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나에대한열정 2021. 2. 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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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1999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언제나 그녀의 작품은 주고받는 대화 속에 모든 매력을 담고 있다. 그래서 직접 읽어봐야, 왜 노토니엥(노통브의 추종자)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때는 1990년.

일본에 있는 유미모토라는 회사(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에, 22살의 벨기에 여성인 아멜리가 1년 계약으로 일을 하러 온다. 그녀가 이 회사에 온 것은 통역을 담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첫 출근날, 그녀에게 맡겨진 일은 아담 존슨이라는 사람에게 부서장 사이토 씨가 골프 초대를 수락한다는 내용의 영문편지를 써야 하는 것. 그녀는 편지를 써서 사이토 씨에게 가져가지만 다시 하라며 찢어버리는 것이다. 이유는 말해주지도 않고. 그리고 아담 존슨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사이토 씨는 한숨만 쉬며 대답은 해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계속 편지를 쓰고, 찢기고가 반복되는데...결국은 읽지도 않은 편지는 찢기고 커피나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직속상관인 후부키를 소개받는다. 후부키는 29살의 여성으로, 키는 적어도 180센티미터는 되었지만 호리호리하고 우아하고 전형적인 일본의 미인상이었다. 아멜리는 처음 후부키를 보자마자 그녀의 외모에 완전히 빠진다. 그리고 다정하다고 느낀다.

 

사이토 씨는 아멜리에게 커피를 가져오라는 것 말고는 더이상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유미모토와 친선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온 대표단을 맞이하는데, 아멜리에게 커피 20인분을 나르는 할 일이 생긴다. 아멜리는 몸을 숙이고 격조 있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차를 따랐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말(일본어)을 알아듣는 외국인으로 인해 친선 회사 대표단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척하란다. 그러면서 그다음부터 시키는 일은 복사다. 필요도 없는 복사를 시키는 것이다. 1000장이 넘는 종이를 자동 투입구에 넣지 말고, 한 장 한 장 직접 대고 뚜껑 닫고 복사하고...그렇게 하루 종일 복사를 해서 가져가도 중심이 맞지 않았다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같은 일을 또 시킨다. 

 

그렇게 복사를 하는 데, 유제품 부서의 책임자인 덴시 씨가 오더니, 벨기에의 한 조합에서 버터의 지방질을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했다고, 그것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는데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한다. 간만에 제대로 할 일을 만난 아멜리는 신이 나서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써서 덴시 씨에게 제출한다. 보고서를 본 덴시씨는 너무나 훌륭하다면서 칭찬을 하는데, 비극은 며칠 뒤 일어난다.

 

부사장의 호출로 가보니, 덴시씨는 엄청난 비난을 듣고 있고, 아멜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네가 뭔데 이런 거를 하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아멜리가 보고서를 쓴 것을 밀고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녀가 그렇게도 믿고 좋아하던 직속상관 후부키였다. 아멜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그랬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는다. 평소에 자기한테 그렇게 잘해주는데 왜???

 

후부키에게 가서 물어보니,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넌 온지 한 달도 안되어서 덴시씨를 등에 업고 쉽게 자리에 오르려고 하냐는 말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멜리에게는 경리직이라는 새로운 일이 부과되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일에 아멜리는 며칠을 밤을 새서 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마무리를 못 짓는다. 후부키는 비웃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열 받게 하려고 한다는 마음을 갖고...아멜리에게 다른 일을 지시한다. 바로 화장실 청소.

 

이제부터 아멜리의 할 일은 화장실에 화장지를 제 때에 갈아놓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이다...... 

 

 

p. 15~16
날짜가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별다르게 신경이 쓰인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게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후부키가 넘겨준 서류를 읽고 또 읽었다. 이 서류들 가운데 유미모토 직원들의 신상 명세가 나와 있는 서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정말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하품이 나오는 것들이었다.

이 정보 자체는 마음을 확 끌만한 게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플 때는 빵 부스러기에도 군침이 도는 법이다. 나의 뇌가 무위 상태에서 곡기라고는 구경도 못 하고 있던 터라, 이 목록이 황색 잡지처럼 바삭바삭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던 유일한 서류 뭉치였다. 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나는 이 서류의 내용을 외우기로 마음먹었다.

