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나에대한열정 2022. 9. 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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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이 글은 보부아르 본인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엄마에 대한, 그녀에 대한, 어쩌면 그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의 엄마가 암으로 인해 병원에서 투병을 하게 되고, 돌아가신 조금 이후까지의 이야기에는 보부아르가 어렸을 때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엄마의 모습, 병이 진척되면서 보여지는 모습들, 그리고 그들의 관계 변화 등 현재에 과거의 상황들이 조금씩 소환되면서 글은 전개되고 있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남편에게 공손하던 엄마는 그 상황이 자식들에게 넘어가자, 자식들에게 보이는 모습도 그렇게 된다. 어느 시대에나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일 수도 있으나, 보부아르에게 보여지는 엄마의 그런 모습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낯설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엄마와의 관계에서 보부아르는 일종의 화해를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솔직한 모습들을 보일 수 없었던 엄마세대들을 연민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욕창이 생겨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모르핀으로도 고통을 줄일 수 없는 상황까지 된다면, 과연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명을 유지시키는 게 맞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선택일까.

편안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무엇일까. 잠을 주무시다가 돌아가신 어른들을 향해서도 그런 표현을 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이 닿지 않으면, 그건 편안한 죽음일까. 죽음으로 이르는 시간 동안 과연 괴롭지 않았을까.

 

사족: 오래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모습이 생각난다. 돌아가시기 전 거의 1년 동안 방 안에서 모자를 쓰고 계셨다. 옆에는 지팡이를 둔 채로 말이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서랍장 위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 모자를 쓰신다고 했다. 지팡이는 혹시나 그 사람들이 다가오면 쫓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그랬던 할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다가, 주무시던 사이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그 순간은 편안했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

 

 

p. 41~42
이날 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입에서 내가 읽어낸 그 모든 것에 대해 들려주었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탐욕, 비굴함에 가까운 고분고분함, 희망, 비참함, 죽음과 대면해서뿐만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내내 느껴 왔을, 하지만 털어놓지 못했던 고독함에 대해서. 사르트르에 따르면 내가 더 이상 입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내 얼굴에 엄마의 입을 포개어 놓고 나도 모르게 그 입 모양을 따라 했던 모양이다. 내 입은 엄마라고 하는 사람 전부를, 엄마의 삶 전체를 구현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p. 53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이 말은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엄마의 욕망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는 걸 보여 주는 말인 셈이었다. 자제력이 없고 때로는 심술궂게 굴던 엄마였지만, 제정신일 때는 조심하는 걸 넘어서 공손하기까지 한 태도를 취했다. 

 

 

p. 58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p. 62
힘겹게 숨을 쉬면서 내뱉은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엄마의 입에다가 귀를 가져다 대야만 했다. 그건 마치 신탁처럼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어린애 같은 엄마의 목소리와 임박해 온 죽음으로 인해 엄마의 기억과 생각, 그리고 걱정 근심이 비현실적이고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꿈으로 변해 시간을 초월한 상태로 떠다니고 있었다.

 

 

p. 68
우리에게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 달라고 하고서는 창문 너무 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예쁘구나. 집에 있었더라면 보지 못했겠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동생과 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의 유년기를 환하게 밝혀 준 미소를, 젊은 여인의 눈부신 미소를 다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미소가 사라진 건 언제쯤이었을까?

 

 

p. 75
"죽어 가는 사람들은 이불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법이지."
이 말에 나는 숨이 막힐 듯 놀랐다.

