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Nietzsche (1844~1900)
철학서인 이 책을 비문학으로 분류할까하다가, 독일에서도 문학적인 가치로 인해 세계문학파트에서 이 책이 출간되고 있다고 하여 문학으로 포스팅을 하기로 했다. 하긴 위 사진의 민음사에서도 세계문학전집에 속해 있기는 하다.
"나는 마키아벨리보다 훨씬 더 나쁜, 악한 책 한 권을 쓰겠다" <유고> 중에서.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들이 더 많다. 이것이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사악한 시선'이자 나의 '사악한 귀'이다. 여기서 한번 망치를 들고서 의문을 제기해 본다. <우상의 황혼> 중에서.
내 말을 믿어라.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 <즐거운 학문>중에서.
이 책은 제목에서 이미 보여주듯이, 니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페르시아 현자인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라고 하면, 프레디 머큐리가 먼저 생각나기는 하지만.
총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 3부까지는 사유가 흐르는 통일적 흐름이 없어서 어떤 부분을 먼저 읽든 별로 상관이 없다. 단, 1부의 시작에 서설 또는 머리말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먼저 읽어야 이해하기가 편하며, 마지막 4부는 3부까지의 단어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어서 마지막에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워낙 좋아하는 책이라 읽을 때마다 내용을 보충할 예정이다.)
책의 부제로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고 쓰고 있다.
니체는 본인의 이 책이 당시 시대에 냉정한 판단을 받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지성인들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차라투스트라를 해석해내는 교수들이 있을거라고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에 언급함으로써 자신감뿜뿜 자체이다. 현시대에 실제로 니체의 책들을 연구하는 교수가 얼마나 많은가. 영향을 받은 부분은 얼마나 다양하며.
"내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언젠가는 내가 이해하는 삶과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살도록하고 가르치게 될 기관들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는 <차라투스트라>를 해석해내는 일을 하는 교수직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 진리들을 위한 귀와 손들을 벌써 기대한다면, 그것은 나와는 완전히 모순되는 것이리라. 오늘날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오늘날 사람들이 내게서 뭔가를 받아들일 줄 모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일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엔 정당하기까지 하다."
"언젠가 하인리히 폰 슈타인 박사가 내<차라투스트라>의 말을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정직하게 불평했을 때, 나는 그에게 그게 당연하다고 말했었다.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중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대하여 "스스로" 이렇게 평가했다.
" 이 책으로 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그 어떤 선물보다도 큰,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수천 년간을 퍼져 나갈 목소리를 지닌 이 책은 존재하는 최고의 책...가장 심오한 책으로 진리의 가장 깊숙한 보고에서 탄생했다."
<이 사람을 보라> 서문에서.
" 이 책은 다섯 번째 복음서이며 미래의 성서가 될 것이다."
<서간집>중에서.
본인의 책을 기존의 4대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의 뒤를 잇는 다섯번째라고 표현할 수 있다니.
p. 11
차라투스트라는 서른이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십 년의 세월을 지치지 않고 정신과 고독을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마침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서문부터 성경의 패러디는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를 떠나 사막으로 가서 40일 간의 명상을 한 것,
산과 사막. 십 년과 40일. 이런 비교만 봐도 나는 다르다고 표현하는 게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 니체를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신을 부정하고 도덕성을 비판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니체의 저서 <안티크리스트>에서 "역사상 그리스도교인은 단 한사람이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라고 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안티크리스트>는 <적그리스도>라고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p. 19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橋)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p. 27
나는 인간들에게 그들의 존재 의미를 가르치려고 한다. 존재의 의미는 초인이며, 인간이라는 검은 구름을 뚫고 번쩍이는 번개가 아닌가.
인간 존재의 의미이자 실존적 과제를 드러내고 있다. 즉, 인간은 짐승으로도 초인으로도 어느 쪽이든 갈 수 있는 밧줄인 것이다. 그걸 조절하는 것 또한 인간이고.
