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나에대한열정 2022. 1. 24. 00:54
반응형

에리카 산체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2022

I AM NOT YOUR PERFECT MEXICAN DAUGHTER

 

 

에리카 산체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2022

 

 

책표지 날개에 있는 에리카 산체스에 대한 소개

 

완벽한 멕시코 딸은 대학에 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 결코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엄마 아빠의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다. 그것은 내 언니, 올가의 역할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훌리아 레예스는 15세에서 16세로 막 넘어가는 시기의 소녀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멕시코에서 시카고로 밀입국한 불법체류자들이고, 엄마는 남의 집 일을 하고, 아빠는 사탕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누가 봐도 아주 모범적인 딸, 올가(훌리아의 언니)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가의 차가 브레이크 수리를 위해서 카센터에 맡겨지고, 버스로 출근을 하는데, 나중에 엄마가 데리러 가기로 했지만, 훌리아가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 교장실에 불려 가는 바람에 데리러 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올가는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그 뒤로, 안 그래도 올가와 비교대상이 되었던 훌리아의 생활은 순탄치 않다. 아직도 올가의 방은 살아 있을 때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상태다. 잠이 안 오면 올가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잠을 자는 훌리아. 언니의 물건을 이것저것 보다가, 언니의 물건 중에서 상상도 못 할 물건들을 찾게 된다. 아주 야한 속옷과 호텔 키, 베개커버 속에 들어있는 사랑한다는 쪽지.

언제나 너무 얌전한, 그리고 누군가 사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언니였기에 이 물건들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특히 부모님이 언니의 속옷을 보게 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언니의 페북이나 이메일을 확인해보고 싶은데, 노트북이 암호로 잠겨져 있다.

 

언니의 비밀을 찾으려는 훌리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악화되어 가고 있는 엄마와의 갈등...

언니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고, 이 갈등은 끝날 수 있는 것인가.

 


 

이 소설은 훌리아가 언니의 비밀을 알아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소설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을 통해서도 정체성이 너무나 확실한 소녀.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은 세상. 내뱉지는 않지만 생각으로 드러나는 사이다 같은 표현들.

 

<타임> 선정 역대 최고의 청소년 문학 100에 들었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우리 문화와는 조금 맞지 않은 성적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정말 좋은 소설이다. 고민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예쁘다. 물론 다른 선택들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인생이 한 방향은 아니니까.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p. 13~14
죽으면 끝이다. 내가 보기에 죽음에 대한 그럴듯한 말은 월트 휘트먼의 것뿐이다. "나를 찾으려거든 네 신발 밑창 아래를 보아라." 올가의 몸은 흙이 되고, 흙은 나무가 되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발로 밟을 것이다. 천국은 없다. 땅, 하늘, 그리고 에너지 이동뿐이다. 이 악몽 같은 일만 없었다면 아름답다고 할 만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p. 16
아마는 항상 백인들에게 사과를 하는데, 나는 그게 창피하다. 그러고 나면 창피하게 생각한 것이 창피해진다.

 

 

p. 22
온종일 요리하고 청소하는 순종적인 멕시코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노숙자로 살고 말지.

 

 

p. 29
나는 몇 시간째 멍하니 누워 있다가 램프를 켜고 책을 읽으려고 애쓴다. 「각성」을 백만 번은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여전히 위로가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에드나와 로버트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검은 옷의 여인이다. 나는 또 에드나가 나랑 너무 비슷해서 - 그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 이 소설이 좋다. 나는 삶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한다. 양손으로 삶을 꽉 붙잡고 쥐어짜고 비틀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내고 싶다. 아무리 해도 부족할 거다.

 

케이트 쇼팽의 장편소설 <각성>은 결혼한 상류층 여성인 28세의 젊은 부인 에드나 퐁텔리에가 여름휴가로 머문 뉴올리언스 근처의 섬 그랜드 아일에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독립적인 자아를 찾아 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당신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성적 욕망과 일탈을 그리며 결혼제도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절판되었다가 쇼팽 사후 60여 년이 지나서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로 조명되며 찬사를 받았고, 여성학과 문학수업의 필수도서로 읽히고 있다. 

 

 

p. 30
나는 방을 둘러보면서 언니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한다. 평생 언니와 같이 살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 같다. 올가는 완벽한 딸이었다. 요리하고, 청소하고, 절대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않았다. 가끔 언니가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까 궁금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 나오는 멍청한 타타처럼 말이다. 윽, 정말 끔찍한 책이다.

