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책]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나에대한열정 2022. 9. 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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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1867

 

 

서문 중에서(에밀 졸라는 1868년 2판에 자신의 서문을 달아 자연주의 소설관의 기초를 확립한다)

p. 10~11
<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좇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학살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이 책은 몇페이지에 달하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에밀 졸라가 왜 이런 인물들을 택했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길게 서문을 쓰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문을 한 번 읽고, 다시 책을 마무리하면서 서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이다같은 작가의 표현들에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구절들이 있다. 서문은 꼭 정독을!

 

테레즈는 2~3살 무렵, 고모인 라캥 부인에게 맡겨진다. 그리고 라캥 부인의 "허약한" 아들 카미유와 함께 그 집에서 자라게 된다. 라캥 부인은 자신의 아들을 잘 돌봐줄 간호사 역할로 테레즈를 원했고, 테레즈가 스물한살이 되면서, 테레즈와 카미유를 결혼시킨다. 둘 다 그들의 결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 결혼하면서 달라진 점은 다른 방에서 같은 방을 쓴다는 것뿐이었다. 병약하고, 젊음의 혈기에 관심도 없던 카미유는 테레즈를 껴안을 때 조차도 남자대하듯 했다. 그런 카미유가 아주 건장하고 혈기넘치는 친구 로랑을 집에 데려옴으로 인해 사건의 발단이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과는 너무나 다른 로랑에게 테레즈는 처음부터 끌리기 시작했고, 로랑도 그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둘의 극강불륜이 시작된다. 그리고 결국 둘 사이의 방해물이라 여긴 카미유를 죽이게 되는데......

 

사실, 이 소설은 이 부분까지만 읽게 되면, 에밀 졸라가 억울해했던 3류소설이 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이렇게 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까지 읽다가 만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읽었다 하는 것이다. 에밀 졸라의 표현대로 자유의지가 없이 육체에 의해 이끌리는 두 인물, 인간이라는 동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혼이 부재하는 그들의 행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기질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덧, 책 표지는 뭉크의 뱀파이어라는 그림이다. 책의 끝에 가면 왜 이 그림을 표지로 했는지 알 수 있다. 센스, 끝내준다.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

 

 

p. 83
타고난 본능과 주변 여건은 마치 로랑을 위해 테레즈를 만들어놓은 것 같았고 그들 서로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히스테릭하며 위선적인 여자와 다혈질이며 마구 사는 남자. 이 두 사람은 굳게 결합된 부부처럼 보였다. 그들은 서로를 보충하고 보호했다. 저녁 램프의 창백한 불 밑에서 식사를 할 때, 말없는 테레즈의 뚫을 수 없는 가면과 마주 앉은 로랑의 미소 짓는 두터운 얼굴을 보면 그들의 힘센 결합이 느껴졌다.

 

 

p. 85
이 가혹한 희극, 인생의 기만, 대낮의 뜨거운 포옹과 저녁의 고의적인 무관심을 비교하면서 젊은 여인의 피는 새로운 정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죽은 하늘에서 보는 재빠르고 눈부신 애욕의 번개 같았다.

 

 

p. 101
테레즈의 마음속에는 흥분과 비겁함과 가혹한 야유가 있었고, 로랑의 마음속에는 음침한 잔인성과 괴로운 불안이 있었다. 그들 자신까지도 그들 존재의 밑바닥에서 일종의 두텁고 거친 수증기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듯한 그 불안하고 열병과 같은 생각을 모르는 척했다.

 

 

p. 176
깊은 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의 가슴은 똑같은 고민으로 고통받았다. 이때부터 그들은 기쁨과 고통에 소용되는 단 하나의 육체와 단 하나의 영혼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공통성, 즉 상호 침투는 심리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으로서 심한 신경증적 충격이 서로 맹렬하게 충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것이다.
테레즈와 로랑은 일 년 이상을 그들의 사지에 박혀 그들을 결합시키고 있던 쇠사슬을 가볍게 여겨왔다. 죄를 범했을 당시의 날카로운 흥분이 사라져 긴장이 풀리고 모든 것이 싫어졌으며, 안정과 망각을 바라게 되었다. 이 두 범죄자들은 그들이 자유로워져 어떤 사슬에도 더는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p. 177
끊임없는 흥분 속에서 살면서도 억지로 미소를 짓고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아주 비겁하고 교활하지 않을 수 없었다. 

 

 

p. 180
더욱이 공공연히 결합하려는 마지막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어떤 막연한 절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공포가 있었다.

 

 

p. 187
그녀는 영원한 절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쓰디쓴 기쁨을 느끼는, 억세고 메마른 마음을 가진 여자가 아니었다. 이 늙은 여인의 마음속에는 순응성과 헌신과 다감한 정서, 즉 활발한 애정 속에 살고자 하는 기름지고 싹싹하고 사람 좋은 부인의 기질이 있었다.

 

 

p. 234~235
로랑은 두 주일 넘게 어떻게 하면 카미유를 다시 죽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물에 던졌는데도 아주 죽어버리지 않고 매일 밤 그들의 침대로 와서 눕곤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살인을 끝내고 그들의 사랑에 마음 편히 취하려는 순간, 희생자는 다시 살아나서 그들의 잠자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테레즈는 과부가 아니었다. 테레즈가 죽은 자를 남편으로 갖고 있는 한, 로랑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일 뿐이었다.

 

 

p. 251
테레즈와 로랑은 분열된 이중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 내부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해가 지자마자 떨리는 신경증적이고 공포에 휩싸인 존재며, 또 하나는 해가 뜨면 마음 편히 숨 쉬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마비된 존재였다. 그들은 두 가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고통을 본능적으로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p. 337~338
두 살인자가 제각기 도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본 다음 이처럼 지쳐서 서로 다시 마주 보게 됐을 때, 그들은 이미 더 싸울 기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방탕한 생활을 해도 소용없었기 때문에 고민 속에 다시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금 침침하고 습기 찬 집 안에 들어앉게 되었다. 평생을 감옥에 갇혀 있게 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끔은 구원을 찾으려 했으나 서로를 결박해놓은 피 묻은 끈은 절대로 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불가능한 노력을 이어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p. 348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이 지금까지 겪어왔고, 또 비겁함으로 인해 살아남게 되면 또다시 겪어야 할 심연 속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과거를 회상하자, 끝없고 거대한 휴식과 망각을 바랄 만큼 지쳐, 스스로에 대해 구역질을 느꼈다. 그리고 칼과 독이 든 컵 앞에서 마지막 시선, 감사의 시선을 교환했다. 테레즈는 그 컵을 들어 반쯤 마시고 나머지를 로랑에게 내밀었다. 로랑은 단숨에 마셨다. 그것은 하나의 번개였다. 그들은 벼락을 맞은 듯이 서로 포개져 쓰러지고 마침내는 죽음 속에서 하나의 위안을 찾았다. 젊은 여인의 입은 남편의 목에 있는 흉터에 닿았다. 그것은 카미유가 이로 물어뜯어 생긴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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