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나에대한열정 2020. 12. 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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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Orlando>


책시작 부분에  "V. 색빌웨스트에게"라고 씌어 있는데, 주인공 올랜도는 버지니아 울프가 사랑했던 비타 색빌-웨스트(영국의 여류시인이자 소설가)를 모델로 하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얘기는 <비타와 버지니아>라는 책리뷰 포스팅에서 하고자 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올랜도는 16세의 아주 잘생긴 젊은 귀족이다. 그에게 반한 엘리자베스 1세는 그에게 관직을 주고 영국의 최고훈장인 가터훈장을 달아준다. 그 뒤로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부모에게 거대한 저택을 양도한다. 무려 방이 365개이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는 사촌동생인 토마스 색빌에게 이 저택을 양도하는데, 바로 비타 색빌웨스트의 집안이다.)


템즈강의 서리축제에서 러시아공주(사샤)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로부터 실연을 당한 올랜도는 찰스2세의 대사로 콘스탄티노플에 가게 해달라고 한다. 그곳에서 업무를 잘 수행하고 지내던 올랜도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여자로 변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400년이라는 시간을 살게 되는데...



p. 18

인간의 기질 가운데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 있는 모양이어서, 어떤 기질에는 으레 어떤 기질이 곁들이게 된다. 그가 굼뜬 것이 그가 종종 고독을 사랑하는 성향과 짝을 이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서랍 상자 따위에 걸려 넘어지는 올랜도는 당연히 고독한 장소나 광활한 전망들을 좋아했고, 자기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혼자라고 느끼기를 좋아했다.



p. 43

행복과 우울은 종이 한 장 상관이라고 했던 그 철학자의 말이 옳다. 철학자는 이 둘을 쌍둥이로 생각하고, 따라서 모든 극단적인 감정은 광기와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얻고.



p. 62~63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잠이라면 어떤 성격의 잠인가,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잠은 치료를 위한 하나의 방편일까 - 더 없이 가 나게 하는 기억들, 인생을 망쳐버릴 것 같은 일들을 검은 날개로 문지르고, 가장 추하고 천한 것들마저 까칠한 부분을 문지르고 금박을  입혀, 광택과 광채가 나게 하는 최면상태인가?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의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올랜도는 극심한 고통때문에 지칠대로 지쳐, 일주일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삶의 본질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반시간도 훨씬 넘게 기다렸는데도 아무 해답이 나오지 않으니, 그냥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자.



P. 65

10대에 걸쳐 조상의 관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지하 납골당.


그것은 정복왕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온 가족의 초대 영주가, 모든 영화는 부패 위에 만들어진다는 것, 육체 밑에는 해골이 있다는 것, 지상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우리는 땅 속에 잠들어야 한다는 것, 진흥의 벨벳도 흙이 되고 만다는 것, 반지도 루비를 잃을 것이고, 그처럼 윤나던 눈도 더 이상 빛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했던양, 납골당은 집의 기초 밑을 깊이 파서 만들어졌다.



P. 71~72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해괴한 농간을 부리는데, 이를테면 어울리지 않게 우리를 진흙과 다이아몬드로 만드는가 하면, 무지개와 화강암으로 만들고, 그것들을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 하나의 상자에 채워 넣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푸줏간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면, 푸줏간 주인이 시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불품사납게 길어진 이 문장으로도 충분치 않을 만큼 할 말이 많은 자연은, 우리 안에 쓰레기 주머니를 넣어줄 뿐만 아니라-경찰의 바지 쪼가리가 알렉산더 왕비의 면사포와 함께 들어 있다-이 모든 잡동사니들을 한 가닥의 실로 가볍게 엮으려 함으로써 일을 가일층 혼란스럽게 만든다. 추억은 재봉사이고, 게다가 변덕스럽다. 추억은 바늘을 안팎으로, 위아래로, 이리저리 누빈다. 우리는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뒤에 뭐가 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테이블을 향해 앉거나, 잉크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동작이 수많은 무관한 조각들을 흔들어놓아, 이들은 마치 강풍속의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열네 식구 가족의 속내의처럼, 때로는 밝게, 때로는 어둡게 늘어져 있는가 하면, 위아래로 깔딱거리고, 밑으로 잠기는가 하면 휘날리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은 아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단 하나의 분명하고 단순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날개의 퍼덕임과 떨림, 그리고 빛의 명멸이 수반된다.



p. 89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간은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는 놀라운 정도로 정확하게 꽃피고 시들게 만들지만,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는 그처럼 단순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정신은 시간이라는 실체에 대해 마찬가지로 묘하게 작용한다.


