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콜슨 화이트헤드 <니클의 소년들>

나에대한열정 2020. 12. 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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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슨 화이트헤드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는 1969년 미국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이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2017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2019년에 발표한 <니클의 소년들>이 2020 퓰리처상을 다시 수상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더블 수상자가 되었다. 100년의 역사 가운데 두 번 수상한 작가는 부스 타킹턴(1919, 1922), 윌리엄 포크너(1954, 1962), 존 업다이크(1982, 1991) 이렇게 세 명 뿐이었고, 콜슨 화이트헤드가 네 번째이다.


이 소설은 착실하게 살아가는 고등학생 엘우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대학무료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에 얻어탄 차량이 절도차량이었고, 그 죄목을 어이없이 뒤집어쓰면서 니클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있었던 일과 그곳을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뒤이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


짐 크로법(1876년부터 1965년까지 존재한 미국의 법으로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시대를 살아가는 유색 인종이 받는 차별과 폭력이 어떠하였는지, 작중 인물들의 생각이나 대화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일부분의 내용이었을지조차 말이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허구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상상의 인물이나, 플로리다주 마리아나의 도지어 남학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학교와 관련된 죽음과 매장에 관한 보고서와 생존자들이 만든 웹사이트에서 그들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소설 사이사이에 인용하였다고 쓰고 있다.



p. 28~29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 사람들이 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p. 39

가끔 보면 그는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엘우드 본인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자이언 힐의 마틴 루서 킹>이 그에게 답을 알려 주었다.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있는 존재이므로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풍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우드는 하나의 원칙에 마음이 기울었다. 킹 목사가 그 원칙에 형태와 소리와 의미를 주었다. 짐 크로처럼 검둥이들을 계속 누르려고 하는 거대한 힘이 있고, 엘우드를 계속 누르려고 하는 작은 힘이 있다. 이를 테면, 주위의 다른 사람들. 이런 크고 작은 힘 앞에서 너는 꼿꼿이 일어서 너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백과사전은 안이 비어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너를 속여 텅 빈 것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네게서 너의 자존감을 빼앗아가는 사람도 있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p. 41

모욕을 당할 때마다 도랑에 빠진 기분이 든다면 어떻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겠는가? 살다 보면 필요한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터득하기 마련이었다.



p. 66

지금은 너희 모두 유충이다. 여기서는 행실에 따라 너희를 네 단계로 나눈다. 유충부터 시작해서 탐험가, 개척자를 거쳐 마침에 에이스에 이르는 것이다. 올바른 행동으로 점수를 얻으면 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최고 단계인 에이스에 이르면 여길 졸업해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p. 67

뚱한 얼굴의 백인 남자인 루미스가 몇 분 뒤 나타나 교복이 보관된 지하의 어느 방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데님 바지, 회색 작업복 셔츠, 투박한 단화가 크기별로 벽 앞의 선반에 가득 놓여 있었다. 루미스는 각자 맞는 사이즈를 찾아보라고 말한 뒤 엘우드에게는 유색 인종 선반을 따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더 낡고 어진 옷가지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었다. 엘우드는 자신의 셔츠와 무명 바지를 개서 집에서 가져온 캔버스 배낭에 넣었다. 그 안에는 스웨터 두 개와 노예 해방의 날 연극에서 입었던 양복이 있었다. 교회에 갈 때 입을 옷이었다. 플랭클린과 빌은 가져온 물건이 전혀 없었다. 엘우드는 옷을 갈아입는 두 소년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둘 다 길고 울퉁불퉁한 선처럼 생긴 흉터와 화상자국 같은 것이 있었다. 그날 이후 엘우드는 플랭클린과 빌을 다시 보지 못했다. 이 학교의 학생은 모두 600명이 넘었는데, 백인 소년들은 언덕 아래에서, 흑인 소년들은 언덕 위에 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p. 72

엘우드가 잠든 뒤 종류가 다른 시끄러운 소리가 시작되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커지거나 작아지는 변화 없이 훅 몰려왔다. 무섭거나 기계적인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엘우드는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급류'

방 저편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누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나 보네." 그러자 아이들 몇 명이 킬킬 웃었다.