일본 회사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 오차쿠미-차(茶) 나르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 일이 내게 부여된 유일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더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p. 64
"당신이 그걸 알 수가 없었다고? 당신네 나라는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죠. 게다가 지그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걸 당신이 알 수가 없었다고?"
끔찍한 얘기가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는데 하느님 덕분에 겨우 속에 묻어 둘 수 있었다. '아마, 벨기에가 독일과 국경은 접하고 있겠지만, 일본은, 지난 전쟁 동안, 독일과 국경보다 더 한 것도 같이 나누지 않았냐고.'
나는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고개만 숙였다.

 

p. 78~79
나는 경리 업무의 시시포스였다. 그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나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 모진 일을 다시 시작했다. 말하는 김에 이 신기(神技)에 가까운 일을 얘기해야겠다. 나는 수없이 틀렸다. 만약 수천 번이고 실수한 게 매번 다르지 않았더라면 반복되는 음악처럼 사람을 맥 빠지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번번이 계산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나는 신이 내린 능력을 타고났다.

 

p. 95~97
결국 이런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통해 일본 여성들의 머릿속에 박히는 것은, 좋은 일은 절대로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 쾌락을 바라지 마. 기쁨이 너를 파멸시킬 테니까.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꾸지 마. 너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의 환상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지 절대 너의 진실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닐거야. 삶이 너에게 무엇이든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 해가 지날수록 네게서 무언가 없어지게 될 테니. 평정같은 단순한 것좌 바라지 마. 너는 평온해질 아무 이유가 없으니까.......그리고 이제 끝없이 이어지는, 네가 져야 하는 쓸데없는 의미가 시작되지. 너는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해. 그게 아주 최소한이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나무랄 데 없다고 해서 그냥 그렇다는 사실 말고 뭔가가 특별히 생기는 것도 아니야. 이건 긍지도 아니고 즐거움은 더더욱 아니지.
내가 결코 너의 의무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열거할 수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넌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이런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때가 없을 테니까.......
네 존재에서 그만큼 은밀하고 별것 아닌 부분까지 지시에 따르게 된다면, 네 삶의 핵심적인 순간들에 가해질 제약은 당연히 얼마나 클 지 한번 상상해 봐.

 

p. 104~107
일본 여성에게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성이라면-그런데 대부분의 일본 여성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탈출구가 없다. 말하자면 이런 기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살하지 않은 모든 일본 여성들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녀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무욕의, 숭고한 용기를 보여 주는 저항 행위이다.

일본 문화에서 작명 말고 다른 여러 예를 통해서도 물론 나타나는 이 이상야릇한 측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꿈꿀 권리가 없는 여성들이, 후부키같이 꿈꾸게 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볼 때는 아무리 일해도 절대 지나치게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성들에게 적용되는 규정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기를 쓰고 일하면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 되다 보면 결혼을 하지 않고 스물다섯을 넘기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게 흠이 되었다. 이 제도에서 보이는 사디즘의 절정은 제도 자체의 논리적 모순에 있었다. 제도에 충실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제도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

 

p. 124
명예를 지키려면 바보처럼 굴어야 할 때가 아주 많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는니 멍청이같이 처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도 나는 도리보다 현명함을 택했던 사실을 부끄럽게 느끼고 있다. 누군가 중간에 나서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위험을 감수할 리 만무했으니, 내가 희생했어야 했다.
물론 내 상사는 그런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한 것처럼 행동하는 게, 이런 비인간적인 장면을 이렇다 저렇다 말도 못 하고 보고만 있는 게 더 나쁜 건 아니었을까?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우리 모습이 더 나쁜 게 아니었을까?

 

p. 176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나는 사무라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모습에, 사무라이들이 초인적인 숭배의 감정으로 목소리가 녹아들면서 자신의 두목을 배알하는 모습에 그렇게 딱 부합하는 이 표현을 끔찍이도 좋아했다.

 

p. 186
이런 사실을 확인하니 앙드레 말로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너무 당신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지 말라. 사람들이 당신 말을 믿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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