 

 

p. 31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온갖 질문을 퍼부어서 부모님을 미치게 만들었다. 착하게 굴려고 애를 써도 그게 안 된다. 규칙에 알레르기라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이를 테면 성차별을 보면 미칠 것 같다. 한 번은 여자들은 온종일 요리를 할 때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엉덩이나 긁고 있다고 장광설을 늘어놓아서 추수감사절을 망친 적도 있다. 아마는 내가 온 친척들 앞에서 엄마에게 창피를 줬다고, 늘 그래 왔던 방식을 내가 바꿀 순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p. 50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p. 56, 57
수업 시간에 배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그림은 거의 다 아기 예수님을 그린 것이라서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성경 속 여인들이 끔찍한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자 심장이 떨렸다. 정말 끝내 주는 여자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인다. 바로 그게 미술과 시의 정말 좋은 점이다. 다 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게 보인다. 숨은 의미를 백만 개는 찾을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부분은 유디트와 하녀가 남자의 목을 썰고 있지만 전혀 겁먹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거지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정말로 그랬을까 궁금하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로 보고 있다. 나는 책만큼이나 미술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을 때 드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두려움, 행복, 흥분, 슬픔을 전부 합친 것 같다. 몇 초 도안 내 가슴과 뱃속에서 차분한 빛이 반짝이는 것 같다. 가끔 숨이 멎을 때도 있는데, 이 그림 앞에 서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한지도 몰랐다. 사랑에 빠진 멍청이들에 대한 팝송에서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너무 흥분해서 책을 던져 버렸다. 화가 날 만큼 좋았다. 설명하려고 해 봤자 다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게 뻔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오래전부터 유디트를 주인공으로 그려온 작품들이 많이 있다. 아마 가장 화려한 유디트가 클림트의 유디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의 훌리아가 좋아하는 유디트의 그림은 다른 유디트의 그림들과 성향이 완전 다르다. 

 

잠깐 유디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유디트는 성경의 유딧서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전쟁에서 패할 위기에 처해 있는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적군의 장수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그의 목을 벤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젠틸렌스키는 카라바조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아래에 있는 카라바조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인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이런 유디트의 강인한 모습은 젠틸렌스키가 겪었던 개인적인 사건이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아고스티노 타시라는 사람에게 그림 교습을 받다가 강간을 당하게 된다. 법정에 세워졌지만, 재판부는 어이없게도 젠틸렌스키의 순결을 빼앗았는지를 강간의 여부로 보고, 그 이전에 성경험이 있다면 이는 강간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또한 젠틸렌스키의 증언을 검증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녀의 엄지 손가락을 죄는 고문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가해자였던 타시는 추방령이 선고되었지만 실행되지를 않았다. 이후 그녀의 작품들에서는 그녀가 느꼈던 고통들이 어김없이 보여지고 있는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서는 타시를 홀로페르네스에, 자신을 유디트에 투영함으로써 유디트의 강건함을 보이고 있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p. 136~138
나는 늘 행복을 느끼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행복이 아예 불가능한 것 같다. 

내가 왜 항상 이러는지, 왜 제일 사소한 것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우리에게 세상은 너무 과하다」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내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다. 나에게 세상은 너무 과하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일만 한다. 외출도 절대 안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서로 말도 거의 안 한다. 왜 다들 나보고 뭐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정상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못된 딸이라서 미안하다고? 내 삶을 싫어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철저히 혼자고 세상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 아마는 내가 자기 몸에서 기어 나온 돌연변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본다.

아침이 되면 나는 한 사람의 파편 같다. 끈 하나가 나라는 사람을 겨우 지탱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또 어떨 때는 끈이 완전히 풀리거나 경첩이 빠진 느낌이다. 여기에서 벗어나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기는커녕 고개를 들고 있기도 힘들다. 이제 1년 반밖에 안 남았지만 영원처럼 느껴진다. 지옥 같다.