p. 74~75

두 사람씩 줄을 서서 점호를 받은 뒤에는 2분짜리 샤워를 했다. 아이들은 시간 안에 샤워를 마치려고 분필같은 비누로 미친듯이 거품을 냈다. 엘우드는 공동샤워에 놀라지 않은 척 훌륭한 연기를 했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는 경악한 기색을 잘 숨길 수 없었다. 찬기운이 온몸에 무자비하게 스며들었다. 파이프에서 나온 물에서는 썩은 달걀 냄새가 나서 그 물로 목욕한 아이들의 몸에서도 물기가 마를때까지 같은 냄새가 났다.



p. 76

앨우드가 두 번째로 알아차린 것은 그 아이의 섬뜩한 자신감이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 때문에 식당안이 온통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는데도 이 아이는 자기만의 공간안에서 차분하게 움직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엘우드는 그가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여기 있으면 안될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상황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분위기. 상황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한발 떨어져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개울 위로 쓰러진 나무줄기 같았다. 나무는 개울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수면에 자기만의 잔물결을 만들어낸다. 그는 자기 이름이 터너라고 말했다.



p. 79

데즈먼드가 엘우드를 데려간 교실에는 50개쯤 되는 책상이 비좁게 놓여 있었다. 엘우드는 두번째 줄 책상에 비집고 들어가 앉은 뒤 곧 놀라서 말을 잃었다. 알파벳을 하나씩 내뱉는 안경잡이 올빼미가 그려진 포스터, 집, 고양이, 헛간 같은 기본적인 단어들을 밝은 색으로 표현한 그림등이 벽에 걸려 있었다. 꼬맹이들에게나 알맞은 내용이었다. 게다가 니클의 교과서는 남에게 물려받은 링컨고등학교의 교과서보다 더 형편없었다. 모두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엘우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쓰던 교과서보다도 더 예전판이었다.



p. 80

니클의 아이들은 대부분 글을 읽지 못했다. 그 날 수업에서 다룰 이야기(부지런한 토끼에 대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를 아이들이 차례대로 읽기 시작했지만, 구달씨는 아이들의 발음을 고쳐주거나 올바른 발음을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엘우드가 음절 하나하나를 완전히 정확하게 발음하자 딴짓을 하던 주위의 아이들이 놀라서 어떻게 저런식으로 말하는 흑인 아이가 다 있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p. 85

엘우드는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고등학생들에게 했던 연설을 생각했다. 킹 목사는 짐 크로가 굴욕적이지만, 그 굴욕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여러분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이타적으로 동료를 돕고 사랑할 때만 생각날 수 있는 그 희귀한 숭고함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인본주의를 필생의 일로 삼으십시오. 그것을 여러분 인생의 핵심으로 만드십시오.'

난 여기 붙잡혀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 거야. 여기서 보내는 시간을 짧게 줄일 거야. 엘우드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고향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차분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니클도 곧 그의 그런 면을 알아줄 것이다. 유충에서 벗어나려면 점수가 얼마나 필요한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단계를 올라가 졸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저녁 식사 때 데즈먼드에게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이곳을 졸업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이었다.



p. 88

백인 소년들이 멍든 모습은 흑인 소년들과 달랐다. 멍이 온갖 색깔을 띠는 탓에 그들은 그곳을 '아이스크림 공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흑인 소년들은 그곳을 공식 명칭인 화이트하우스라고 불렀다. 달리 꾸밀 필요가 없을 만큼 딱 맞는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화이트하우스는 법을 집행하는 곳이었고, 모두 그 법에 복종했다.



p. 89

소등 신호 때 데즈먼드는 일단 그 일이 시작되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엘우드에게 속삭였다. 채찍에 갈라진 틈이 하나 있는데, 몸을 움직이면 그것이 살을 잡아채서 베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차안에서 코리는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다." 데즈먼드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엘우드는 데즈먼드에게 거기에 몇 번이나 가보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데즈먼드가 그 충고를 해준 뒤 입을 다물어버렸기 때문에.



p. 91~92

매질이 이루어지는 방에는 피투성이 매트리스 하나와 베갯잇이 없는 베갯속 하나가 있었다. 그 베개를 꽉 물었던 모든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 몇 겹으로 얼룩져 베갯잇을 대신했다. 그 밖에 거대한 산업용 환풍기도 하나 있었다. 그것이 그 엄청난 굉음, 물리학의 원리조차 훨씬 뛰어넘어 캠퍼스 전체에 울려 퍼진 그 소리의 원천이었다.


주 정부가 체벌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 뒤, 누군가가 그 환풍기를 여기에 가져다 놓자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환풍기 소리가 소년들의 비명을 덮어버리는데도 바로 그 옆에 있으면 옆에서 들려오는 지시를 완벽하게 들을 수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 난간 붙잡고 놓지 마. 소리를 내면 더 맞는다. 그 주둥이 닥쳐, 깜둥이."