1초 1초가 부풀어 오르고 속이 차서, 절대로 흩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시간들은 가장 이상하고 다양한 물체로 자신들을 채웠다. 왜냐하면 올랜도는 지금까지 가장 현명한 현자들마저 괴롭혔던 문제들, 이를테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따위의 문제에 스스로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터무니없이 길고 다양하게 생각되었던 그의 과거 전부가 흩어지는 시간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 그것을 본래 크기의 12배로 부풀리고, 갖가지 색으로 채색하고, 우주의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채워 놓았기 때문이다.



p. 105

'사랑'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까맣다. '사랑'은 몸도 두 개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는 매끄럽고, 다른 하나는 털투성이다. 또 손도 둘이고, 발도 둘이고, 발톱도 둘이다. 사실 모든 기관이 둘이고, 각각은 정확하게 상대방의 정반대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연결돼 있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



p. 123~124

나팔 소리가 잠잠해지고, 올랜도는 완전히 벗은 채로 서 있었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그 어느 인간도 그보다 더 매혹적일 수는 없었다. 그의 모습은 남자의 힘과 여자의 우아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올랜도가 남자였던 이전과 꼭 같았다. 성의 변화가 비록 그들의 미래를 바꿔 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관례대로 '그의' 대신 '그녀의'라고, 그리고 '그'대신 '그녀'라고 해야겠지만, 당시 그녀의 기억은 과거의 생애 중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되돌아보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었다. 마치 깨끗한 기억의 웅덩이 속으로 몇 방울의 검은 물방울이 떨어진 듯, 약간 흐려졌을 수는 있다. 어떤 것들은 좀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1) 올랜도는 처음부터 여자였다. (2) 지금 이 순간도 올랜도는 남자다. 이 문제의 결정은 생물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저 올랜도가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그 뒤로는 쭉 여자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p. 133

도시들은 그보다도 못한 의견의 차이 때문에 약탈당하고, 그리고 무수한 순교자들이 여기서 다툰 논쟁거리의 어느 하나에서 한 치의 양보를 하느니 차라리 화형을 감내했다. 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싶은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 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어느 한 지역을 다른 지역과 대척시키고, 어느 교구가 다른 교가 망하기를 원하는 것은, 진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이기려는 욕망 때문이다. 사람마다 진리의 승리나 미덕의 찬양보다 마음의 평화와 다른 사람의 복종을 원한다.



p. 139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앞으로는 그런 요구들을 내가 몸소 감내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여성으로서의 나의 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



p. 141

그녀는 남자였고, 여자였다. 그녀는 각각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약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몹시 당황스럽고 어지러운 상태였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혜택은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강풍에 날리는 한낱 깃털이었다. 그녀가 하나의 성을 다른 성에 대비시켜 놓고, 각각 모두 가장 통탄스러운 결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자기가 그 어느 것에 속하는지도 확실치 않았을 때- 다시 터키로 돌아가서 집시가 되겠다고 소리치려고 했던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p. 142~143

그녀는 자기가 군마를 타고 화이트홀을 행진하거나, 어떤 이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 "여성의 검은 의상인 가난과 무식의 옷을 입고 있는 편이 더 낫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세상의 규칙과 규율을 남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군사적 야심이나 권력욕, 그 밖의 모든 남성적 욕망 따위에서 벗어나는 편이 낫다. 그리하여 인간 정신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양된 환희를 즐길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을 때 늘 그렇듯이 그녀는 '명상, 고독, 사랑을 만끽할 수 있다면"이라고 외쳤다.

