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나는 일명 연예인들이 내놓는 책은 읽지 않는다.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이 한몫하고 있겠지만, 세상에 읽어야 하고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들의 책을 본다는 게 그닥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장기하씨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다. 처음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들었을 때, 노래 부르는 사람을 한참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저 사람 뭐지? 저 노래는 뭐지? 그 사람의 프로필을 뒤로하고라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조금은 궁금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책이 나왔단다. 읽고 던지더라도 한번 펴보고 싶었다. 소장하지는 않을 것이니 읽고 던지는 것은 맞으나, 한번쯤 대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맞다.
p. 26
술에 취한다는 건 결국 그냥 좀 멍청해지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멍청해진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가 평소보다 더 진실된 것이라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물론 멍청한 때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했던 말을 술에 취하면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밝히는 마음이 더 '진실된'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p. 119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니 좋겠다"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부러워서 하는 말이니 으쓱 할 만도 한데, 그때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닌데'라는 마음이었달까. 자유롭다는 것은 곧 막연하다는 뜻이고, 막연한 삶은 종종 외롭다. 이끌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할 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이제는 '막연하고 외로운 것인 뭐 어떤가. 따지고 보면 어떤 삶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쯤은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p. 135
내가 달리고 싶을 때, 내가 달리고 싶은 장소에서, 내가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는 게 제일 좋다.
p. 187
행복 앞에 뾰족한 수는 없다.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돈이 많든 적든 재능이 많든 적든 인기가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애인이 있든 없든 집이 있든 없든 키가 크든 작든 그 무엇을 가졌든 못 가졌든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대략 비슷하게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얘기다. 물론 각자 무엇을 가졌는가에 따라 사회적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은 달라진다. 거기에 있어서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행복은 다른 문제다. 그 어떤 사회적 성공도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 성공을 손에 넣는 순간 자신이 그걸 얼마나 절실히 원했었는지 잊어버린다. 혹은 그 성공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불행을 맞이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앞에 놓인 불행을 어떻게든 헤치고 나름의 행복에 닿고자 막연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이게 여태까지의 삶이 내게 가르쳐준 바다. 물론 앞으로 이 생각을 뒤집어줄 사람이나 사건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적이 없다.
p. 239~240
그러고 보면 삶은 예술을 똑 닮았다. 그림이나 소설이나 노래가 하나쯤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바뀌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 받는 명작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마저도 어떤 이들에게는 옆집 꼬마의 미술 숙제와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여겨지기 마련이다.
간단히 말해, 보기에 따라 대단히 중요하기도 하고 한없이 무가치하기도 한 것이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작품이 더 무겁고 가벼운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 혹은 죽음이 다른 이의 그것보다 무겁거나 가볍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간중간 와닿는 말들이 더 있었으나 옮기지 못했다. 어중간하게 자르면 글쓴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상하게 남겨지고, 다 옮기자니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 그럴 바에는 기억에만 남기는 게 맞다고 여겨졌다. 희미해지더라도. 어차피 내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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