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허삼관 매혈기>
허삼관은 성안의 생사(生絲)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어느 날, 몸이 건강한 사람은 다 피를 판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더욱이 피를 팔고 받는 돈은 반년을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란다. 이에 허삼관은 방씨와 근룡이와 함께 피를 팔게 된다.
p. 32~33
"어이 삼관이, 자에 피 팔아 본 돈 어떻게 쓸지 생각해봤나?"
"아직 안 해봤는데요.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동능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본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
큰 일, 허삼관은 여자를 얻어 장가가는데 이 돈을 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는 두 명, 한 명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임분방이었고, 한 명은 '꽈배기 서씨(춘추시대 월나라 미인)'라고 불리는 꽈배기를 튀기는 이쁜 허옥란이었다. 결국 허옥란으로 마음을 굳힌 허삼관은, 이미 하소용이랑 사귀고(?) 있던 허옥란을 아내로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오 년 동안 아들 셋을 낳게 되는데...
아들 중에 제일 이뻐하던 첫째, 일락이가 허삼관이 아닌 하소용을 닮았다고 주위에서 수군거리고, 이에 허옥란을 추궁하자, 단 한번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에 분노하고 있는 즈음,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의 머리를 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허삼관은 그동안 키워준 건 넘어가겠으니 방씨 아들의 병원비라도 내라고 하소용에게 허옥란과 일락이를 통해 이야기해보지만 하소용은 내아들 아니라면서 발뺌을 한다.
결국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다시 팔아 병원비를 준다.
p. 117
"봤어? 여기 빨간 점 보이냐구? 여기 빈대가 문 것 같은 빨간 점 말이야. 이게 바로 병원에서 주삿바늘을 꽂은 자리라구."
허삼관이 소매를 내리면서 허옥란에게 소리쳤다.
"피를 팔았단 말이야. 이 허삼관이 피를 팔았다구. 하소용 대신 빚을 갚으려고 피를 팔아서 또 자라 대가리 노릇을 했단 말이야."
허삼관은 자기자식이 아닌 것도 모르고 십년 가까이 키웠다면서, 중국남자에게 최고의 욕에 해당하는 '자라 대가리'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무능하고 바보 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
한편, 허삼관은 다리를 다쳐서 누워있는 임분방의 문병을 갔다가, 임분방과 관계를 맺고, 그녀를 위해 또 피를 판다. 뼈를 붙게 하고 열을 내리는 등, 몸에 좋은 것들을 잔뜩 사서 보내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또 한번 집안은 시끄럽게 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전후로 사람들은 허기에 시달리게 되고, 허삼관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겠다면서 또 피를 판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하소용과의 과거가 빌미로 허옥란이 기생이라는 대자보가 붙고, 비판투쟁대회에 끌려다닌다. 정말 말도 안되는 시기의 모습이 펼쳐진다.
대혁명이 진행되면서, 일락과 이락은 농촌의 생산대로 가게 되는데, 집에 들린 일락이에게 피를 다시 팔아 돈 전부를 쥐어준다. 피는 세 달에 한번씩만 팔 수 있는데, 피를 판지 한 달도 안되서 이락이가 있는 생산대의 생산대장이 집에 들린다고 하자, 집에 전혀 대접할 것이 없어 또 피를 팔아서 돈을 마련해 온다. 그리고 시간이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일락이가 간염으로 상하이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또 그렇게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돈을 모은다.
시간이 흘러, 허삼관은 피를 팔 때마다 들렸던 승리반점에서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본인을 위해 피를 팔러 간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안된다고 한다. 막상 나 자신을 위해서 피를 팔러갔더니 더 이상은 안된단다. 허삼관은 길거리에서 서글피 울고, 이 사실을 사람들이 허옥란과 아들들에게 알려준다. 이제는 그 정도 먹을 돈은 있다면서 허옥란이 승리반점으로 허삼관을 데리고 간다.
서문 -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작업
고대 로마의 시인 마티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쓰기와 독서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 혹은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려는 뜨거운 욕망과도 같은 것이다.
중국의 1940년대 이후의 역사적인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있지만,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느껴지는게 너무나도 많은 작품이었다. 누구든 삶의 어느 부분에서, 허삼관과 같은 존재가 있지 아니할까.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허삼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50년대의 충남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각색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보다가 꺼버린 영화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건 없고, 가십거리만 남아있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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