"내가 여자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올랜도의 모든 애인들이 여자였고, 인간의 몸은 관습에 익숙해지는 것이 괘씸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비록 그녀가 여자이긴 했으나, 올랜도가 사랑한 것은 여전히 여자였다. 동성이라는 의식이 오히려 그녀가 남자였을 때 가졌던 감정을 한층 더 활기차고 깊게 만들었다. 남자였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무수한 암시나 수수께끼가 지금은 분명해졌다. 남녀를 구분하고, 무수한 불순물들을 어둠속에 고이게 만들던 애매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시인이 하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올랜도가 여자에 대해서 느끼는 이 애정은 거짓 속에서 잃었던 것을 아름다움 속에서 얻은 것이다.



p. 149

(1)그녀는 사망했다. 따라서 어떤 재산도 지닐 수 없다. (2) 그녀는 여자이며, 따라서 결국 재산을 지닐 수 없다.



p. 154

우리들의 메시지를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을 위해, 제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말이 우리 생각과 더없이 밀착할 때까지 가꿔야 한다.


"내가 성숙해지고 있는 거야."


"나는 몇 가지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야"


"아마 다른 환상들을 품기 시작하는 거겠지."



p. 166~167

그녀는 여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자기 두뇌에 대해서는 보다 겸손해지고 있었으며, 용모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어떤 감수성은 더 강해졌고, 다른 감수성은 약해졌다.


옷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을 바꾼다.


남자 때의 올랜도와 여자 때의 올랜도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은 틀림없는 동일 인물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남자 올랜도는 아무 때나 칼을 뽑울 수 있도록 손이 비어 있는 반면에, 여자 올랜도의 손은 새틴 숄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잡아주어야만 한다.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옷이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의 상징에 불과하다.


이따금 그녀의 처신에서 예상치 못한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그녀의 내면에 남자와 여자가 혼재해 있어, 하나의 성이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다음에는 다른 성이 우위에 서기 때문이었다. 



p. 214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외침은 "인생! 연인!"이었지 "인생! 남편!"이 아니었고, 앞 장에서처럼 그녀가 런던에 나와 세상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도 이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대정신의 본성은 단호해서, 누구든 맞서려는 자는 순종하는 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때려눕히는 것이었다.



p. 260

같은 종류의 일이 오늘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은 절대로 같은 날이 아니다. 같지 않다.



p. 263

지금이 현재의 순간이라는 것보다 더 놀라운 계시가 있겠는가? 우리가 이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한쪽을 과거가 우리를 보호해주고, 또 다른 한쪽을 미래가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p. 271~272

우리가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자아는, 마치 웨이터의 손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접시처럼 서로 포개져 있으며, 다른 곳에 애착과 공감을 느끼고 있어, 나름대로의 규칙과 권리와 이름이 무엇이든 그 밖의 것들(이들 중 많은 것들은 이름이 없으니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나는 비가 올 때만 올 것이고, 다른 나는 녹색 커튼을 친 방에만 올 것이고, 또 다른 나는 존스 부인이 없을 때만 올 것이고, 포도주 한잔을 약속할 때는 또 다른 내가 - 등등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여러 자아들과 맺은 상이한 조건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조건들 중 어떤 것은 말도 안되게 황당한 것이어서 여기 활자로 옮겨 놓을 수가 없다.



p. 276~277

사람들이 큰소리로 이야기할 때, 수많은 자아는 거리감을 느껴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정작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침묵하게 되기 때문이다



틸다 스윈튼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 같다. 올랜도에 너무 잘 어울리는 역할. 개인적으로는 책보다 영화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전하고자 하는 게 더 잘 전달되고 있는 듯하다. 시대적인 것도 있지만, 옷으로 인해서 주어지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떤 것인지, 무엇이 불합리한 것인지, 그로 인해 파장된 다른 것들이 얼마나 무수한지. 한번쯤은 "의도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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