약3피트 길이에 나무 손잡이가 달린 채찍을 여기 사람들은 스펜서가 오기 전부터 블랙 뷰티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 스펜서가 들고 있는 채찍은 처음 만들어진 그 물건이 아니었다. 채찍을 아주 자주 수리하거나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죽 채찍은 벌 받는 학생의 다리를 향해 내려오기 전에 먼저 천장을 찰싹 때렸다. 마치 이제 곧 그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알리려는 듯이. 채찍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엘우드는 침대에 단단히 매달려 베개를 악물었지만, 매질이 끝나기 전에 기절했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이 그에게 몇 대나 맞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었다.



p. 93~94

해리엇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작별한 적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는 시내의 백인 여자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고 고발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혔다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짐 크로 법의 규정에 따르면, '오만불손한 접촉'이 아버지의 죄였다. 옛날에는 그랬다.


만약 미국 정부가 유색인종에게 군대를 열어주었듯이 다른 분야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면 그의 인생은 달리 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를 대신해서 남을 죽이는 일을 유색인종에게 허락하는 것과 그를 바로 옆집에서 살게 해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제대군인원호법 덕분에 그와 함께 복무했던 백인 청년들은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제복의 의미도 그 제복을 입은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졌다. 백인 은행에 아예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는데 무이자 대출이 무슨 소용인가?



p. 96

엘우드의 병상 옆 의자에 새 데님 바지 한 벌이 걸쳐져 있었다. 처음 몇 대를 맞을 때 채찍 조각들이 그의 살갗에 박히는 바람에 의사가 그것을 제거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이곳 의사는 가끔 이런 치료를 했다. 족집게를 사용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p. 98

그들은 엘우드가 들어본 적도 없는 죄로 니클에 오게 되었다. 꾀병, 경범죄, 구제 불능. 그 소년들 본인도 이런 단어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어차피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곳이 니클인 이상 굳이 그 뜻을 알 필요가 없었다.



p. 101~102

이 학교는 1899년에 주 정부에 의해 플로리다 소년 산업학교로 문을 열었다. "어린 범법자들이 못된 친구들과 분리되어 신체적, 지적, 도덕적 교육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훌륭한 시민의 풍성과 목적의식을 지니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감화원. 그런 시민으로서 스스로 살아가는 데 알맞은 숙련 기술이나 직업을 갖고 품위 있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해 줄 것이다." 이곳에 들어온 소년들을 수감자가 아니라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도소에 갇힌 폭력적인 범죄자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엘우드는 폭젹적인 범죄자는 모두 이곳의 직원으로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 학교는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까지 받아들였다.


소책자가 만들어진 해인 1949년에 학교는 몇 년 전 이곳을 맡은 개혁가 트레비 니클을 기리는 뜻에서 이름을 바꿨다. 이곳에 들어온 소년들은 자신의 인생이 5센트짜리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곤 했지만(니클은 5센트를 뜻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p. 109

할머니가 면회를 왔을 때, 그는 쿡 박사가 다리에서 붕대를 제거한 뒤 화장실에 가려고 차가운 타일 바닥을 걸으며 무엇을 보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 엘우드는 할머니의 심장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만든 자신에 대한 수치심 또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사라져버린 할머니의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할머니와 아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지금 이 순간만은 할머니 앞에 앉아 있었다. 면회 날 그는 할머니에게 잘 지내고 있지만 슬프다고, 힘들지만 잘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짓을 했어요, 할머니. 이런 짓을 했다고요."



p. 111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 해리엇이 바라보는 세상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다. 병동에서 엘우드는 자신이 더 어려운 수업을 요청했기 때문에 그렇게 가혹하게 매질을 당한건지 생각해보았다. 건방진 검둥이를 잡아다 혼을 내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가설이 떠올랐다. 니클에서 자행되는 만행에 지침이 되는 상위 원칙 같은 것은 없다는 가설. 상대가 누구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악의가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백과사전을 처음 펼쳤을 때 눈에 띈 항목 중 하나인 아르키메데스도 생각났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지렛대는 폭력밖에 없다.



p. 112~113

가장 낮은 단계인 유충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에이스까지 얼마나 빨리 올라갈 수 있을까?모든 일이 완벽하게 굴러간다면?

"이미 한 번 고꾸라졌으니 완벽하기에는 늦었어." 데즈먼드가 말했다. 