 

 

p. 140
"견딜 수가 없어요..... 가끔은 내 잘못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날 내가 뭔가를 다르게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언니가 아직 살아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
"왜요?"
"네 잘못이 아니니까. 언니가 죽기를 바라진 않았잖아. 살다 보면 이런 일이 그냥 생기는 거야. 가끔 정말 거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잉맨 선생님은 비속어가 튀어나와서 당황한 것 같지만 사과하지 않는다. "내가 열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심장 마비였지. 어느 날 직장에서 그냥 쓰러지셨어. 그런데 그날 아침에 내가 엄마한테 정말 못되게 굴었거든. 점심 도시락 때문에 짜증을 내면서 엄마한테 밉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날 엄마가 돌아가신 거야. 그냥 그렇게."
"아아, 죄송해요." 나는 깜짝 놀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잉맨 선생님이 지금까지 편하게만 살았을 거라고 늘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나무 위의 집도 있고 뭐 그랬을 거라고 상상했다. 
"사라지나요, 그런 감정이?"
"조금 더 쉬워지지. 하지만 매일 엄마가 생각난단다."

 

 

p. 142
온종일 다른 집을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또 청소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이런 엄마를 보는 게 싫다. 죄책감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내 존재에 대한 죄책감.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말이다.

 

 

p. 153
"자기를 너무 미워하면 안 돼.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여도 누구나 엉망진창이야."

 

 

p. 182
살면서 제일 싫은 것 한 가지는 진정하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내가 통제 불능의 미친놈이라는 듯이, 그 어떤 감정도 가지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p. 188
난 멀리 떠나야 한다. 물론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여기에서 사는 건 넘 힘들다. 나는 성장하고 탐험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부모님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돋보기 밑에서 기어 다니는 기분이다.

 

 

p. 205
정신을 차려 보면 나는 늘 멍청하게 문을 빤히 바라보면서 올가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처음 죽었을 때만큼 언니가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가 썩 친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만. 이제 언니가 죽고 나니 장기를 하나 잃은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언니 꿈을 꾼다. 때로는 둘이서 차를 타고 가거나 부엌 식탁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는 무해한 꿈이지만, 가끔은 피투성이의 언니가 몸이 뒤틀리고 뭉개진 채 나와서 비명을 지르며 깰 때도 있다.

 

 

p. 212~213, 214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코너도 이미 알겠지만,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다. 

나는 낡은 중고품 구경을 정말 좋아하지만, 중고품 가게에 가면 왠지 가려운 느낌이 들고 내가 돈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좀 싫다. 코너는 중고품 가게에 가는 것을 재미있는 모험쯤으로 생각하는데, 아마도 거기서 물건을 사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거다. 아마와 올가, 나는 우리 동네 중고품 가게가 반값 할인을 하는 월요일에 가곤 했다. 빌어먹을 중고품 가게에서 할인을 찾다니, 정말 처량하다.

나는 전 재산이 6달러인데 코너는 장난으로 물건을 산다. 코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짜증이 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코너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갑자기 슬퍼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코너를 만나면 항상 신나지만 내 안에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묵직한 것이 있다.

 

 

p. 236
돈이 없는 게 지겹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이 세상이 결정하는 듯한 느낌도 지겹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알지만 움직일 수가 없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끝없는 형벌 같다. 몸이 덜덜 떨리고, 머릿속의 생각들이 뜨겁고 혼란스럽게 소용돌이친다. 숨을 제대로 못 쉬겠다.

 

 

p. 242
"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내가 마침내 말한다. "독립하고 싶어요. 내 삶을 갖고 싶어요. 심문받지 않고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요. 사생활이 필요해요. 그냥 숨을 쉬고 싶어요. 아시겠어요?"

 

 

p. 265
언니에 대한 내 생각이 틀렸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알던 대로 다정하고 따분한 올가면 어떻게 하지? 그냥 겉모습 밑에 다른 뭔가가 있었다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늘 그렇듯이 마음이 너무 배배 꼬여서 언니가 완벽하지 않았기를, 그래서 나만 이렇게 엉망진창인 기분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거면 어쩌지?

 

 

p. 320
아마를 보면 자꾸 국경이 떠오른다. 나는 땅바닥에서 비명을 지르는 엄마를, 머리에 총이 겨눠진 아파를 계속 그려 본다. 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는 말은 절대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비밀을 속에 가둬 둔 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 문제도 없는 척 신발 끈을 묶고, 머리를 빗고, 커피를 마시고, 설거지를 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속에 묻어둔 것들이 점점 커지는데 어떻게 웃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매일매일 그럴 수 있을까?
"저도 죄송해요." 내가 마침내 말한다. "엄마한테 상처를 줘서 미안해요. 죽고 싶어 해서 미안해요."

