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존 맥스웰 쿠체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나에대한열정 2020. 9. 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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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태어난 네덜란드계 백인이지만, 영어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작품도 영어로 썼기 때문에 이름이 쿠체보다 쿳시(쿠시)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


<마이클K>(1983)와 <추락>(1999)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부커상을 두차례 수상한 남자. 그러나 상업성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수상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2003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이런 수상작들이 아닌 쿠체의 첫작품으로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선택한 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를 그 주인공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책 내용에는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가 혼재되어 있어서, 실존인물이지만 사실이 아닌 내용도 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속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표도르의 사생아였던 파벨이 여기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붓아들로, 지주였던 막시모프는 경찰조사관으로 등등...


이 소설은 독일에 머물고 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살한 의붓아들(파벨)이 머물렀던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아들이 머물었던 하숙집에 기거하면서 아들이 남겨놓은 양복을 입어보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보기도 하면서 아들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중, 아들의 유물 중 일부를 경찰이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찾기 위해 경찰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들이 급진적인 혁명모임에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여기서 거론되는 급진적 혁명모임은 네차예프 사건과 관련된 것인데, 1869년에 실제로 있었던 이 사건은 당시 모스크바의 페트롭스키 대학에 다니던 네차예프가 5인조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과정에서 그 조직의 일원이었던 이바노프가 조직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당국에 밀고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악령>에서는 네차예프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로 등장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들이 남긴 자료에서 아들이 생전에 쓴 완성되지 않은 소설을 보게 된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소설을 자신이 완성하고픈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모든 도덕적 관련들의 경계가 어디인지. 어디까지 다가서도 되는 것인지, 넘어서도 괜찮은 것인지,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또한 쿠체 본인이 파벨과 같은 또래나이의 아들을 잃은 아픈 기억이 스며있어서인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도스토예프스키의 행동과 의식을 따라 너무 애잔하게 전해진다. 동시에 그럼에도 글을 써나가야 되는 작가라는 운명도.


p. 15

어둠이 짙어져 다른 종류의 어둠으로 바뀌기를, 존재의 어둠으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p. 71

독서 행위는 그 팔이 되고, 그 도끼가 되고, 그 두개골이 되는 것이다. 거리를 두고 비아냥거리게 아니라 자기를 단념하는 것이란 말이오.

p. 121

그는 절망에 차서 몹시 실망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가 생각한다. 내 마음과 접촉해보면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그와 접속이 끊긴 건 그의 마음이 아니라 진실이다. 또한 뒤집어 생각해보면, 접속이 끊긴건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그가 잠실때까지 폭포처럼 쉼없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는 생각한다.(생각을 뒤집고 뒤집은 것을 다시 뒤집는다. 요즘엔 그런 예수회적인 방식으로 사고해야 한다!) 폭포아래 잠겨가는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더 많은 물, 더더 많으나 홍수, 더 깊은 침수이다. 

p. 200~201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그렇게 사소한 것에 신경쓰다는 것이 수치스럽다. 그는 익숙한 도덕적 혼란상태에 빠져있다. 사실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더이상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수치스럽다. 그러나 또 다른 무언가, 그가 정의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가 막 신발을 뚫고 나오는 발톱끝처럼 그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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