거만하다 싶을 만큼 자존심을 내세우며 살아온 엄마는 창피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부자연스러우리만큼 정신적인 측면을 중시하며 살아온 엄마가 인간이 지닌 동물적 측면을 받아들이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한 것 역시 그 자체로 용기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p. 94
부당하게 차가운 태도로 엄마를 대하고 나니 내 마음 역시 좋지 않았다. 진실이 엄마를 짓누르고 있던 그 순간, 그래서 말로나마 그로부터 벗어나는 게 필요했을 그 순간, 우리는 엄마에게 침묵할 것을 강요했던 셈이다. 불안한 내색을 감추길, 가급적 의구심을 드러내지 말길 엄마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일평생 그래 왔듯, 여전히 엄마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과 자신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p. 95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른들 각자가 자기만의 작은 벽 사이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씩 엄마는 벽에 구멍을 뚫었다가는 재빨리 다시 막아 버리곤 했다. 그러고는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양 "그 여자가 내게 비밀을 털어놓았어"라며 속삭였다. 혹은 남의 벽 바깥에서 그 벽에 생긴 틈새를 발견하고는 "그 여자는 뭔가를 잘 숨겨,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거든. 그런데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비밀을 털어놓거나 쑥덕공론하는 걸 떳떳하지 않은 짓으로 여겼던 터라 그렇게 하는 걸 싫어했다. 나는 빈틈이 전혀 없이 성벽을 쌓길 바랐다. 특히 엄마에게는 그 어떤 것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쎴다. 엄마가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할까 봐 걱정해서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감시하는 눈초리가 싫기 때문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는 더 이상 내게 그 무엇도 물으려 하지 않았다.

 

 

p. 108~109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둔 후회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너무나 닮은 탓에 끊어진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와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이다. 엄마가 몇 가지 단순한 말과 행동 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식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향한 내 오랜 애정이 되살아났다.

 

 

p. 112
도대체 엄마는 어떤 기억과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엄마는 언제나 바깥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그래서 급작스레 내면에서 헤매게 된 엄마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내면에 몰두하는 일을 방해받는 걸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았다.

 

 

p. 115
"너무나도 불행하구나."
내 마음을 찢어 놓는 어린애 같은 목소리였다. 엄마는 완전히 혼자였다! 엄마를 어루만지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줄 수는 있었지만, 지금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p. 119
"알겠다. 그래도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
엄마가 질책하듯 말했다.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
엄마에게 매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죽어 가고 있지 않은가. 엄마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를 대신해서 나는 체념하지 않고 있었다.

 

 

p. 120
"그런데 사람들의 의식을 그렇게 마비시킬 수 있는 거니?"
항의를 하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자신을 안심시켜주길 바랐던 듯하다.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 건 인위적인 결과이지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p. 121~122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지 어쩐지 통 모르겠구나."
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듯 "내가 명랑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라고 말했던 걸 떠올렸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엄마에게 조금씩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갔다. 그리고 이제 엄마의 마음은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피로감에 완전히 잠식당한 결과였다. 그런데 무심함을 담고 있는 이 말은, 엄마가 지금껏 했던 그 어떤 애정 어린 말보다 더욱더 나를 감동케 했다. 예전에 엄마는 관례적으로 했던 교양 있는 말이나 판에 박힌 행동들로 자신이 진짜로 느끼고 있는 바를 감추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표현과 행동의 부재가 엄마에게 남긴 냉담함의 정도에 비추어 그녀가 진짜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얼마나 뜨거울지 가늠해 보았다.

 

 

p. 136~137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삶에서 더 크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던 존재,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찔함을 자아내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한계 - 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비난할 여지가 여전히 남게 된다. 

나를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 맡겨 놓지 마라.
이렇게 호소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처지에 놓인 모든 사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과로에 지친 간호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개 환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공포가 엄습할 때 이마에 손을 얹어 줄 이 하나 없을 때, 고통이 휘몰아칠 때 고통을 달래 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죽음의 정적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이라도 늘어놓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말이다.

 

 

p. 142~143
죽음을 삶과 통합하려는 건, 그리고 합리적인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일에 직면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는 건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각자가 나름대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풀어 나가야 한다. 나는 유언을 남기고자 하는 모든 이의 심정을 이해한다. 또한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심정 역시 이해한다.

 

 

p. 148~149
지금의 나는 사진 속 엄마의 어머니, 즉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이 소녀의 할머니뻘이 됨직하다. 너무나 어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나와, 이제는 미래가 가로막혀 버린,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았던 엄마. 사진 속의 두 여자에게 나는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에게 조언해줄 길이 없다. 딸을 불행하게 하고 그 대가로 자기 자신조차 고통스럽게 만든, 그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불행을 엄마가 잊을 수 있게 할 방도를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내 삶의 한 시기를 망쳐 놓았다는 이유로, 비록 계획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엄마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엄마는 내 영혼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p. 153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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