매번 사유실험을 통해 스스로를 조절하는데, 여기서 사유실험이라 함은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반응해 보는 것이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영원히 반복해서 살고 싶니?" 이 질문이 축복처럼 느껴진다면 초인이 되기 위한 삶을 잘 살고 있는 것이며, 저주처럼 느껴진다면 초인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
(초인이라는 표현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요즘에는 초인이라는 단어보다 '위버멘쉬'라는 독일어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p. 16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초인이 이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 지상이 원하는 것이 우리가 초인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
p. 40
낮 동안에 열 번, 그대는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적당히 피곤해지며, 또 영혼에게는 그것이 양귀비다.
낮 동안에 열 번, 그대는 자신과 다시 화해해야 한다. 자기 극복은 혹독한 것이고,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자들은 단잠을 이루지 못한다.
낮 동안 열 가지 진리를 그대는 찾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밤에도 진리를 찾게 되고, 그로 인해 그대의 영혼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낮 동안 열 번, 그대는 웃어야 하고 쾌활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밤 동안 슬픔의 아버지인 위장이 그대를 괴롭힌다.
단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p. 41
나는 많은 명예도 커다란 재물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비장에 염증만 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좋은 평판과 약간의 재물마저 없다면 단잠을 이루기 힘들다.
p. 61~62
나는 흐르는 강물 가에 있는 난간이다. 붙들 수 있는 자는 나를 붙들어라.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지팡이는 아니다.
p. 63~65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피와 잠언으로 쓰는 자는 읽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
용기를 가져라. 개의치 마라. 조롱하라. 난폭하게 행동하라. 지혜는 우리들이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지혜는 여인이다. 따라서 언제나 전사(戰士)만을 사랑한다.
그렇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망상 속에도 언제나 약간의 이성이 들어 있다.
p. 68
왜 그렇게 놀라는가? 인간은 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인간은 높은 곳으로 그리고 밝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할수록 그 뿌리는 더욱 더 강인하게 땅 속으로 파고 들어 가려 한다네. 아래쪽으로, 어둠 속으로, 심연 속으로, 악(惡)속으로 뻗어나가려 하는 거지.
p. 78
그대들은 증오해야 할 적들은 가지되, 경멸할 적은 갖지 마라. 그대들은 자신의 적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의 성공이 또한 그대들의 성공이 되는 것이다.
p. 84
위대한 영혼들에게는 아직도 자유로운 삶이 활짝 열려 있다. 참으로 적게 소유한 자는 더 적게 지배된다. 찬양할지어다. 소박한 가난을!
p. 105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잃고 싶어서 이웃에게로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그릇된 고독을 일종의 감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p. 110
그대의 사랑이 발작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독한 자는 그가 '만나는 사람에게' 너무 성급하게 손을 내민다.
그대가 함부로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에게 앞발 만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그대의 앞발에 발톱까지 있으면 더욱 좋으련만.
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 그대 자신이 그대를 기다리며 동굴과 숲에서 잠복하고 있는 것이다.
p. 117~118
정의를 지키기 보다는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는 것이 더욱 고상하다. 자신이 정당할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다만, 그대들은 그럴 수 있을 만큼 풍요로워야 한다.
p. 123
최선의 사랑이라는 잔 속에도 쓴맛은 있다.
p. 126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알맞은 때에 명예와 작별하고 알맞은 때에 떠나는 어려운 재주를 부려야 한다.
