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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새벽의 그림자(최유안/은행나무 출판사)

나에대한열정 2024. 7. 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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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안 《새벽의 그림자》




전직 경찰이었던 해주는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논문을 쓰던 중 자료조사를 위해서 독일에 머물게 된다. 한스 뵐러 박사로부터 '베르크'라는 작은 마을에 대하여, 그곳에서 집단을 이루고 사는 한국인들과 몇 달 전에 있었던 사망 사건에 대하여 듣게 된다. 28세의 북한에서 온 대학생. 단순 자살이 아닐거라 생각하는 해주는 진실을 알기 위해 움직이는데...

고등학교 시절, 독일의 통일과 관련된 방송들을 보면서 '이제 우리만 남았다'라는 말들을 참으로 많이 하였다. 우리도 바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아직 그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때처럼 통일에 대한 말들도 많이 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건간에, 우리가 안고가야 할, 부담해야 할 문제들은 분명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에 대한 시선도 그리 곱지 않으면서 과연 우리가 통일 뒤의 모습을 껴안을 수 있을까.

최유안의  《새벽의 그림자》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어쩌면 도외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지만 분명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해보라고 하고 있다. 우리의 비겹함이, 무관심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의 안위를 딛고 서있는 것인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해주가, 그리고 그 품의 이든이 제발 무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2의 이든도......


p. 11
욕망은 행위를 위한 나침반 같아서, 인간은 대체로 이유 없이 그것에 휘둘린다.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그보다 참담한 건 그걸 인지한다고 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p. 21
같은 경계 안에 있어 자신을 대변할 만한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면, 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침묵하며 추모한다. 설령 제 일처럼 생각하더라도 부당한 일에 분노하고, 경위를 밝히려고 노력하지 마치 가족이 일을 당한 것처럼 서로 끌어안고 슬퍼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p. 50
만남을 거듭할수록 관계와 감정은 변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계가 늘 변화한다는 사실을 상수처럼 끌고 가는 것보다 유리한 건 없었다.


p. 134
이방인이라는 단어에는 구역이 있다고 해주는 생각해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낯선 공간에 끼어든 이들, 토착화된 문화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령처럼 방황하는 이들. 해주는 그런 이들이 이방인의 범주에 해당되는 줄 알았다. 부서지는 믿음이 만들어낸 슬픔은 구체적이다. 희망과 절망에는 이렇다 할 경계가 없다. 어디로 가야 했을까, 노인은.


p. 135
태어남과 동시에 에외 없이 인장을 갖게 되는 인간들에 관해. 살을 도려내듯 자신의 인장을 떼어내야 했던 노인에 관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이들의 마음에 관해.


p. 147
같은 이유로 만들어지는 사건들이 있다고.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사건들이.


p. 147~148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은 늘 두렵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느냐, 주저앉아 숨어버리느냐. 선택할 수 있는 건 늘 겨우 그것뿐이다.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Schlechtes Gewissen
[명사] 죄책-감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


p. 149~150
불안은 사람의 감정을 면밀하게 조종하는 법이다. 불안이라는 불씨를 지피면 사람들은 행동한다. 화는 가장 효과적으로 인간을 행동에 이르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선을 증명하고 싶어 하고, 화를 내는 건 자신의 정의를 입증하는 일이니까. 그것이 용준의 입을 통해 들은 칸트의 주장이었다..
자신의 정당성과 의도의 순수함을 위해 사람들은 화를 낸다. 그래야 자신이 선이라고 믿는 것들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화를 촉발시킨 무언가에 집중한다. 자신의 선을 침해하는 원인을 제거하면 화가 풀릴 테니까.


p. 154
"형, 행복이란 편안해서, 놀아서, 좋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야."

"안 불행하면 그냥 행복이지. 고통스럽지 않고, 힘들지 않고, 그저 그 상태로 됐으면, 그게 행복이지."


p. 158
해주는 행복을 생각할 때면 여전히 용준의 말을 되새김질 한다. 행복이란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자극을 계속 받는 게 아니고, 그저 불헹하지 않은 마음이다. 그러면 불행을 불행으로 인지하지 않는 게 행복인가 싶기도 하다.


p. 174~175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것은 이제 그저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서, 해주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용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관심이나 있었을까. 경장 진급과 먹고사는 문제, 겨우 그것이 해주 삶을 지탱하는 전부가 아니었을까. 아니, 이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신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러면 누가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지.


p. 197
전쟁이 또 시작되었다고 했을 때 용준은 말했었다.
"총성과 포격이 오가는 그곳에서 사람 목숨은 지나가는 개의 목숨이랑 다를 게 없지. 전쟁은 신념이 만들지만, 그 신념이라는 게 결국 권력으로 채워 만든 욕심이 아니고 뭐겠어요."


p. 206
우리는 많은 사실을 잘 모른다. 한 사람의 경험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의 경험은 그 한계를 늘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읽는다. 그것을 읽으면서 경계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추론할 수 있다. 인간의 유일한 무기는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성이 발달해 있다는 것. 그들의 슬픔의 둘레에 잠깐 닿아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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