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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장석주 시인의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나에대한열정 2021. 12. 30.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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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2021

 

 

p. 30~31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나는 안다, 내 깃발은 찢기고
더이상 나는 청춘이 아니다.
내 방황 속에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한번 흘러간 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다.
내 어찌 살아온 세월을 거슬러올라
여길 다시 찾아올 수 있으랴.

- 쉽게 스러지는 가을 석양 탓이다.
- 잃어버린 지도 탓이다.

얼비치는 벗은 나무들의 그림자를 안고 흐르는
계곡의 물이여,
여긴 어딘가, 내 새로 발 디디는 곳
암암히······ 황혼이 지는 곳.

- 서편 하늘에 풀씨처럼 흩어져 불타는 새들.
- 어둠에 멱살 잽혀 가는 나.

 

 

p. 32~33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 빠질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병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화집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는
절망은.

 

 

p. 40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성냥불을 켜면서
오라
나는
어둠이니
불을 품고
토하지 못한 어둠이니
어느 것도 내려치지 못한
벼락과 번개를 품은 힘센 어둠이니
한 삼백 년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서성이는 죽음이니
성냥불이 꺼지거든
자꾸만 켜면서
오라

 

 

p. 62~63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구나
그대와 나
돌아갈 길 가늠하지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버리고 말았구나

구두는 낡고, 차는 끊겨버렸다
그대 옷자락에 빗방울이 달라붙는데
나는 무책임하게 바라본다. 그대 눈동자만을
그대 눈동자에 떠오른 한줄기 길을
그대 눈동자에 떠오른 별의 궤도를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한들
이제 와서 어쩌랴

우리 인생은 너무 무겁지 않았던가
그 무거움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고단하게 날개를 퍼덕였던가

더이상 묻지 말자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놓여 있는가를
묻지 말고 가자
멀리 왔다면
더 멀리 한없이 가버리자

 

 

p. 74~75
고인

발목이 시리도록 들판을 걷는다
저녁까지 혼절한 듯 잠에 빠져 있다
한 여자의 구릉을 싫증날 때까지 경작한다
온갖 도박에 미쳐 날이 새고 지는 것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미친 피의 놀음이 되어야 한다

오늘은 벌써 어제가 되고
가을단풍이 지기도 전에 눈보라는
저 서러운 붉음을 지우며 자욱하다

아아 살아 있다는 것은
왜 기쁘고 슬픈 일이 되어야만 하는가

고인은 자신의 배역을 마치고 무대 뒤로 사라진 배우다.

헌 옷 몇 벌과 읽던 책 누추한 이름을 남긴
고인은 남은 가족을 결속시키는 슬픔이다

새벽에 홀로 깨어나
마른 빵을 씹고
벽에 헛되이 어리를 찧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턴 빈 무대 뒤에 혼자 서서
무대가 없다고 툴툴대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툴렀을 뿐만 아니라 
무지했기 때문이다

 

 

p. 84
불두화

이 저녁 잎새들이 서걱거리는 것은
인생의 많은 망설임 때문이다

흰 발목의 빗방울들이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다녀간다

비 그치고 황금빛이 열린다
저문 마당귀에 선 나무에 매달린 불꽃의 입술들을 열어
사랑한다고 낮게낮게 속삭이는
저 불두화 

 

시를 읽다가 불두화라는 단어가 궁금해졌다. 수국이 연상되는 꽃이다. 이 꽃은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여 불두화라고 부른다고 한다. 佛부처 불, 頭 머리 두, 花 꽃 화. 그렇구나... 시인의 표현이 참 제격이다. 불꽃의 입술들을 열어 사랑한다고 낮게낮게 속삭인다니...

 

 

p. 94~95
사월

금치산자 같은 사월이 왔다 간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시시하지?
하는 얼굴을 하고

방부처리되지 않은 추억들이
질척거리는 침출수를
삶의 빈틈으로 조금씩 흘려보낸다

개척자는 아니지만 무능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일품요리 같은 생을 꿈꾸는 여자와의 연애가
곧 끝나고 말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무능과 게으름은
내 삶에 붙은 이면 옵션이다

나쁜 패를 잡고 전전긍긍하는 노름꾼에게도
사월이 오고 내게도
사지를 절단한 편지가 도착하고
나른하고 끔찍한 날들이 이어진다

머리 없는 남자가 빚쟁이처럼 당당하게
낚시터로 가는 길을 묻는다

 

 

p. 98~99
명자나무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이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연민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 야만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을 순례하지 말 것. 서양 모자를 쓰지 말 것. 콧수염을 기르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른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

쓸쓸히 걷는 습관을 가진 자들은 안다.
불행은 장엄 열반이다.
너도 우니?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인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마라.

