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드 보부아르 <위기의 여자>
<위기의 여자>의 원제는 La Femme Rompue인데, rompue는 '관계가 끊어진, 계약이 깨진'의 의미를 갖는다. 동사 rompre는 관계를 끊다, 연인과 헤어지다라는 의미.
우리말로 뭐라고 하면 의미 전달이 매끄럽고 쉬웠을까. 적어도 위기...는 아닌거 같다.
그리고 이 표지는 아니지 않는가. 소설을 안읽었던지, 이 그림을 모르던지. 모딜리아니가 사랑한 잔느의 그림을, 이렇게 이런 이야기의 표지로 삼는다는 건, 옳지 않다.
어쩌면 이리도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세상의 중심이고 모든 것일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어찌나 속이 터지고 답답하던지. 애인이 생겼다는 남편 모리스의 고백에 삶의 모든 빛을 잃어버리는 아내 모니크.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사이의 한 여성에게서, 보부아르가 느꼈던 감정이 어느 정도는 투영된 탓인지, 그 마음을 느끼는 것 또한 편하지 않았다. 아직도 목에 고구마 백만개가 함께 한다.
p. 24
내게만은 그런 일이 없으려니 생각했다. 자식의 거짓말에 속는 어머니도 아니요, 남편의 거짓말에 속는 아내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자존심인가. 모든 여자들이 자기는 다른 여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가 그런 일이 자기에게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모두 틀린 것이다.
p. 109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만약 모리스가 치사한 인간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하느라고 내 인생을 망쳐버린 셈이 된다.하지만 어쩌면 그에게는 나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할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유는 모르더라도 나 자신을 증오하고 경멸할 만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정은 그 어느 것도 잔인한 일이다.
p. 115
이런 일이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을 때는 그것은 한정된 사건으로서 그 사건을 도려내거나 극복하는 일이 모두 쉽게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에게 일어났을 때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무서운 시련속에서 완전히 고독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 121
아! 절망 그 자체보다도 더 괴로운 것은 이따금 마음속을 쑤시고 지나가는 희망의 가시이다.
p. 199
"그래 행복하니?"
"행복이란 말은 엄마가 쓰는 말이죠. 내겐 그런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렇다면 넌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니?"
"내 인생은 다만 내 취미에 꼭 어울린다는 것 뿐이에요."
p. 204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로. 시간과 생명을 정지시킨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움직이리라는 것을. 그러면 문은 천천히 열릴 것이며, 나는 그 문 뒤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래이다. 미래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 서서히. 가차없이. 나는 지금 문지방에 서있다. 내 앞에는 이 문과 그 뒤에서 엿보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두렵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구원을 청할 수 없다.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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