가장 맛이 좋을 때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계속 먹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어떤 자는 마음이 먼저 늙고 어떤 자는 정신이 먼저 늙는다.
p. 136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p. 147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이 세계는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심상,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도달하게 되리라!
p. 171
바람을 향해 침을 뱉지 않도록 조심하라!
p. 176
삶은 스스로 기둥과 계단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드높은 곳에 세우려고 한다. 삶은 아득히 먼 곳을 지켜보며 더 없는 행복의 아름다움을 동경한다. 그러므로 삶에는 높이가 필요하다. 그리고 삶에는 높이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계단과 이 계단을 올라가는 자들의 모순이 필요하다! 삶은 오르기를 원하며 오르면서 자신을 극복하려고 한다.
p. 216
사랑한다는 것과 몰락한다는 것. 그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짝을 이루어왔다. 사랑에의 의지, 그것은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p. 342
참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오늘이나 내일을 위한 계율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모든 기술 중에서 가장 세밀하고 가장 교묘하며 가장 커다란 인내심이 요구되는 궁극의 기술이다. 말하자면 모든 소유물은 그 소유자에게는 깊숙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지하 보물 창고로부터는 자기 자신의 것이 가장 늦게 발굴되는 법이다.
p. 369
나는 용감한 자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양날의 칼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누구를 벨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을 억제하면서 지나가버리는 데에 보다 큰 용기가 들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보다 어울리는 적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아끼는 것이다. 그대들은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을 가질 뿐 경멸할 적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p. 382~384
가장 비슷한 것들 사리에서 가상은 가장 아름답게 거짓말을 한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틈새야말로 다리를 놓기가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꽃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새로이 이어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세워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모든 것은 다시 인사를 나눈다. 존재의 둥근 고리는 영원히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球)이 회전한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하여 가장 잔인한 짐승이다.
p. 399
사실 우리가 서로 죽도록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도록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미워해야 한단 말인가?
p. 436
어설프게 많은 것을 알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낫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현자보다는 차라리 자기 힘에 의지하는 바보가 더 낫다. 나는 사물의 바닥으로 돌진한다.
그 바닥이 크든 작든 무슨 상관인가? 그 바닥이 늪이라 불리든 하늘이라 불리든 무슨 상관인가? 한 뼘의 바닥만 있으면 나는 그로써 족하다. 그 바닥이 실제로 바닥이고 토대이기만 하다면!
한 뼘의 바닥. 사람들은 그 위에 살 수도 있다. 참다운 지식의 양심에 있어서 크고 작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p. 509~510
높이 오르고자 한다면 그대들 자신의 다리를 사용하라! 그대들은 위쪽으로 실려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다른 사람의 등이나 머리에 올라타지도 마라.
그대가 목적지에 닿아 그대의 발로부터 뛰어내릴 때, 그대의 바로 그 높이에서, 그대...그대는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부디, 무엇을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버려라. 그대들의 덕은 그대들이 바로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목표로, 무엇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일이 없도록 바라고 있다. 이렇게 거짓되고 자잘한 말들에 대해서 그대들은 귀를 막아야 한다.
p. 513~515
한 사물이 귀한 종에 속하면 속할수록,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 그대들, 여기에 있는 차원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 모두는 실패작이 아닌가? 용기를 내라.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일이 아직도 가능한가! 마땅히 웃어야 하는 방식으로 그대들 자신을 비웃는 것을 배우라!
완전한 것은 희망을 갖도록 가르친다.
어떤 자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그 걸음걸이가 보여준다. 자, 내가 걸어가는 것을 보라! 하지만 자신의 목표에 접근한 자는 춤을 춘다.
p. 518
그대들, 차원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의 가장 나쁜 점은 그대들 모두가 사람이 당연히 춤추어야 하는 방식으로 춤추는 것을, 다시 말해 그대들 자신을 넘어서서 춤추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대들이 실패했다고 해서 무슨 문제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일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러므로 부디 그대들 자신을 넘어서서 웃는 것을 배우라! 그대들의 마음을 고양시켜라. 그대들 멋지게 춤추는 자들이여, 높게! 더 높게! 그리고 멋지게 웃음 짓는 것도 제발 잊지 마라!
웃는 자의 이 면류관, 이 장미꽃 다발의 화관, 그대들에게, 형제들이여, 이 화관을 던진다! 웃음은 신성하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므로 그대들, 차원 높은 인간들이여, 배우라, 웃는 것을!
p. 552
사람들은 분노함으로써가 아니라 웃음으로써 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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