문제는 자신이 말썽을 피해 다녀도 본의 아니게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학생이 엘우드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뭔가 일을 꾸미거나, 직원 중 누군가가 그의 웃는 얼굴이 싫다며 웃지 못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애당초 분운에 휘말려 이곳에 오게 되었듯이, 또 불운의 가시덤불에 자기도 모르게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었다.


모두들 여기 니클에서 다음 번 불운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있었지만, 니클의 불은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p. 117~119

하퍼가 골목에 차를 세운 뒤 엘우드는 비로소 승합차에 실린 물건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니클의 주방에서 나온 물건들이 갖가지 통에 들어 있었다. 플로리다주가 이번 주에 니클로 보낸 물건들 중 일부였다.


"옛날에는 더 심했어." 하퍼가 말했다. "우리 이모 말씀에 따르면 그래. 하지만 주 정부에서 한 번 호되게 혼을 낸 뒤로 지금은 남쪽 캠퍼스 물건들을 내보내고 있지." 즉, 흑인 학생들의 보급품만 팔아치운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공책과 연필을 운반할 때도 있고, 의약품과 붕대를 운반할 때도 있었지만, 역시 주요 품목은 식품이었다. 추수감사절용 칠면조와 크리스마스용 햄이 식당 요리사들의 손으로 사라지고, 시내 초등학교의 교감은 건네받은 지우개 상자를 열어 하나하나 수를 헤아렸다. 엘우드는 학생들에게 왜 치약이 지급되지 않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p. 137

법이 있으니 시위를 하며 팻말을 흔드는 것은 가능했다. 많은 백인들을 설득한다면 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탬파에 있을 때 터너는 좋은 셔츠에 넥타이를 맨 대학생들이 울워스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데, 그들은 거기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결국 그 시위가 성공해서 식당이 흑인에게도 음식을 팔기 시작했지만 터너는 어차피 돈이 없어서 그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었다.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 니클의 인종차별은 지독했다. 


그러나 터너가 보기에 사악함의 뿌리는 단순히 피부색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펜서였다. 스펜서와 그리프였다. 아이들이 이런 곳에 오게 만든 그 모든 부모들,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래서 터너는 이 두 그루 나무가 있는 곳으로 엘우드를 데려왔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려고.



p. 141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p. 150

인근 지역에서 오는 손님들, 조지아와 앨라배마에서 오는 학생 가족들이 매년 이 크리스마스 축제 때 줄을 이었다. 이 행사는 학교 행정 부서의 자랑이었으며, '교화'가 그저 고결한 이상에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계획임을 증명해서 많은 기금을 모을 수 있는 기회였다. 조금 손을 쓰고 작전을 벌이기만 하면 되었다.



p. 160

가끔은 웃음이 인종을 갈라 놓는 높고 넓은 벽에서 벽돌 몇 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p. 164

캠퍼스가 분리되어 있어도 흑인 소년들과 백인 소년들은 안전을 위해 서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가끔은 니클이 정말로 집처럼 느껴졌다. 싫어하는 형이나 누나가 오늘 엄마가 기분이 나쁘다든가 하루 종일 술을 퍼마셨다고 미리 알려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경고해 주는 집.



p. 181

그는 자신의 회사를 에이스 이삿짐센터로 명명하기로 했다. AAA라는 이름은 이미 남이 차지했어도, 자신의 회사가 전화번호부 맨 위에 실리면 좋을 거 같았다. 6개월이 흐른 뒤에야 그는 자신이 니클 시절때문에 이 이름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유세계로 나가 요리조리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단계였던 에이스.



p. 202

들리는 것이라고는 훌쩍이는 소리와 벌레 소리밖에 없던 니클의 밤을 생각하면, 60명의 아이들과 한방에서 비좁게 자면서 이 세상에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던가 싶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도 없었다.



p. 209

그곳에서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이 모두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삶이라는 소박한 즐거움조차 누릴 기회가 없었다. 경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불구가 되어 절룩거리며, 정상이 되는 방법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p. 253~254

니클에서 나온 지 2주가 되었을 때 간이식당 주인이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엘우드 커티스"라고 대답했다. 그게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이었다. 그게 맞는 거 같았다. 그때부터 그는 누가 물을 때마다 그 이름을 댔다. 친구를 기리기 위해서.

그를 대신해 살기 위해서.



p. 261

웹사이트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백인이었다. 흑인 소년들을 대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 누군가가 나서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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