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이금이 <허구의 삶>

나에대한열정 2020. 12. 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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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허구의 삶>


'경일703'이라는 동창회 밴드에 초대장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동창회밴드라서 대부분 실명을 썼지만, 그 글을 올린 사람은 '여행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초대장은 다름 아닌 '부고장'이었다. 추억 한줌씩 가지고 자신의 장례식장에 오라는.


그 글을 쓴 사람은 '허구'였고, 그 글을 여행자라는 닉네임으로 올린 사람은 '지상만'이었다. 물론 그 아이디는 허구의 아이디였고.

'경일 703'은 제천의 경일고등학교 7회졸업생으로 3반이었던 친구들의 모임이다. 허구는 2학년 때 서울에서 전학을 왔고, 이름때문에 뻥쟁이라는 별명과 물주를 담당해서 호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친구였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지상만은 허구의 똘마니로 저장되어 있었다. 


부모가 없이 외삼촌 집에서 일을 거들며 살던 상만이는 허구의 집에 배달을 하러 갔다가, 따듯한 허구의 어머니로 인해 허구와 가까워지게 된다. 남부러울거 없는 환경에 자상한 부모까지, 이런 허구가 부러운 상만. 그러나 그 삶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고. 이걸 사춘기에 들어설 때 쯤 알게 된 허구는 평생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부끄러운 어린시절들을 지우고 싶은 상만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포장된 삶을 이어 나가게 되고.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수만 있었어도, 행복할 수도 있었을텐데. 참 많이 안타까웠다.


(소설내용중에 평행이론에 대한 것이 언급된다. 평행우주와 혼동한듯한데...그보다 중요한 주제가 있으니.)


p. 25

상대에게 주눅 들 때 초라해지지 않는 방법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p. 59~60

'가지 않은 길'로의 여행


K는 자신이 이미 겪었거나 겪을 일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으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살일 수도 있었던 B나 C, D......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이다. 상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B, C......를 선택한 K의 또 다른 세계다. K로부터 파생했지만 현재의 K와 상관없는 세상이고 각각의 세계마다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



p. 80~81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의 인생만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하나의 인생만 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야."


"이를테면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하필 그 순간 내가 아래층에 내려가 널 만나게 됐어.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이 방에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날 내가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려갔더라도 네가 그냥 갔을 수도 있지. 그 상황은 지금 우리 세계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일은 아니야. 지금 여기의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들이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거지."



p. 232

그런 때가 있었다. 그들 모두에겐 가슴속에 들끓는 열기를 어쩌지 못해 꿈틀거리던 때가 있었다.



p. 251

삶은 어느 한 순간 정지시키고 리셋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억은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삶 자체를 편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사랑한 적이 없었다. 늘 스스로를 창피해하며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그래야 인정받고 사랑 받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된 상만은 자신에게 상처 주었던 어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수는 자기와 닮은 상민에게 그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지옥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 것이다.



p. 253

살아 있어 아직 많은 것이 가능했다.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서 나온 책이지만, 사실 이런 글들을 읽어야 될 사람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 받을 시기에 제대로 듬뿍 사랑을 받고,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올바른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그 아이들은 분명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로 자랄 수 있다. 잠시 방황한다 치더라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허구와 상만이 같이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안고 살지 않도록,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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