 있다. 보고 있으면 편해지는.
느낌표
나무 옆에다 느낌표 하나 심어놓고
꽃 옆에다 느낌표 하나 피워놓고
새소리 갈피에 느낌표 구르게 하고
여자 옆에 느낌표 하나 벗겨놓고
슬픔 옆에는 느낌표 하나 올려놓고
기쁨 옆에는 느낌표 하나 웃겨놓고
나는 거꾸로 된 느낌표 꼴로
휘적휘적 또 걸어가야지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마악 피어나려고 하는
꽃송이,
그 위에 앉아 있는 지금,
공기 중에 열이 가득합니다,
마악 피어나려는 시간의
열,
꽃송이 한가운데,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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