 

 

p. 352~353
나는 아빠한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할 수가 없다. 가끔 온갖 비밀이 덩굴처럼 내 목을 조른다. 무언가를 내 안에 가두어 놓는 것도 거짓말일까? 하지만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고통만 준다면? 올가의 불륜과 임신 사실을 알아서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모든 사실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친절한 걸까, 이기적인 걸까? 나 혼자서 끌어안고 살기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나쁜 걸까? 정말 지친다. 날갯짓을 하는 새 떼처럼 말이 목구멍 밖으로 뛰어나올 뻔한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부모님은 이미 충분히 고통받은 게 아닐까? 그래서 아마가 국경에서 있었던 일을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게 아닐까? 나는 안다. 아마는 수치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가슴속에 묻은 채 죽을 것이다. 올가가 자기 출생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올가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파였다.

 

 

p. 356
"저는 어떤 일이든 숨기고 묻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몸에 독이 퍼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싶기도 해요. 모르겠어요." 내 입술이 떨린다.

 

 

p. 368~369
훌리아가 쿡 선생님에게 자신이 지은 시라며 들려주었던 <판도라>

"그녀는 금고를 열었다. 자신을, 그녀의 삶이 담긴 낡은 슬라이드를, 그녀의 진실을 넣어 두었던 상자를 열었다. 부러진 깃털들, 거짓 반짝임을 만들어내는 박살 난 거울을. 그녀는 모든 순간을, 모든 거짓을, 모든 속임수를 모조리 분해한다. 모든 것이 멈춘다. 고요함, 아름다움, 더없는 행복, 겉모습이 담긴 사진들, 그녀의 축축한 입속에, 머리카락의 향기 속에 아직 남아 있지만 얽히고설킨 불확실함 속에서, 그녀의 어둠 속에서 파내야 하는 것들. 그녀는 자신이 펼쳐지는 날, 속박에서 풀려나는 날, 그 다홍색 상자를 뒤지고 또 뒤진다. 그녀는 진실 속에서 자라고 유목민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보랏빛 하늘의 아름다움을 훔치고 진주와 아름다운 아라베스크와 종이학을 찾아내서 얼굴에 가져다 대고 양 손바닥 사이에 간직한다. 영원히."

 

 

p. 379~380
나는 아직도 올가가 나오는 악몽을 꾼다. 가끔은 올가가 다시 인어로 등장하고, 가끔은 아기를 안고 있는데 알고 보면 아기가 아니다. 보통 바위나 물고기고, 심지어 헝겊이 든 자루일 때도 있다. 속도는 느렸지만 죄책감이 아직도 나뭇가지처럼 자란다. 언제쯤이면 내 잘못도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될까 궁금하다. 누가 알까?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아마가 이해를 하든 못 하든) 아마와 아파, 올가를 위해서 사는 것도 내가 이루려는 것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엄밀히 말해서 내가 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세 사람이 갖지 못했던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고,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지루하고 평범한 삶에 안주한다면 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낭비하는 셈이다. 언젠가 세 사람도 이 사실을 깨달을지 모른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일기장에서 올가의 초음파 사진을 꺼낸다. 가끔은 달걀 같고 가끔은 눈(眼) 같다. 지난번에는 심장 뛰는 것이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이것을, 사랑해야 할 또 다른 존재를, 이미 죽은 또 다른 존재를 어떻게 엄마 아빠에게 줄 수 있을까? 지난 2년 동안 나는 언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언니의 삶을 샅샅이 뒤졌고, 그러면서 나의 (아름답고도 추한) 조각들을 찾는 법을 배웠다. 여기 바로 내 손에 언니의 조각을 하나 쥐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p. 362

훌리아가 코너와 길거리 축제에 갔을 때 듣게 되는, 디페시모드 커버밴드 '인조이 더 사일런스' (훌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첨부하는 노래는 커버밴드 아닌 디페시모드 오리지널 곡. Depeche Mode "Enjoy the Silence"

 

 

 

※ p. 375 

훌리아가 자살시도를 하면서 반복 재생해 둔 노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토도 캄비아(Todo Cambia): 모두 변하네

 

 

 

※ 이 포스팅은 오렌지디(orangeD)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반응형
B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