 

명자나무 꽃

 

p. 110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앵두나무는 의료보험증도 없는데
건강이 여전하시다. 올봄도
앵두나무는 원기왕성하게 꽃을 피웠다.
뜰에는 구름이 놀다가고
바람이 잠깐씩 얼굴을 내민다.
꽃 진 자리마다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붙었다.
칠순 노모는 늦게 노랫바람이 나서
복숭아마냥 부푼 무릎을 끌며
날마다 성북구청 노래교실에 나가고
늙은 앵두나무는 늘 심심하다.

둘 다 꾸준하시다.

 

 

p. 111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

 

 

p. 124~188에 이르는 4부(사자새끼가 사자소리를 내는 것)에서는 시에 대한 시와 관련된 짧은 글들이 번호를 지니고 쓰여 있다. 좋은 말들이 많아 자꾸 읽어도 좋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이 여러 번 언급돼서, 이 시인도 페소아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더 애정이 가는 것도 부인은 못하겠다.

 

56
배고프고 외로운 저녁에 기쁨의 고갈로, 혹은 가나의 한 양식으로 시가 온다. 맹렬하게 외로울 때, 마음이 광포해진 말같이 날뛸 때, 시는 외로움과 광포함의 고삐를 틀어쥐는 일이다. 일요일 오후의 만찬, 육즙이 흐르는 두꺼운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위를 채운 뒤의 느긋한 포만감, 그 배부름과 낮잠에는 시가 없다. 결핍과 부재가 없는 삶에는 시가 깃들지 않는다.

67
현재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며 숙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가 낭만의 지옥이라면 미래는 지옥의 유토피아다. 반면 현재는 미래의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좋은 시인은 현재라는 대기에 떠도는 유언비어에서 미래의 언어를 훔친다. 종종 좋은 시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예언자를 흉내낸다.

68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는 무수한 이명(異名)속에 숨었다. 이명은 그의 가면이다.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문체와 별자리도 바꿨다. 그는 설렘과 두려움이 없는 익숙한 현실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테다. 그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는 누군가를 빌려서 망명한다. 오랫동안 조국을 등지고 망명자로 산 그가 버린 조국은 다름아닌 자기 실존이 처하 언어의 진부함, 익숙한 것의 반복, 자아의 백일몽 따위일 것이다.

72
인간은 생각하는 짐승이다.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신념을 딱딱하게 굳히는 과정이다. 하지만 진짜 생각은 안 보이는 저편에서 짐승의 살을 물어뜯고 피를 들이킨다. 송곳니와 어금니 사이에는 짐승의 살점 찌꺼기가 끼어 있고, 핏물이 배어 있다. 생각은 살아 있는 것의 살과 피에서 얻은 자양분으로 연명한다. 죽음은 생각이 그 살과 피를 더는 취할 수 없는 상태다. 생각은 죽음과 함께 끝난다.

88
페소아는 아무 야망도 욕망도 없다고, 시인이 된 건 야망이 아니라 그것이 '홀로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홀로 있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게 자기의 존재 방식이라는 인식을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페소아는 죽는 날 이런 시를 남겼다. "오른손을 들어, 태양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 아니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손짓했고, 그게 다였다."

100
진부함은 정신의 나태를 드러내는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의식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지부함이 세계에 대한 경이를 없애고, 사물을 향한 의심과 환상을 삼켜 버린다. 나이를 먹은 뒤 시와 동화를 잃는다. 영혼이 낡고 무뎌지며, 감성은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진부함은 한 점의 회의도 품지 않는 지식과 하찮은 신념의 산물이다. 진부함에 물든 자는 세상에 널린 평범한 죄악에 연루되어 있다.

125
사자 새끼가 사자 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시다.

126
사자 새끼가 아닌데도 오랫동안 사자 소리를 내고자 했다. 내가 저지른 첫번째 오류다. 그 어리석음과 오류를 삼십 년째 품고 시를 썼다. 어리석음을 품고 헛되이 보낸 세월이다. 어느 날 블랙홀에서 나오는 한 소식을 들었다.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바름이다."(노자, <도덕경>)

127
사자 새끼가 사자 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고요다.

129
욕망을 비운 뒤 고요는 마음의 빈 곳에 그윽하게 고인다. 감흥도, 파토스도 아닌 것. 사물들 사이의 평화고 질서고 리듬인 것. 고요는 혼란의 살해이고 무질서의 파괴이며 강령의 해체다. 사람은 고요에의 의지 때문에 고결해진다. 고요 뒤 보고, 본 것을 사랑한다. 바라봄은 고요의 촉수들이 이 세계에 내미는 수줍은 초대장이다. 차라리 사랑은 고요가 일으키는 가장 시끄러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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